부처님은 춘다의 공양을 받으셨다. 그것이 육신으로 받으시는 마지막 공양이었다. 공양을 마친 부처님은 극심한 병을 앓으셨다. 고통을 감내하시던 부처님은 당신의 열반지를 정했다. “아난아, 쿠시나가르로 가자.”

정성스럽게 올린 공양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부처님의 마지막 공양, 육신을 여의게 한 원인을 제공한 춘다는 얼마나 스스로가 원망스러웠을까. 또 제자들은 스승을 상하게 한 춘다를 향해 얼마나 큰 비난을 퍼부을 것인가. 하지만 부처님은 이미 그것을 염두하시고는 말씀하셨다. “아난다야! 장차 저 대장장이 아들 춘다에게 다음과 같은 비난이 있을지도 모른다. 즉 ‘그대 춘다여! 여래께서 그대가 올린 공양을 마지막으로 입멸하셨다는 것은 너에게는 이익 됨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아난다야! 그로 말미암아 춘다가 나에게 최후로 공양한 것을 후회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아난다야! 너는 대장장이 아들 춘다를 위로하여라. … (중략) … 음식을 시여함에는 큰 과보와 큰 이익이 있는데, 그 가운데 가장 뛰어난 큰 결과를 초래하는 것에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그것을 먹고 여래가 위없이 바른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될 때이고, 또 하나는 그것을 먹고 여래가 남김 없는 완전한 열반의 세계에 들 때이니라.” 부처님은 춘다의 공양으로 말미암아 남김없는 열반의 세계로 든다는 말씀으로서 제자들로 하여금 분노를 거두게 하고, 춘다의 슬픔을 어루만져 주셨다. 수자타의 공양과 춘다의 공양이 모두 훌륭한 공양이었음을 밝히신 것이다. 수자타의 공양은 유여열반의 공양이고 춘다의 공양은 무여열반의 공양이었다.

춘다의 마을에서부터 쿠시나가르까지는 20km가 넘는 거리다. 극심한 고통에서도 부처님은 25번이나 멈추어 쉬면서 육신을 이끌고 이곳까지 오셨다. 마지막 목욕을 한 곳이 쿠쿠다 강인데, 물살도 약하고 폭도 좁은 아주 작은 강이다. 부처님은 그 강에서조차 힘겹게 몸을 옮기셨다고 전한다. 육신이 얼마나 쇠약했는가를 짐작케 한다.

‘적멸’이 고요함에 천착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그냥 말하는 적멸이라 함은 그저 고요함에 천착된 것 입니다. 아라한과에 들어가 유위법을 증득한 이들이 들어가는 열반이 유여열반입니다. 또 보살의 경계에 들어가는 열반은 무여열반입니다. 그리고 부처님의 열반은 바로 대반열반입니다. 이 모든 경계를 넘어선 최상의 열반입니다. 열반당의 앞에는 불상이 모셔져 있고 뒤편에는 사리가 모셔져 있습니다. 그렇다고 사리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어리석은 눈으로 보면 구슬 같은 사리를 찾으려 하겠지만 지혜의 눈을 뜨고 보면 사리 아님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열반당에서 열반상이나 사리를 중요하게 생각할 게 아니라, 부처님 열반에 드신 뜻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 수불스님

열반당은 인도 굽타 왕조 쿠마라굽타 1세의 재위기간에 최초로 건립됐다. 이후 12세기 말 이슬람교도들로 인해 크게 훼손됐으나 이후 열반상을 발굴하고, 1956년 미얀마 스님들이 재건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두 번의 이교도 침공으로 완전히 소실될 뻔했던 열반당이 훗날 복원돼 성지로서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우리에게 다행스러운 일이다.

부처님은 열반지에 이르러서 마지막 제자를 거둔다. 그가 바로 수바드라다. 그는 부처님의 제자가 되고 싶었지만 다른 제자들은 그를 말렸다. 부처님은 제자들을 물리고 수바드라에게 팔정도와 중도를 설하며 그를 깨달음에 이르게 했다. 열반당 안에 모셔진 열반상에는 대좌에 세 인물이 조각돼 있다. 마지막 공양을 올린 춘다, 부처님의 마지막 제자 수바드라, 그리고 슬퍼하는 아난다 존자다. 

 

부처님께서는 49년간의 설법 중에서 가섭에게 세 곳에서 세 번의 마음을 전하셨다. 이것이 삼처전심이다. ‘사라쌍수 곽시쌍부’는 부처님께서는 가섭에게 마지막으로 마음을 전한 곳이자, 마지막 뜻이 담긴 행위다.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후 다비를 하려 했지만 도저히 불이 붙지 않았다. 이때 멀리 나가있던 가섭이 뒤늦게 돌아와 부처님의 열반에 함께하지 못함을 슬퍼했다. 그리고 가섭이 부처님의 관 주위를 세 번 돌고 세 번 절하자 부처님은 관 속으로부터 두 발을 밖으로 내밀어 보였다. 부처님은 마지막까지도 가섭에게 뜻을 전했다.

자신의 견처가 확실해야 합니다. 공부는 살얼음 걷듯이 침착하게 해야 하고, 남을 제도하려는 것도 상이 될 수도 있으니 늘 자신을 점검해야 합니다. 가끔 내가 공부를 잘 하는 지, 잘 돼가고 있는지 혹은 뒷사람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어가고 있는지를 살펴보면서 나아가야 됩니다. 본인의 길이, 남에게도 좋은 길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공부하시기 바랍니다. -수불스님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 수많은 순례객들이 성지를 참배한다. 국적도 다르고, 언어도 다른 수많은 이들이 오직 한 분의 자취를 따라, 수천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찾고 있다. 성지는 부처님의 일대사에서 사건이 일어난 공간적인 흔적만을 뜻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 위대한 공간에 남아있는 위대한 부처님의 정신 유산이 오늘날까지 남아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흙, 바람, 노을. 그저 인도의 여느 풍경들 속에서 2천 년 전 위대한 스승은 깨달음을 얻었다. 인도가 처음이라, 인도는 낯설었지만 인도 안에서 만난 부처님의 유산은 참 익숙했다.

 

- 취재에 협조해주신 안국선원 선원장 수불 스님과 안국선원 신도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인도는 처음이라'의 연재를 마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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