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는 처음이라③ #부다가야
상태바
인도는 처음이라③ #부다가야
  • 최은영 기자
  • 승인 2020.03.10 17: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비로소 깨달음의 완성을 이룬 성지

전세계에서 깨달음을 구하는 자들이 모여드는 곳, 부다가야. 부처님이 깨달은 곳임을 상징하는 마하보디 대탑과 보리수 나무 주변에는 수많은 구도자들이 온전히 사유에 집중하며 수행하고 있다. 눈푸른 어린 수행자에서부터, 노구의 몸을 이끌고 오체투지를 하는 이들까지. 그들은 정말 오롯이 신심이라는 하나의 이끌림으로 세계 각국에서 이곳으로 향했을 것이다. 최상의 신심 지닌 이들은 그저 구하는 바도 없고 망상도 없이, 담담하게 자기와의 시간을 마주하고 있는 듯하다. 어떤 삿된 바 없이, 석가모니부처님이 깨달음을 완성한 자리에서 그들도 자신의 완성을 위한 묵묵한 정진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세계 각지의 수행자들이 이곳 깨달음의 성지를 찾아온다.
세계 각지의 수행자들이 이곳 깨달음의 성지를 찾아온다.

석가모니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자리에는 기원전 3세기경 아쇼카왕 최초로 건립했다는 마하보디 대탑이 있다. 대탑은 이후로 여러 세대를 거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높이 55m 9층탑으로 건립된 이 웅장한 탑은 멀리서도 또렷이 보인다. 또 외벽에는 화려한 조각과 섬세한 문양들이 새겨져 있어 탑 그 자체만으로도 장엄함을 자아낸다. 탑 내부 감실에는 불상이 모셔져 있다. 대탑 서쪽에는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신 금강보좌가 있으며, 가장 오래된 보리수 나무가 심어져 있다.

마하보디대탑의 장엄한 모습.
마하보디대탑의 장엄한 모습.

 

순례 일행들은 아주 조용히, 침착하게 걸음을 옮겼다. 마하보디 대탑을 돌고, 대탑 안에 모셔진 불상을 참배한다. 푸른 색의 후벽 때문인지, 대탑 안 부처님 상호는 굉장히 활기차 보인다는 느낌이 들었다. 근엄함보다는 시원시원하고 즐거워 보인달까.

부처님의 가사를 새로 입혀드리는 모습.
부처님의 가사를 새로 입혀드리는 모습.

여행사는 덧신 신기를 권유했지만, 맨발로 바닥의 결을 그대로 느끼는 것도 좋을 것 같아 굳이 신고 있던 양말까지 벗었다. 탑돌이를 마친 일행은 보리수 나무 아래 앉아 참선을 시작했다. 허리를 반듯하게 세우고 정좌한 순례단의 내면이 고요하게 내려앉았다. 순례단이 앉은 자리에는 고요의 시간이 계속됐고, 주변을 지나가는 이들에게는 ‘수행자’들의 특별한 모습으로 비춰졌을 터, 다들 멈춰서 한국 선불교의 특별한 풍경을 바라보았다.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이곳에서 각자의 방식대로 성지의 기운을 받아들인다. 대만, 태국을 비롯해 유럽 등 각각 다른 염불과 수행방법으로 깨달음을 구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부처님이 깨달은 곳, 부처님을 따라 깨닫는 자가 모여드는 곳 한 가운데에 있다.

 

“이것이 부처님이 성도한 곳입니다. 우리는 보리수 뒤편을 보고 앉아있는데, 부처님께서는 동쪽을 보고 앉으셔서 오른쪽에서 새벽 샛별을 보고서 깨달음에 드셨습니다. 불교에서 부처님께서 출생하고 열반에 드신 것도 중요하지만, 출생만 하면 뭐하나 깨달음을 얻지 못했는데, 깨달음을 얻고 나서야 부처님이 되셨기 때문에 제일 중요한 일은 보리대탑에서 이뤄졌습니다. 이곳에서 부처님께서 깨달았다는 사실이고, 우리가 이곳에 함께하고 있습니다.”
- 수불 스님

짧은 일정이었지만, 부다가야에서는 가장 긴 시간을 머물렀다. 스치듯 지나갈 일이 아니라 깊이 머물러야 할 성지였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 성도를 얻으시고 7번의 자리를 옮겨가며 49일간 깨달음의 기쁨을 누리셨다. 마지막 날 부처님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내가 깨달은 이 법은 매우 깊어 보기 어렵고, 알기 어렵고 고요하며, 생각의 경계를 넘고 미묘하여 현자만이 능히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이 세상 사람들은 집착의 경계를 즐긴다. 만약 내가 이 법을 설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나를 이해해 주지 않는다면 나에게는 피로만이 있을 뿐이다.’ 부처님께서는 법을 설하고자 하는 마음을 내지 않았다. 그때 범천이 성도의 침묵에 안타까워하며 청한다. ‘원컨대 법을 설하소서. 유정이더라도 그 더러움이 적은 자가 있어 법을 듣지 않으면 퇴보하더라도 법을 들으면 깨달을 것입니다.’ 범천의 권청에 부처님은 비로소 정법을 설하고자 길을 나선다. 부처님께서 가장 깊이 사유하신 곳, 고귀한 성지에서 정진시간을 갖는 인연을 언제고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스님께서 유위법을 좇지 말라고 그렇게 당부하셨지만, 정확하게 내 무릎위로 떨어진 보리수 잎을 두고 담담할 수 없었던 나는 이것이 특별한 ‘일’이라며 환호했다. “정신적으로 갈등하고 정신 못 차리는 사람은 회초리로 때려줘야 바른 가치관에서 살아갈 수 있다.”는 스님의 음성이 아직도 귀를 때리고 있어 나의 행운은 부끄러운 일로 접어두려고 한다. 애써 구하지 않아도, 그곳에서의 모든 시간이 내게 남아있으므로 나는 성지를 통째로 마음에 옮겨온 것 같은 기쁨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