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서 지목하신 네 곳의 성지는 모두 부처님 당신과의 인연이 있었던 곳이다. 그러나 불교의 4대 성지 혹은 8대 성지라 명명되지 않아도 인도에는 수많은 수행자들의 흔적과 성스러운 장소들이 남아있다. 

이번 순례에서 조금은 특별한 장소에 방문했다. 몇 해 전 우연히 발견된 동굴수행처 바하바 케이브다. 이곳은 아쇼카왕이 BC252년 스님들을 위한 수행처로 조성해 승단에 기증한 곳인데, 아주 큰 바위의 속을 파내어 인위적으로 만든 동굴이다. 그간 숲에 가려져 있어 존재 자체를 몰랐던 곳이지만 근래에 발견되어 온전한 동굴의 모습을 만날 수 있었다. 한국 성지순례단으로서는 첫 번째 방문이라고. 우선 동굴 주변을 살펴보면 불탑과 승방의 흔적으로 보이는 오래된 벽돌들이 남아있어 대규모의 승방터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멀리 보이는 돌산, 용수보살 수행처가 이곳에 있다.
멀리 보이는 돌산, 용수보살 수행처가 이곳에 있다.

 

동굴 전체가 자연 바위이기 때문에 수천년의 세월에도 전혀 흔적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바로 어제까지 수행자가 앉아있었을 것 같은 모습이다. 내부는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암실暗室이다. 손을 뻗어 벽면을 만져보면 아주 잘 연마되어 반들반들한 촉감이 든다. 오랜 시간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던 곳임에도 어제까지 누군가 머물렀던 것만 같다. 오히려 천년의 시간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과거의 날것 그대로가 보존되어 있다.

 

일행은 잠시 칠흑같은 어둠을 둘러보고 밖으로 나왔다. 큰 바위가 많은 산이라, 예부터 많은 수행자들이 이곳에 기거했다고 전한다. 동굴 밖을 나와 높고 넓은 바위 위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풍광이 좋은 좌선대다. 주변에는 큰 바위들이 둘러싸고 있어, 마치 무정 대중이 함께하고 설법을 듣고 있는 듯한 풍경이다.

인도 속담에 코브라를 조심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조고각하照顧脚下라, 늘 발밑을 조심하라는 뜻입니다. 바위산이라 조금 험했겠지만, 조심해서 잘 올라오는 것도 공부가 됩니다. 여러 스님들이 수행하셨던 이곳은 마을과의 거리가 있어서 스님들이 탁발을 하기가 힘들었을 겁니다. 그래서 아마 오랫동안 머물면서 정사를 짓고 음식을 해 드시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수드라나 바이샤는 계급상 먹고 살 걱정이 없으니 생각할 일도 없었겠지만, 수행자들은 자기를 깊이 들여다보고 깊이 사유하다보니 어떤 중요한 진리의 말들이 나왔을 것입니다. 어떤 장소에서 이치를 찾으려 사유하는 태도, 어떤 소견으로 바라보느냐를 끊임없이 고민하는 공부가 이곳에서 있었을 겁니다. 제가 지금 여기서 말을 하고 있는 와중에도 자꾸만 과거 누군가 이곳에서 법문을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수불스님

바로 인근에는 용수보살 수행처로 알려진 동굴이 하나 더 있다. 이곳 역시 자연 바위 속을 판 인공 동굴이다. 역사적으로 기록된 사실은 아니지만 이곳 주민들의 구전에 의하면 이곳에서 용수보살이 수행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아쇼카대왕이 조성한 승방터에서 도보로 이동이 가능한 곳인데다 산이라기보다는 큰 바위를 켜켜이 쌓아올린 돌탑 같은 형상이라, 사람들의 입말로 내려온 역사에 확신이 선다. 일행은 이 수행처에 잠시 앉았다가, 나란다대학으로 향했다.

 

나란다대학은 부처님 열반 후 불교의 번성과 함께 세워진 최초, 최대 규모의 불교대학이다. 이곳에서 용수보살이 수학했을 정도라고 하니, 가르치는 교수진이나 배우는 학생이나 그 수준이 일류 수준이었을 것은 분명하다. 7세기경 교사 천 오백명, 학생이 만 명에 달하는 규모였으며, 그 엄청난 규모는 부처님 열반 후 불교가 번창하면서 세워진 사상 최초 최대의 대학 중 하나였다. 이슬람교도들이 나란다대학을 불태웠는데, 건물이 모두 불타는 와중에도 승려들은 도망가지 않고 그 자리에서 죽음을 맞이했다고 전한다.

용수보살이 6세기에 수행했다면 대학은 기원 전에 세워졌을지도 모릅니다. 교육이 없었다면 부처님 당시에 말씀하신 것이 지금까지 내려올 수 없었을 겁니다. 당시 사람들은 이곳에서 최고의 스승에게 가장 좋은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깨달은 사람을 위주로 더 큰 깨달음을 가르치는 곳이 나란다 대학입니다.
- 수불 스님

내가 지금 인도에 머물고 있음이 가장 실감나는 때는 하루 중 일몰이 찾아오는 시간이다. 넓은 대지 위에 찬란하게 저무는 일몰을 보고 있으면 확실히 떠나와 있음이 느껴진다. 부처님께서 성도 후 법화경을 비롯해 많은 법을 설하셨던 영축산. 마가다국의 빔비사라왕이 부처님을 만나기 위해 가마에서 내려와 걸어 올라갔다는 빔비사라왕의 길. 물을 마시기 위해 물에 입을 대야하는 것처럼 신분이 높다고 해서 법을 쉽게 구할리 없다. 지금도 매년 수많은 불교도들은 이 빔비사라왕의 길을 걸으며 영축산을 향하고 있다.

 

영축산의 세 마리 독수리.
영축산의 세 마리 독수리.
영축산 정상 여래향실, 공양물이 놓여져 있다.
영축산 정상 여래향실, 공양물이 올려져 있다.

 

 

영축산 여래향실로 오르는 길에는 아난다 존자의 수행처와 사리불 존자의 수행처가 남아 있다. 부처님께서 법화경을 비롯해 여러 경전을 설하셨던 영축산의 정상 여래향실의 입구는 세 마리 바위 독수리가 지키고 있다. 부처님과 마하가섭이 이심전심으로 가르침을 주고받은 삼처전심 가운데 한 장면, 영산회상거염화 이야기가 바로 이곳에서의 사건이다. 부처님이 영산회상에 계실 때 대범천왕이 금색 바라화를 올렸다. 세존은 손에 들고서 대중에게 보였다. 일천대중은 가만히 있었지만 오직 가섭은 빙그레 웃었다. “나에게 정법안장(正法眼藏)과 열반묘심(涅槃妙心)이 있으니, 실상은 상이 없는 미묘한 법문이라. 마하가섭에게 부촉하노라.”

법화경에는 부처님께서 가섭과 제자들에게 이르기를 “가섭아 비유하면 삼천대천세계의 산과 내와 골짜기와 땅 위에 나는 모든 초목이나 숲, 약초가 많지만 각각 그 이름과 모양이 다르다. 먹구름이 가득히 퍼져 삼천대천세계를 두루 덮고 일시에 큰 비가 고루 내려 흡족하면, 모든 초목이나 숲이나 약초들의 작은 뿌리, 작은 줄기, 작은 가지, 작은 잎과 중간 뿌리, 중간 줄기, 중간 가지, 중간 잎과 큰 뿌리, 큰 줄기, 큰 가지, 큰 잎이며 여러 나무의 크고 작은 것들이 상중하를 따라서 제각기 비를 맞느니라. 한 구름에서 내리는 비가 그들의 종류와 성질을 따라서 자라고 크며 꽃이 피고 열매를 맺나니, 비록 한 땅에서 나는 것이며 한 비로 적시는 것이지마는 여러 가지 풀과 나무가 저마다 차별이 있느니라.”고 전한다.

 

부처님이 대중을 대하는 마음은 비에 비유되며 평등하지만, 그것은 각자의 성문, 연각, 보살 등 각각의 근기에 따라 다르게 작용한다는 말씀이다. 지금 우리가 같은 공간에서, 같은 부처님의 성지에 닿아있지만 누군가에게는 견처를 밝히는 공부의 시간이 될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석양의 풍경에 넋을 놓아버리는 작용으로 이어지는 것 아닐까. 나는 후자의 입장이지만 일행들에게는 전자의 입장이 부합될 것이다. 순례가 막바지에 일고 있음을, 또 저 저무는 태양이 내게 일러준다. 이제 제발 ‘물 좀 들라’고 말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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