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서울에서 양평으로 갈 일이 있었다. 운전을 하면서 두물머리 쪽을 지나가는데 그 아름다운 모습과 분위기에 매료되고 말았다. 드넓게 펼쳐진 강은 흡사 깊은 호수 같았다. 뭔가 알 수 없는 기운이 압도하며 차분해지는 느낌이었다. 왜 그랬던 걸까? 왕성한 수기운(水氣運)의 영향 때문인 것 같았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 한강이 만들어지는 곳이니 수기운이 매우 강할 수밖에 없다. 전국적으로 이렇게 극강한 곳은 드물 것이다. 평소에 수면이 부족하고 머리를 쓰는 일이 많았던 터라 머리가 과열돼있었다. 지나치게 상기된 화기운(火氣運)과 열이 수기운의 덕택으로 차분히 식는 듯했다.

요즘 현대인들이 자주 겪는 두통은 뇌혈관질환에 의한 것보다는 스트레스나 과로로 인한 경우가 더 흔하다. 스마트폰을 비롯한 전자기기의 과도한 사용도 이에 한몫을 더한다. 무언가 계속 신경 쓰고 쉬지 않으니 과열된 두뇌와 신체가 기진맥진 지쳐버린 것이다. 때때로 작동을 멈추고 쉬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과부하가 걸린다. 지나친 집중은 집착이 되고 결국 고통이 따르는 이치다.

 

생각이 지나치면 번뇌(煩惱)가 된다. 

 

번뇌의 한자 뜻을 보면 화(火) 기운이 머리(頁)에 많다는 의미다. 불이 이리저리 발산하는 형상은  ‘머리의 생각이 복잡해져서 번거롭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번뇌한다’는 뜻의 뇌(惱)에서도 마음 심(心) 자가 붙어 심리 현상에 미치는 영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두뇌(頭腦)라는 글자와 부수만 다르고 같다. 두뇌의 작동이 평상시와 다르게 심리적·정신적으로 복잡해졌다는 뜻으로 짐작해볼 수 있다. 이러한 불균형 상태가 지속되면 마음이 불편하거나 불안해져서 신경질적으로 변하게 된다. 아무렇지도 않은 작은 일에 화(火)를 내기 일쑤다. 이러한 화를 식히는데 가장 좋은 것은 바로 수(水)다.

한의학의 언어로는 수승화강(水升火降, 물의 기운을 올리고 화의 기운을 내린다)이 잘 안된 것이다. 수기운은 가라앉는 성질이 있으므로 위에 있으면 자연스럽게 아래로 흐르고, 머리가 대부분 뜨거우므로 수기운이 필요한 것이다. 화기운은 아래에 있음으로 장부들을 따듯하게 해주며 소화와 신진대사를 돕는다. 동의보감(東醫寶鑑)에서 두한족열(頭寒足熱, 머리는 차게 발은 따뜻하게 유지)이 무병장수의 비결이라 여긴 것도 같은 이치이다. 위에는 차갑게 아래는 따뜻하게 하는 수승화강을 원리를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화기운이 강한 심장에는 수기운이, 수기운이 강한 신장에는 화기운이 머묾으로써 그 작동을 원활케한다. 이는 주역의 수화기제(水火旣濟, 이미 내를 건넜으며 일이 완성되었음)란 괘의 의미와 통한다. 주역의 64괘 중 63번째 괘로 위의 차가운 물의 기운과 아래에 따뜻한 불의 기운이 서로 오르내림으로써 소통되어 가장 이상적인 괘로 삼는 것이다. 그 반대 의미는 화수미제(火水未濟, 물을 건너지 못했다는 뜻의 미완성을 의미) 괘다. 맨 마지막 64번째 괘인데,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으므로 조화와 균형이 깨진 것이다. 한의학에서 수(水)는 신장이며 화(火)는 심장이다. 수화기제(水火旣濟)처럼 건강한 상태를 만들기 위해서는 신장의 수기(水氣)는 위로 올라가야 하며 심장의 화기(火氣)는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그래야 아래는 따뜻하고 위는 적당히 차가운 건강한 몸이 되는 것이다.

단, 역(易)의 기본 원리가 ‘늘 변화한다’ ‘고정된 것은 없다’라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수화기제도 완전한 상태가 아니고 수화미제도 절망의 상태가 아니다. 달이 차면 기울 듯이 어떤 상태든 영원한 것이 없다. 주역에서는 이를 물극필반(物極必反, 사물이 정점에 이르면 반드시 반대 상태로 나아간다) 이라고 했다. 지나치면 독이 된다는 말처럼 뭐든 적당해야 한다. 수승화강도 처음 상태에 고정된 답이 아니라, 차후 그 사람의 상태와 처지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

논어(論語)에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공자는 말했다.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한다(子曰, 知者樂水). 지혜로운 사람이 물을 좋아하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일단은 머리를 쓰느라 과열된 기운을 차분히 내려주는 특효약이기 때문일 것이다. 필자는 한강을 기준으로 강북에 있는 동국대에서 학업을 하고 있다. 평소에 공부를 하다 보면 머리가 뜨거워지는데, 강남에 있는 봉은사에 가다 보면 한강을 만난다. 동호대교나 한남대교를 지나면서 아름드리 펼쳐진 한강을 보면 마음이 차분해 지고 생각이 정리가 된다. 이것 역시 두물머리처럼 수기운의 영향인 것 같다.

 

비가 내리면 마음의 먼지가 씻기는 것 같고 차분해진다. 

 

공부하다가 머리를 식힐 겸 음악을 틀 때가 있는데, 그때도 물 흐르는 소리를 듣는 경우가 많다. 과열된 두뇌가 적정 온도를 찾아가는 것 같다. 시원한 물 한잔 마시는 것도 도움이 된다. ‘냉수 먹고 속 차리라’는 것도 같은 이치 아닐까?

요가를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특히, 머리를 아래에 두고 발을 위로 올리는 ‘물구나무서기 자세’나 어깨와 머리는 땅에 딛고 발을 올리는 ‘어깨서기 자세’를 하면 효과적이다. 평소에 위로 세웠던 머리를 아래로 둠으로써 혈액이 거꾸로 돌아서 몸의 조화와 규형을 돕는다. 평소 발에 쏠린 혈액이 머리로 공급이 되면서 순환이 원활해지기 때문이다.
수기운을 보충하기에 가장 좋은 건 잠을 잘 자는 것이다. 특히 해자축(亥子丑, 21시 30분~ 3시 30분) 시가 좋다. 이 시간에 수면에 들면 충분히 채워진다. 오행(五行) 중에 목화토금(木火土金) 기운과는 다르게 수(水)는 자고 있어야 공급이 원활하기 때문이다. 주로 밤에 깨어있는 현대인들에게는 아주 힘든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평소의 수면시간보다 1~2시간만 당겨서 잠에 들어도 충전되는 양은 평소보다 많아질 것이다.

낮잠도 좋다. 방에서 편하게 누워 온몸의 긴장감을 풀고 이완하면서 잠이 드는 게 최고다. 단 10분만 쉬어도 많은 기운에 채워진다. 일을 하거나 외부에 있어서 눕기 힘든 상황에도 쉴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만들 수 있다. 잠시 어딘가 기대어 눈을 감고 쉬는 것만으로도 효과를 볼 수 있다. 힘을 빼고 편안하게 호흡하는 것으로 삶을 보다 상쾌하고 건강하게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도연스님은

카이스트 스님으로 알려진 도연스님은 카이스트에 입학해 전자공학을 공부하다 돌연 출가의 뜻을 품고 스님이 되었다. 이후 카이스트와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등에서 에너지 명상과 참선을 지도했으며, 2015년에는 카이스트 기술경영학과를 10년만에 졸업 하고 오대산 월정사에서 원명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2016년 사미계를 수지하고, 현재 서울 강남 봉은사에서 어린이, 대학생, 청년부 지도법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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