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목과 어깨가 뭉쳐서 결리고 아플 때가 있다. 이럴 때면 그동안 몸 관리를 어떻게 했기에 이렇게 까지 되었는지를 살펴보게 된다. 신체의 어느 부위가 아프거나 불편하다는 것은 그와 관련해서 어떤 문제가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가령 목과 어깨가 아픈 것은 평소에 책을 보고 컴퓨터를 하거나 스마트 폰을 만질 때 고정된 자세를 계속 유지하다보니 근육이 긴장하게 되고 그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뭉쳐서 딱딱해지는 것이다. 허리가 아픈 경우도 평소 자세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는데, 의자나 방석에 앉아있을 때 꾸부정한 자세로 있거나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 있는 것이 문제의 발단이 된다. 이렇듯 평소의 생활습관을 어떻게 만드는지 그 정도와 차이에 따라 내 삶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여기서 한 발자국 더 깊이 들어가 보자. 평소에 어떤 마음 자세를 취해야 하는 것일까? 우리의 몸은 마음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마음을 잘 살펴보면 몸에 생기는 문제의 원인에 닿을 수 있다. 달리 표현하면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다. ‘세상사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는 의미. 내가 평소에 먹는 마음에 따라서 몸의 행동과 습관이 결정되고 모든 일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우리는 보통 불편한 자세를 오랜 시간을 유지하기 힘들다. 몸에서 통증이라는 신호를 보내며 자세를 바꾸도록 요청을 하는데, 이 요구를 무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일단 고통스러운 것을 방치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문제는 이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알고도 무조건 참을 때 발생한다.

 

몸의 불편함이 마음 상태에 영향을 받는다. 

이 마음의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바로 '욕심' 때문

내 마음의 불안함과 몸의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꼭 이 일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 봐야할 문제다. 지금 내가 하는 이 일이 몸에 무리가 되고 마음의 부담감을 느끼면서 까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인지 자문해 봐야 할 것이다. 과연 몸이 망가지고 마음이 뭉개지면서 까지 할 필요가 있는 일인지 곰곰이 짚어보자. 특수한 상황에서는 그럴 수 있겠지만, 많은 경우 필요 이상의 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내가 있는 현재 위치와 상황에서 ‘반드시’ ‘꼭’ ‘절대적으로’ 이뤄야 하는 일이 이 세상에 얼마나 있을 것인가?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렇게까지 혈안이 되어서 할 필요가 없는 것들이다. 그리고 반드시 소유해야 하는 것도 없다. 현재 갖고 있는 것에 만족하는 마음에서는 오히려 지금 소유하고 있는 것들에 감사하게 되고 더 줄일 수 있는 것을 찾게 된다. 비움을 통해 저절로 채워지는 충만함과 행복감을 맛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족하지 못하는 마음은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다. 인간의 욕심은 채우고 채워도 그 끝이 없다고 하지 않는가. 정해진 시간 안에 주어진 일을 해야만 그에 해당하는 보수를 받을 수 있고,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을 수 있다고 치자. 그것을 위해서 내 몸을 혹사시키고 마음을 상하게 할 필요가 있을까? 몸이 망가지고 마음이 닫히면 삶의 희망은 사라진다. 몸과 마음의 불편함이 감지되면 내가 과도한 욕심을 부리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봐야할 것이다. 욕심을 내려놓고 삶의 여유를 가지며 나를 돌아볼 수 있을 때 몸의 통증을 점점 사라져 가고 마음은 가벼워진다. 내가 나를 다독거리고 어루만져 줄 수 있는 시간과 에너지를 만들어 놓아야 한다. 이것은 그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말아야할 최소한의 권리이자 행복을 위한 기본요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말이 쉽지 욕심을 내려놓는 다는 게 생각처럼 쉽게 되지 않는다. 이럴 때 활용할 수 있는 쉽고 빠른 방법이 바로 명상이다. 명상 중에서도 몸의 감각과 호흡을 통한 방법이 탁월하다. 일단 몸에 힘을 빼면 집착하는 마음이 풀리고 편안해 진다. 힘을 점점 더 빼고 몸의 미세한 감각에 집중하다보면 안에서부터 차오르는 깊은 충만감을 느낄 수 있다. 누워서 해도 되고 앉아서 해도 된다. 몸의 피부와 접촉하는 것들과 만나는 감촉에서부터 땅에서 끌어당기는 중력도 느껴보자. 힘을 빼고 있는 그대로를 느끼고 알아차리는 과정에서 텅 빈 충만감을 경험하게 된다.

 

여기에 호흡을 추가하면 그 효과가 배가된다. 코를 크게 열고 들이 마시는 호흡의 양을 늘리면 자연스럽게 몸이 팽창하고 이완된다. 공기의 양이 늘어나는 만큼 산소의 농도는 높아지고 밖으로 나가는 이산화탄소의 양은 많아진다. 또한 호흡에 관심을 가지 것만으로도 호흡이 느려지며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그리고 호흡을 통해 ‘텅 빈 충만’의 이치를 쉽게 깨달을 수 있다. 숨을 내쉬면 자연히 숨이 들어온다. 들숨보다 날숨에 더 주의를 기울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나가고 들어오는 호흡을 통해 비우면 저절로 채워지는 도리를 바로 쉽게 터득할 수 있게 된다.

 

도연스님은

카이스트 스님으로 알려진 도연스님은 카이스트에 입학해 전자공학을 공부하다 돌연 출가의 뜻을 품고 스님이 되었다. 이후 카이스트와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등에서 에너지 명상과 참선을 지도했으며, 2015년에는 카이스트 기술경영학과를 10년만에 졸업 하고 오대산 월정사에서 원명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2016년 사미계를 수지하고, 현재 서울 강남 봉은사에서 어린이, 대학생, 청년부 지도법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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