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 '철학의 길'

내가 살고 있는 집 뒷편으로 10m정도를 가면, 비와꼬(琵琶湖) 호수에서 끌어온 소수(疏水)가 흐르고 있고, 그 소수를 따라서 1.8km의 산책로가 있다. 봄이면 산책길 양측으로 수령 100년 가까이 된 500그루 벚나무의 꽃이 만발하는 벚꽃구경의 명소이기도 하다. 또한 6월초가 되면 이 곳에서 자생하는 반딧불이 날아다녀 반딧불 구경꾼들로 붐비고, 가을이면 이 길을 따라 긴카쿠지(銀閣寺), 호우넨인(法然院), 냐쿠오지신사(若王子神社), 에이칸도(永觀堂), 난젠지(南禪寺) 등의 사찰들과 어우러져 단풍으로 절경을 이룬다. 하여 최근에는 관광객이 많이 붐비므로 한가히 사색을 하며 걷기에는 힘들지도 모른다. 이 길은 일찍이 철학자 니시다 기타로(西田幾多郞,1870-1945)가 사색을 하면서 거닐었다고 하여 “철학의 길”이라고 명명하였다고 전한다.

 

철학자 니시다 기타로는 당시의 교토제국대학 철학과 교수로 <선의 연구(禅の研究)> 등을 저술한 일본최고의 철학자로 손꼽히는 사람으로 칸트, 헤겔 등의 서양철학을 흡수하여 일본의 동양적 불교 및 유교 사상을 결합시켜 새로운 일본철학의 이론적 틀을 확립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것을 “니시다철학”이라 하며, 니시다와 그의 학문을 계승한 문하생들의 학풍을 일컬어 “교토학파(Kyoto School)”라 부르는데 최근 들어 이에 대한 서양학자들의 연구도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다고 한다. 일명 슨신(寸心=니시다 교수의 호) 거사로 많이 알려지기도 했던 니시다 기타로가 즐겨 사색을 하며 산책하던 곳이란 것에서 연유하여 이 한적한 개울을 끼고 걷는 산책로는 언제부턴가 “사색의 작은 길(思索の小徑)”, 혹은 “철학자의 길(哲學者の道)”이라 불리다가 1968년(昭和23년)에 교토시가 길을 새롭게 정비하면서부터 “철학의 길(哲學の道)”이란 이름이 정식으로 붙여지게 되었다고 한다.

독일을 가면 하이델베르크란 도시에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하이델베르크대학이 있다. 1386년에 독일 최초의 대학으로 설립이 된 이곳은 수많은 예술가, 시인, 철학자, 사상가 등을 배출한 곳으로 중세시대의 성(城)과 대학으로 인하여 형성된 학원도시(대학 속의 도시란 말이 적절한 표현일지도 모른다)로 유명하다. 넥커강을 끼고 하이델베르크성을 바라다보는 언덕에 “철학자의 길(Philosophenweg)”이란 곳이 있다. 헤겔, 하버마스, 야스퍼스, 괴테, 하이데거 등의 유명한 시인, 예술가와 철학자, 그리고 사회학자이자 철학자, 경제학자이기도 한 막스 웨버가 사색을 하며 걸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넥커강을 건너기 위해서는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 중의 하나인 카를 테오도르 다리(Karl Theodor Bruke)을 건너야 하는데 많은 철학자들이 거닐던 곳으로 유명하다. 이 “철학자의 길”의 유래는 명확하지 않으나 하이델베르크대학 철학도들이 걸었던 산책로에서 연유하였다고 한다.

니시다의 문하생 중 많은 사람이 독일의 하이델베르크대학으로 유학을 경험하였고 그곳의 학풍을 동경하여 독일의 철학자의 길을 모방하여 사색의 길, 철학의 길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러나, 그 출발은 교토대 의학부생들(학도대로 하이델베르크에 유학을 다녀왔으며, 원래 하이델베르크대학은 의학으로 시작한 곳임)이 처음 불렀다는 설과 주변의 교토시의 주변주민에 의해서 붙여졌다는 설, 그리고 경제학자 고쿠쇼 이와오(黒正巌, 전 교토대학 농경제과 교수)이 자주 이곳을 산책하여 명명했다는 설이 등이 있다. 철학자가 사색을 하며 산책을 하였다는 설은 사후적으로 그럴듯하게 장식한 말임에는 틀림이 없는 모양이다. 정작 사색을 하며 산책을 즐겼다는 니시다 기타로는 그가 남긴 문장에서도 불과 몇 번을 제외하고는 산책을 하였다는 기록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또 하나 이 유래에 대한 설명이 독일의 철학자가 사색했다는 “철학자의 길” 과 너무나 흡사하게 딱 맞아떨어지는 것도 결코 우연은 아닐 것이다.

이는 지금은 동경의 심볼처럼 된 도교타워(철탑)가 에펠탑의 모습을 그대로 본떠서 에펠탑보다 몇 미터 높게 만들었다는 것과도 같다. 당시 에펠탑은 프랑스 철강 산업의 발전으로 어느 철강회사의 강압적인 공사에 의해 세워졌으나, 파리의 전통과 자연경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수 십 년 동안 탑을 파괴하자는 파리시민의 반대운동이 격렬하게 계속이 되었다. 그러나 결국 파괴시키지는 못하여 그대로 두게 되었으나 오히려 지금은 개선문과 더불어 파리의 상징이 되어 있다.

교토 '철학의 길'

이렇듯 일본인들은 모방을 감쪽같이 잘 한다. 모방을 하여 자기 것으로 만들고 이를 또한 멋지게 포장하여 자기들의 문화를 만들어 가고 역사를 만들어 간다. 최근 것으론 동경디즈니랜드와 오사카의 USJ가 그렇다. 이에는 서양인 및 서양문화에 대한 강한 열등감이 배후에 깔려 있다. 일본역사를 그들 스스로 동양사가 아닌 서양사의 일부로 분류하여 규정한다거나, 일본 왕실이 버킹검 궁전을, 기업과 학제가 독일식의 시스템을, 경제지표가 미국의 그것을 열심히 캐치 업 하고자 맹추격을 하는 것도 그러한 열등감에 의한 이유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찬반양론 혹은 좋고 그름을 가름하기에 아직 이르지만 일본인들의 그러한 자세와 노력이 지금의 그들을 있게 한 것은 분명하다.

철학의 길이 문학의 길이 됐든 예술의 길이 됐든, 이 대도시의 한 편에 이렇듯 한적한 사색의 공간, 휴식의 공간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인 듯하다. 더구나 내 집 가까운 곳에 있어서 좋다. 날마다 이 길의 남은 반대쪽의 길(아직 이름이 없지만)을 걸어 연구실을 가면서, 언젠가 이 길은 경제학자의 길이라 불리어질 것인가 하면서 산책을 하곤 한다.

교토 '철학의 길'

긴카쿠지(銀閣寺) 입구를 지나 호우넨인(法然寺)을 지날 쯤의 철학의 길엔 니시다 기타로의 시비가 서 있다. 그가 즐겨 지었다는 와카(和歌=시조와 같은 일본 전통시의 한 장르)의 구절이 아래와 같이 적혀져 있다.

“사람은 사람/ 나는 나이어라/ 어찌 되었든/ 내가 가는 길을/ 나는 갈 뿐이니라(人は人/吾は吾也/とにかくに/吾が行く道を/吾は行くなり)”

<해설(의미): 다른 사람의 일은 다른 사람의 일, 나는 나의 할 일이 있지 않는가. 무엇이 어찌 되었든지, 내가 가야할 길을 나는 갈 뿐이다>

 

 

 

송휘영 교수(영남대학교 독도연구소 연구교수)는

농업경제학박사(日本 京都大), 동아시아국제정치학회 부회장, 한국일본문화학회 부회장,  동북아역사재단, 국립중앙과학관, 독도재단 등 자문위원, 환경법률신문 논설위원, 전) 한국그린투어리즘연구소 소장, 전) 농식품신유통연구원 연구위원, 전) 일본 교토대학 객원연구원. 저서로는 '일본 향토사료 속의 독도(2014, 선인)' 외 20여 권이 있으며, 여러 매체에 독도에 관련된 칼럼을 게재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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