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원정사 대웅보전에서는 윤달 5월 생전예수재와 백중 인연 영가 천도재를 발원하는 지장경 100일 기도를 일심으로 정진하고 있다. 법당 창밖에는 오랜 가뭄 끝에 여름을 예고하듯 단비가 내린다. 육화전과 만불전에서도 지장경 독송에 여념이 없다. 불자님들은 저마다 조상님과 인연 영가께 예를 올리고는 공양간으로 향한다. 그 속에 밝은 모습의 조연심월 보살님과 경내를 걷다 신록 속에 앉았다.

“연심월 법우님은 어떤 인연으로 혜원정사에 발 딛게 되셨나요?” 하고 거두절미하고 여쭸다.

“1979년이었죠. 저는 모태신앙의 기독교인이었는데, 불교 집안에서 자란 남편과 결혼하고부터는 9남매 중에서 맏이 아닌 맏이 역할을 해왔습니다. 매일 울면서 힘들어하는 것이 안쓰러웠는지, 하루는 남편이 혜원정사에 한 번 가보라고 권유하더군요.”

남편의 권유에 연심월 보살님은 불교와 짧은 인연이 있었던 옛 추억이 떠올랐다고 한다. 어릴 적 친구를 따라 김천 직지사에 소풍을 간 추억을 떠올리며, 참 편안하고 좋다는 느낌을 되새기게 되었다고. 그렇게 자석처럼 이끌리듯 혜원의 도량에 발을 디딘 보살님은, 그날부터 39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절을 오갔다.

“어느 날 불교대학 2기를 모집한다고 하더군요. 이제는 법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발심하여 열심히 강의를 들었습니다. 사성제, 신도 5계, 십이인연(十二因緣)법을 그때 배웠지요. 모든 것은 인연으로부터 일어났다가 인연이 다하면 멸한다는 사실을요. 무명(번뇌)으로 괴로워한 일들이 부질없음을 알아차렸습니다. 남편과 부모, 자식 그리고 형제자매, 친척, 이웃 등 인연이 있으므로 만남도 있고 머잖아 이별도 있음을요.”

불교의 가르침을 통해 ‘있을 때 최선을 다 해야겠다’는 마음을 내고, 그러다 보니 참회 기도를 하게 되고 불자로서 성숙해지는 것 같다고 보살님은 덧붙인다.

“나이가 들면 알게 된다는 말이 실감납니다. 인연법을 공부하면서 세상을 넓고 크게 보기 시작했어요. 항상 넓고 크게 그림을 그리면, 제 마음도 따라서 넓게 보려고 생각하니까 순간순간 가족 간의 상처도 스르르 소멸되더군요. 불교대학에서 지금도 부처님 법을 공부하고 있지만, 배움은 늘 새롭고 벅찹니다.”

보살님은 스님께서 강조하시는 불교의 수행과정 중 신해행증(믿음, 이해, 수행, 증득) 공부를 하면서 자비회에서 봉사활동도 시작하게 되었다. 인연법의 소중함을 알면 생활이 즐겁다는 것을 일찍이 깨달은 것이다.

“합창단에서도 13년간 환희심으로 음성공양 올리며 많은 가피도 받았습니다. 아들과 딸을 낳아서 아이들 고3 기도 때 철야 기도도 해보고, 잘 키워 사회에 이바지하고, 자식들은 저마다 짝을 만나서 행복하게 생활하고, 또 손자 손녀들 크는 것을 보면서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렇듯 연심월 보살님은 수십 년간 절에 다니며 인연법을 제일 큰 그림으로 그렸다. 그리고 여전히 수행도 게을리 하지 않는 부지런한 불자이다.

“만불전에서 부처님께 마지를 올리며 ‘부처님 오직 이 공양 받으소서!’를 외칠 때 환희심으로 가슴이 벅찹니다. 또 집에서는 매일 사경을 하고 있습니다. 집에 거사님도 좋아하니까 함께 경을 읽고 기도할 때도 많습니다. 거사님도 옛날에 연꽃 부부회에 함께 동참하면서 불교에 귀의했기 때문에 서로의 신행활동에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보살님은 유수와 같은 세월에서 인생의 많은 것들을 불교를 통해 배웠다고 말한다.

“올해는 생전예수재를 봉행하고 있습니다. 저는 영가단에 앉아서 기도합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부모가 생전에 영가단에 올렸으니까 자식의 도리로 따르라고 했어요. 이제는 한결 마음이 가볍습니다.”

단 한 가지 발원이 있다면 생을 마칠 때까지 혜원정사를 오갈 수 있도록 해 달라는 보살님의 말에 가만히 두 손을 모으게 된다. 자리에서 일어나 함박 미소를 짓고는 육화전으로 향하는 법우의 모습이 경내에 피어난 하얀 수련을 닮았다. 만남의 인연은 오늘도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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