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선정인 보살님이 들려주는 혜원정사와의 인연은 제1회 화엄산림법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연히 버스를 타고 교대앞역을 지나던 중 혜원정사 화엄산림법회의 현수막을 보고 절을 찾게 되셨다고 한다. 그렇게 시작된 혜원정사와의 인연은 참다운 깨달음으로 삶의 고통 속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생애 가장 큰 가피였다고.

“저는 8남매의 맏이인 지금의 남편을 만나 시동생과 시누들을 공부시키며 결혼할 때까지 시어머니와 함께 뒷바라지를 했습니다. 그때 당시 피눈물 나는 시집살이를 참고, 지금의 나로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부처님 덕분입니다. 혜원정사와 인연을 맺고 불교에 눈을 뜨기 시작하여 제1회 한국선다회에 입학한 후 지금까지 차茶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제1회 불교대학부터 22회까지 빠지지 않고 불법을 공부하여 포교사 시험에도 합격하여 활동하기도 했지요.”

힘든 시절 부처님을 만나 불법에 귀의하게 되었다는 선정인 보살님은 부처님의 가피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이어갔다.

“저는 본래 몸이 허약한 편이였어요. 하루는 꿈에 주지 스님이 빨리 병원에 가보라고 혼을 내시는 거예요. 아침에 병원으로 갔더니 협심증이라며 당장 입원을 하라고 하더군요. 그때 수술 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또 어느 날 아침에 잘 자고 일어나서는 벽에 부딪혀 넘어졌는데 꽈당 소리에 남편이 뛰어와 곧바로 응급실로 갈 수 있었습니다. 원래 남편은 항상 새벽 5시쯤에 등산을 가는데, 그날은 왠지 등산을 가기 싫었다는 거예요. 그때 남편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지금도 아찔합니다.”

보살님은 그때 갑작스런 사고가 있고 난 후 독거노인의 비애를 느꼈다고 한다. 곧바로 병원으로 가 치료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을 늘 감사히 생각하며, 그 후 사회복지법인 혜원에서 독거노인들을 위한 도시락 배달 봉사를 했다고 한다.

한선정인 보살님과 다인회 도반들의 모습.

“저는 항상 아프거나 무슨 일이 일어나면 먼저 꿈속에서 주지 스님을 뵙게 됩니다. 그러니 시간만 되면 혜원정사 법당에서 기도를 하고 공부를 했지요. 또한 기도를 할 때는 일심으로 죽을힘을 다해서 기도를 합니다. 옛날에 아들을 위해 백일기도를 할 때는 미국에서 최고의 의대 교수가 되기를 발원했는데, 지금 미국 스탠퍼드 의대의 교환 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딸은 의무행정학 박사로 근무하고 외손자는 교통항공대학 운항과를 나와서 공군 ROTC에 합격했다는 연락을 받고 기뻤습니다. 또 아버지 따라 간 손자는 미국에서 오바마 대통령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일심으로 기도를 하니 집안 곳곳에 부처님의 가피가 깃들었다는 선정인 보살님. 보살님은 매일 아침 일어나면 제일 먼저 남편에게 삼배를 한다고 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남편이 있든 없든 삼배를 합니다. 처음엔 건강한 모습으로 가족들 옆에 있어줘서 감사하다고. 두 번째는 돈 걱정 하지 않게 해주어서 감사하다고. 세 번째는 내가 원하는 기도를 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기도합니다. 인생에서 가장 잘 한 일은 살면서 힘든 순간들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가족들과 함께 이겨낸 것입니다. 참을 인(忍)자 세 번이면 살인도 면한다고 하잖아요. 힘든 순간들을 참고 참다 보니, 불법에 귀의하고는 진공묘유 온갖 그릇됨을 매일 비웠습니다. 잠잘 때 비우고 아침에 일어나면 비우고 그렇게 매일 삿된 마음을 비우다 보니 아픈 기억들이 소멸되더군요. 비움을 통해 참된 것을 채워 나갔습니다. ‘때문에’가 아닌 ‘덕분’으로 바뀌었죠. 그리고 범종각에서 범종을 치면서 ‘삼라만상 모든 중생들을 구제해 주십시오.’라며 남편을 위해서도 열심히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남편과의 사이가 화목하고 자식들과 손자 모두 행복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뭐든지 할 일을 할 때 살아 있는 것이지, 할 게 없다고 놀면 그건 살아도 죽은 것이지요.’

인터뷰를 마치고 선정인 보살님이 자리에서 일어나 육화전에 조상님을 뵈러 가봐야겠다며 활짝 웃으신다.

육화전에 조상님 위패를 모셔두고 매일 지장경 독송을 하신다는 보살님은 잠시 눈을 감고 앉아서 명상을 하시고는, 어느새 이마에 맺힌 땀방울도 잊은 채 일심으로 염불하시는 모습이 참으로 고우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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