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들판에서 모래로 탑을 쌓거나 손톱이나 나뭇가지로 부처님을 그리거나 기쁜 마음으로 부처님을 찬탄하거나 한 송이 꽃으로 부처님 앞에 공양하거나 불상 앞에 나아가 합장하여 예배하거나 산란한 마음으로 한 번만 염불하더라도 그와 같은 인연들이 모여 성불 인연을 맺는다. 『법화경』 중에서

 

부처님을 생각하는 공덕이 그만큼 무량하다는 것을 비유로 든 대목이다. 허허벌판에 하나의 절을 세운다는 건, 이 모든 비유에 걸맞게 끊임없이 생각하고 고민하고 또 엄청난 원력을 동원해야 가능한 일이다. 들판에 모래탑 하나를 쌓더라도 아래에서부터 어떻게 위로 올릴지를 고민하고, 나뭇가지로 부처님을 그리면서도 부처님의 상호를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되뇌어야 하는데, 하물며 새로 짓는 포교당이야 오죽할까. 게다가 간절한 예경의 마음으로 도량을 찾아올 불자들을 생각하여 내부를 장엄하고, 부처님을 잘 모시기 위한 불단을 조성하는 일은 또 얼마나 많은 번뇌를 안겨다 주는 일인가. 인연들에게 성불을 가져다주기 위한, 법연의 고리를 맺어 가는 대작불사가 바로 포교당 건립이라는 생각이다.

용잠사

극락은 현생과 내생의 교차점

용잠사(주지 원공 스님)는 지난 2016년 경남 창원 용잠리에 포교당을 마련했다. 포교당의 이름은 마을 이름을 그대로 딴 ‘용잠사’다. 극락전을 주법당으로 삼고 있는데, “극락전은 현생의 수행과 내생의 소원을 함께 발원할 수 있는 곳”이라고 주지 스님은 설명했다. 독특하게 석가모니부처님을 후불탱화로 모신 것도 인상적이다. 이에 “사바세계는 석가모니부처님의 법이 행해지는 곳이며, 극락세계도 결국 석가모니부처님으로부터 소개받은 곳이기 때문에 그분의 가르침을 행하고자 하는 의미에서 꾸미게 되었다.”고 덧붙였다.

사견을 덧붙이자면, 극락은 그야말로 내생과 현생의 교차점이다. 현생에서 수행하고 발원하는 일이 내생에 극락 환생으로 이어진다면 그것도 좋은 일이요, 지금 이 순간을 극락으로 여긴다면 그 또한 극락을 현생으로 가져온 것이니 이것도 맞는 말이다. 용잠리에 들어선 극락전은 불자들의 수행과 내생에 대한 발원이 함께 머무는 곳이니, 극락이라는 말이 참으로 잘 들어맞는다.

용잠사 극락전은 아미타불을 주불로 모시고 후불탱화로 석가모니부처님을 모셨다.
용잠사 극락전에 모셔진 신중탱화.

포교당의 역할은 불자 교육

용잠사 도량은 그리 크지 않다. 현대식으로 지은 건물이라 외형상으로는 특별할 것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샅샅이 들여다보면 스님의 생각이 고스란히 담긴 공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곳에는 유독 벽이나 기둥에 동자가 많이 그려져 있다. 나름 유추해보건대 ‘불교대학’으로 불자 교육을 가장 최우선시 여기는 스님의 생각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부처님의 설법을 청하기 위해 벽 곳곳에 그림으로 몰려든 동자들은 한결같은 마음으로 법을 구한다. 원공 스님은 선방에서 오랫동안 공부한 수좌다. 게다가 반야심경을 풀이한 강설집도 발간했다. ‘불자 교육’은 스님의 공부 과정에서 내린 하나의 결론이다. 어린 동자들이 부처님의 법을 구하고자 발원하듯, 이곳 용잠사에 부처님의 법을 배우러 오길 바라는 마음이 닿아 있는 셈이다.

그래서 용잠사는 매월 첫째 주 일요일에는 일요법회를 통해 매 회 다른 법사 스님을 초청해 금강경 강설 수업을 전개하고 있다. 또 둘째 주 금요일에는 참선정진을, 셋째 주 금요일에는 다라니 및 금강경 독송 정진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일요법회는 가장 많은 불자들이 용잠사를 찾는 날이기도 하다. 여러 법사 스님을 청해 조게종의 소의경전인 금강경을 배우는 가장 기본적인 교육이라는 스님의 의도가 적중한 것이다.

소박한 방사, 불자들을 위한 공간

법당 오른편에는 공양간과 종무소, 요사채를 두루 갖춘 2층 건물이 함께하고 있다. 1층 공양간은 사찰 규모에 비해 매우 큰 편이다. 안에는 따로 차를 마실 수 있는 정자도 있어, 불자들에게 편안한 공간으로 마련됐다. 2층은 종무소와 스님의 방사, 그리고 작고 특별한 공간이 마련돼 있다. 종무소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여러 개의 칸막이가 쳐져 있는 ‘참선 공간’을 만난다. “참선 공부를 하다 보면 잡념도 지나가고, 방해받기가 쉽거든요. 그래서 불자들더러 편하게 참선하라는 의미에서 아이디어를 냈지요.” 커다란 나무 칸막이가 거실을 가로막고 있다. 불자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귀한 정진처가 되었지만 스님에게는 나름 불편할 법도 하다. “요즘 사람들이 공부할 시간이 없잖아요. 잠깐이라도 자신의 마음을 챙길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좋을 것 같아요. 공부하실 분들이 더 늘어난다면 그게 더 큰 기쁨이지요.”

용잠사 주지 원공 스님

시공(時空)이 함께 익어 가는 곳, 용잠사

스님을 찾아뵙기로 한 날, 마침 사시예불 중이던 스님을 기다리기 위해 바깥을 한참 둘러보고 있었다. 하나의 서사곡을 듣는 것처럼, 스님의 절절하고 구슬픈 예불 소리가 법당 문을 헤집고 나왔다. 아무리 봐도 신발은 한 켤레인데 말이다. 예불을 마치고 법당문을 홀로 나오는 스님과 마주치자 왠지 머쓱했다. 축원문에 적힌 이름의 숫자, 법당을 메운 불자들의 수. 과연 그것이 중요한 것인가 싶다. 스님은 용잠리에 극락을 만들었다. 그것은 시공으로 따질 수 없는 공간이다. 그러니 스님의 기도는 시공을 관통하여 모든 중생을 극락으로 이끄는 메시지였던 거다. 이제 첫발을 디딘 용잠사, 아직 새것처럼 느껴지는 이 공간이 익숙하게 시간을 머금어 갈 때쯤, 나만 듣기 아까운 스님의 예불 소리가 불자들의 마음을 울리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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