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한짝, 전기선 하나,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고 불사를 해온 7년이었습니다”
범어사 주지 경선 스님이 취임 2300일을 맞아 그간의 불사를 되짚어보고, 소회를 전하는 시간을 가졌다. 8월 2일 범어사 주지실에서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경선 스님이 꺼낸 첫마디는 “선군정치는 법이 없고, 덕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일이 이루어지는 것”이라며 운을 뗐다. 경선 스님은 2016년 4월 11일 첫 주지 소임을 맡은 후 재임 주지로서 두 번째 소임을 보고 있다. 두 번째 만기도 벌써 절반을 지나고 있다. 총 6년 4개월이었다.

기자간담회를 갖고 불사의 경과를 설명하는 범어사 주지 경선스님.
기자간담회를 갖고 불사의 경과를 설명하는 범어사 주지 경선스님.

 

그간 선문화교육관, 템플스테이관, 성보박물관 등의 대규모 신축 불사를 완료했으며, 경내에는 관음전 기와번와, 원주실 개축, 화장실 전면 개축 등 환경 개선 사업을 실행했다. 또 천일화엄법회, 90일 백중지장기도, 어린이합창단 창립, 다양한 초청 강연을 통해 불자들의 기도와 신행활동을 지원했다. 또 비림 조성, 범어사 계맥 통합 등을 비롯해 범어사 승풍 진작에 앞장섰다.

스님은 최근 완공한 범어사성보박물관 신축 불사 중 귀를 크게 다쳤다. “첫 4년은 인연이 되었는데 두 번째 4년은 조금 무리를 했나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6년의 시간을 잠시 멈추고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지요.” 총림에서 진행되는 불사는 임회와 교구종회 등의 의결기관을 거쳐야 한다. 불사에 따른 행정적인 절차와 더불어 내부 동의를 거치는 과정도 중요하다. 경선 스님 주지 임기 기간 동안 임회 12회, 교구종회를 6회 실시했다. 약 2년간 코로나 시국이었음을 감안하면 쉴새없이 달려온 불사의 과정을 짐작할 수 있다.

“버스비가 없어서 오가지를 못했고, 대학에 가고 싶었는데 공부를 하지 못했던 것이 아쉬워서 지금이라도 누가 공부하겠다고 하면 기꺼이 돕고 있습니다.” 2017년 신설된 ‘동산장학금’은 매년 동산 혜일 대종사 추모재에 사중 교육기관, 해동중학교, 금정중학교 등에 총 2천만원 이상씩 장학금을 전달해오고 있다. 최근 스님의 개인전 ‘월인 묵언 선서화전’을 마친 후 경선 스님은 재임 중 신설한 동산장학회에 전시회 수익금 1억원을 전달했다. 동산 스님의 가르침을 계승하면서, 현재 뿐만 아니라 훗날에도 장학기금이 안정적으로 운영되기를 바라는 의지였다.

뿐만 아니라 범어사 율학승가대학원, 승가대학 등에도 1억 이상을 전달했다. “모든 불사는 교육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스님은 불사 목적에 분명히 선을 그었다. 선문화교육관을 건립한 이후에는 시민선방, 불교대학 등 신도교육을 위해 활용하고 있고, 성보박물관은 범어사의 역사를 그대로 후손에게 보존 전승하기 위해 운영되고 있다. 불사를 마친 후에는 그 공간을 미래 교육을 위한 장으로 활용하는 것이 최근 범어사 불사의 수순으로 이어지고 있다.

범어사 주지는 부산불교연합회의 당연직 회장으로 추대되고 있다. 다시 말해 부산불교계에서 범어사는 중심에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이에 주지 경선 스님은 부산 시내 곳곳에 흩어있는 불교계 여러 신행단체들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고, 범어사 내부의 신행단체들에게도 신행의 편리를 도모하기 위해 불사를 추진하고 있다. “그동안 공간적인 한계 때문에 외부에 두었던 금정불교대학을 경내로 끌어들이면서 신도들의 공부가 신행으로 이어지게끔 만들었다는 점에서 여러 단체들이 외부에서 공간을 마련해 어려움을 겪는 일이 없도록 하고자 함입니다.” 관련 불사는 현재 설계를 마치고 허가를 기다리는 중이다.

범어사 전경
범어사 전경

 

주지 스님은 그간 이례적인 모습으로 대중들에게 나타나곤 했다. 사륜구동 오토바이를 타고 먼 발치에서 스쳐지나가기도 했고, 한겨울에는 털장갑 대신 목장갑을 끼고 나타나기도 했다. 불자들이 먼저 다가와 아는 체를 하면 오히려 무안한 쪽은 스님이었다. “60년 간 범어사를 보며 어떻게 변화하면 좋겠다라는 마음을 늘 갖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소임을 보게 되어 그간 생각했던 것을 실현할 수 있었지요. 그래서 열정을 갖고 불사를 했습니다. 다시 하라해도 못합니다. 남은 일은 이 모든 불사가 범어사와 불교 교육을 위해 잘 쓰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권위를 내려놓고 바쁘게 달려온 시간이었다.

스님에게는 2년여의 임기가 남아있다. 부족한 주차면수를 늘리고 대법당 건립 등 남은 일도 있다. 마무리 지어야 할 일도 있고, 이제 시작해야 할 일도 있다. 지나온 시간에 비하면 남은 시간은 짧다. 그래도 “다음 생에도 중으로 태어나겠다”는 스님의 바람은, 지금의 삶에 대한 부끄럼 없는 당당함과 주어진 소임은 이생에 모두 해 마치겠다라는 강한 원력을 품은 한마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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