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자기하고 깨끗한 골목. 틈새마다 햇빛이 쨍하게 비춘다. 그 위로는 ‘행복밥상’ ‘행복학교’ ‘행복세탁소’ ‘행복부동산’이 곳곳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다. 골목의 정체를 물었다. 그 중심에는 ‘행복선원’ 있다고 한다.

부산 북구 덕천동에 위치한 환경포교의 도량 '행복선원'
부산 북구 덕천동에 위치한 행복선원.

지난달 5일, 부산 북구 덕천동 일대는 활기가 넘쳤다. 어린이가 친환경 물품을 직접 만들고 체험하는 이색적인 플리마켓이 한자리에 모였다. 일명 ‘어린이 아나바다’, 어린이에게 ‘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쓰는’ 친환경 운동의 의미를 놀이로써 일깨워주기 위한 행사다.

행복선원이 주최한 이날 행사는 많은 어린이의 참여 속에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그러나 현장 어느 곳을 봐도 ‘행복선원’의 흔적은 없다. 행사장 입구에 걸린 현수막에는 투박하게 써놓은 날짜와 장소, ‘어린이 아나바다!’가 전부다.

‘행복선원은 한 발짝 뒤로, 대신 주민들의 일상에 스며드는 포교’가 목표라는 행복선원 주지 윤광 스님. 지난달, 행복선원의 윤광 스님을 찾아 이야기를 나눴다.

 

법당에서 골목으로, 걸으면서 휴지 줍는 ‘플로킹 법회’

지난해 진행된 '행복한 플로킹' 행사  (사진=행복선원)
지난해 진행된 '행복한 플로킹' 행사  (사진=행복선원)

지난 2020년, 북구 덕천동에 행복선원이 등장했다. 산속에서 할 수 있는 포교와 도심 속에서 할 수 있는 포교는 다르다고 생각했다는 윤광 스님은 포교 방향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때 골목길에 쌓여있는 쓰레기들이 눈에 들어왔다. 스님은 밖으로 나갔다. 일요 법회가 끝나면 불자들과 함께 쓰레기를 주우러 다녔다. 산책하면서 쓰레기를 줍는다는 의미의 신조어 ‘플로킹’. 단어조차 흔하지 않았던 때에 행복선원이 그 시작을 끊은 셈이었다.     

(사진=행복선원)
(사진=행복선원)

“여기 절에서 나온 사람들이 쓰레기를 줍고 있어. 되게 좋은 일 하네!”

여느 때와 같이 쓰레기를 줍던 날, 골목을 지나가던 사람이 전화 통화를 하며 말했다. 스님은 해답을 찾았다. 밖으로 나와 주민들과 소통하는 것, 소통하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자연스럽게 전하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행복선원의 찾아가는 도심 포교, ‘플로킹 법회’가 시작됐다.

법회는 성공적이었다. 깔끔해진 골목, 보람찬 활동에 가족 단위의 참여자가 늘기 시작했다. 플로킹 법회는 환경을 위한 작은 실천으로도 이어졌다. 불자들은 쓰레기를 줍다 목이 마르면 미리 준비해 온 개인 컵으로 물을 나눠 마셨고,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일환으로 동네 체육관을 찾아 아이들에게 ‘발우 공양’을 가르치기도 했다. 지명화 보살은 “특히 발우 공양이 학부모들 사이에서 호응이 좋았다. 아이들이 음식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더 큰 성과는 따로 있었다. 플로킹 법회가 환경보호를 넘어 지역사회를 위한 ‘상생의 선순환’으로 이어졌다는 점이었다. 

 

골목에서 도심으로, 지역 사회와 함께하는 ‘부산행복네트워크’

지난해 5월, 지역 공동체 6곳과 함께 출범을 알린 '부산행복네트워크' 협약식 (사진=행복선원)
지난해 5월, 지역 공동체 6곳과 함께 출범을 알린 '부산행복네트워크' 협약식 (사진=행복선원)
부산행복문화제 전시장 (사진=행복선원)
부산행복문화제 전시장 (사진=행복선원)

지난해 5월 출범한 ‘부산행복네트워크’는 무지개봉사단, 행복한 마을 공동체, 남산정종합사회복지관, 부산친환경생활지원센터 등 행복선원을 중심으로 지역 공동체가 모인 단체다. 환경과 복지, 문화까지 각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이들은 친환경 생활과 주민들을 위한 문화행사 등 지역사회의 발전을 위해 힘을 모으기로 했다.

부산행복네트워크는 출범을 기념하며 ‘부산행복문화제’도 개최했다. 행사에서는 친환경 샴푸와 치약부터 버려진 나무를 재활용한 책꽂이까지 행복선원의 불자들이 함께 모여 만든 친환경 제품들이 전시됐다. 어떤 공간은 덕천동 주민들의 추억이 담긴 소품으로 채워지기도 했다. 코로나19로 지친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차분히 돌아보는 시간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다. 윤광 스님은 “일회성에 그치는 행사가 아닌, 앞으로도 이웃 주민들과 소통하고 상생할 수 있도록 지역 공동체 차원의 행사로 이어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친환경 제품이 놓인 공간 (사진=행복선원)
친환경 제품이 놓인 공간 (사진=행복선원)

주민들의 뜨거운 관심을 모은 행복문화제는 행복선원에서 여전히 진행 중이다. 행복선원 법당 한 켠에는 친환경 제품들이 전시돼 있고, 법당 아래층에서는 체험 공방이 운영되고 있다. 1층 로비는 가장 다양하게 쓰인다. 어떤 때는 봉사단체의 회의장으로, 이웃 주민들이 잠시 머물다가는 쉼터로, 또 어린이들이 마음껏 뛰노는 놀이터가 되기도 한다. 불자와 비불자, 어린이 어른 너 나 할 것 없이 모여들고 있는 행복선원은 법당에서 골목으로, 골목에서 도심으로 향하며 모두를 위한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다. 

 

우리들의 다정한 이웃 행복선원, 일상 속으로 ‘행며들다’

행복이 가득한 행복선원 골목
행복이 가득한 행복선원 골목

이야기를 마치고 스님과 덕천동 골목을 걸었다. ‘행복밥상’ ‘행복학교’ ‘행복세탁소’ ‘행복부동산’... 행복선원이 개원한 이후 따라 생겨난 ‘행복’ 가게들이란다. 그야말로 행복이 가득한 골목이다.

걸음걸음마다 골목을 지나는 이웃 주민들이 스님에게로 다가온다. 스님은 깨끗해진 골목을 안내하랴, 말을 거는 동네 주민들과 인사를 나누랴 여념이 없다.

주민들은 스님에게 주로 담배꽁초가 쌓이기 시작하는 골목 위치를 말한단다. 어떤 주민은 대뜸 행복선원에 찾아와서는 “사장님요! 괜찮은 이삿짐센터 좀 알려 주이소!”하고 물은 적도 있단다. ‘행복선원은 한 발짝 뒤로’라지만, 이미 덕천동 주민들의 일상에 스며든 행복선원이다.

이 풍경을 보고 있자 하니 문득 ‘다정한 이웃’ 스파이더맨이 떠오른다. 여느 슈퍼히어로들과는 다르게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며 정의를 수호하는 스파이더맨은 이곳 북구 덕천동에도 존재했다. 환경을 수호하는 히어로, 덕천동 주민들의 삶에 맑고 깨끗한 숨을 불어넣는 우리들의 다정한 이웃, 행복선원은 오늘도 온 거리를 행복으로 물들이며 주민들의 일상 속으로 ‘행며들고’ 있다.

모두를 위한 공간으로 변화 중인 행복선원
모두를 위한 공간으로 변화 중인 행복선원
지난달 5일 진행된 ‘어린이 아나바다’ 행사 (사진=행복선원)
행복선원이 주민들과 함께 만든 친환경 천연치약
행복선원 법당 한 켠에 있는 재활용 목공예 책꽂이
행복선원 법당 한 켠에 있는 재활용 목공예 책꽂이
플로킹 참가비를 모아 진행한 '노란 발자국 프로젝트' (사진=행복선원)
플로킹 참가비를 모아 진행한 '노란 발자국 프로젝트' (사진=행복선원)
지난해 개최된 행복한 ㅂ
지난해 개최된 '행복한 플로킹' 법회 (사진=행복선원)
행복선원의 손길이 닿은 깨끗한 덕천동 골목
행복선원의 손길이 닿은 깨끗한 덕천동 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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