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9일, 천일의 기다림 끝에 신축 복합문화공간 '쿠무다'가 개원했다.
지난 12월 9일, 천일의 기다림 끝에 신축 복합문화공간 '쿠무다'가 개원했다.
주석 스님이 무대에 올라 인사말을 하고 있다.

“...........” 

때로는 몇 마디 말보다 침묵이 사람의 마음을 관통하곤 한다.
쿠무다의 개관식이 있던 날, 무대 위에 오른 주석 스님은 감회가 남다른 듯 눈시울을 붉히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저 이 순간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듯 공연장을 가득 메운 한 사람 한 사람을 눈에 담아둘 뿐이었다. 객석에 자리한 많은 스님과 불자들 역시 주석 스님의 마음을 아는 듯 함께 눈물을 닦았다. 어떤 말도 오가지 않았다. 잠시 시간이 멈춘 것처럼 고요했던 그때, 백 마디 말보다 더욱 강한 진심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지난 9일, 옥상에 마련된 바다법당에서 주석 스님을 만나 소회를 묻는 시간을 가졌다.
지난 9일, 옥상에 마련된 바다법당에서 주석 스님을 만나 소회를 묻는 시간을 가졌다.

지난 9일, 쿠무다 개관식의 1부 기념법회를 마치고 옥상에 마련된 바다법당에서 주석 스님을 만나 소회를 묻는 시간을 가졌다. 한국불교계 최초의 복합문화공간답게, ‘왜, 어쩌다가, 어떻게’ 이 모든 것들을 그리기 시작했냐는 물음이 여기저기서 가득하다. 익숙한 듯 씩씩하게 웃으며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고 말하는 주석 스님. 그렇게 ‘쿠무다’를 처음 떠올렸던 10여 년 전으로 돌아갔다.

― 10여 년 전, 무엇을 계기로 ‘쿠무다’를 그리기 시작했는지?
“저는 언젠가부터 예술을 하고, 문화를 만드는 분들이 수행자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림을 그리는 분도 음악을 만드는 분도, 모든 예술가들은 한곳에 집중해서 고요한 상태가 되었을 때 최상의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거잖아요. 수행자들도 마찬가지죠. 눈에 보이지 않는 깨달음을 위해 한걸음 한걸음 정진해 나가니까. 예술가들도 마음과 혼연일체(渾然一體)가 되지 않으면 완전한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없고, 수행자들도 완전한 행복과 안락에 이를 수 없어요. 이런 생각에서 쿠무다를 처음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 왜 이런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는지?
“행복해지기 위해서죠.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서 많은 걸 합니다. 때로는 밥을 먹거나 차를 마시는 것일 수도 있고,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음악을 듣거나 어떤 문화를 향유하고, 기도와 수행을 하는 것일 수도 있죠. 바로 다음, 마지막으로 넘어가면 ‘완전한 행복’으로 가기 위함이 아닐까 싶습니다. 부처님 말씀에도 방편과 비유가 필요하듯이, 마음속 완전한 행복으로 이르기까지 세속에 향유해야 하는 문화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문화예술은 마음의 결을 좀 더 안정적이고 곱게, 티 없이 맑게 만들어 주지 않나요. 부처님 경전을 보고 기도를 하면서 생각했던 부분이었습니다.”  

― 신축 쿠무다 개관까지의 진행과정에서 걱정한 부분은?
“걱정이 참 많았어요. 책임 의식도 느꼈어요. 종단의 어른 스님들과 모든 불자님들이 걱정하시는 부분, ‘전통성이 와해되지 않을까’하는 걱정은 저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불교의 청법가 말씀 중에 이런 구절이 있어요. ‘옛 인연을 이어서 새 인연을 맺도록.’ 제가 참 좋아하는 구절인데, 전통을 중시하면서 시대에 맞는 문화를 만들어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장되어버린 불교문화가 있는데, 그걸 이어낸 불교문화콘텐츠를 만들어서 현대에 스며들 수 있도록 하는 것이죠.”

― 쿠무다의 위치에 관한 질문을 하고 싶다. 전통사찰이나 불교와 문화공간이 많았을 텐데, 왜 이 도심 속의 바닷가에 자리 잡고 있는지?
“인연법이죠. ‘도심 속의 바닷가에서 이걸 만들겠다!’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산중불교에서 좀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은 했어요. 사찰법당을 생각하면 굉장히 경건하고, 예를 갖춰야 하는 느낌인데, 문화적인 장소에서는 편안한 상태로 그 문화를 향유할 수 있으니까요. 도심 속에서 종교적인 것을 좀 더 믹싱(mixing) 한다면, 현대인들이 불교문화를 좀 더 수월하고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었습니다. 모든 게 인연법입니다. 오다 보니 여기까지 왔습니다.”

― 쿠무다를 찾는 사람들이 문화와 종교를 동시에 접하게 될 텐데, 앞으로 이 좋은 공간에 어떤 프로그램을 채워나가고 싶은지?
“시대와 소통하고 호흡하는, 그래서 많은 이에게 스며들 수 있는 불교문화콘텐츠를 만들고 싶어요. 불교문화의 신(新) 패러다임(paradigm)을 만들어서, 불교와 현대인들을 잇는 플랫폼의 역할을 하는 거죠. 가장 마지막에 추구하는 것은 완전한 깨달음과 행복입니다. 수행자로서 기도와 수행의 정신을 잃지 않는 부처님의 깨달음의 세계를 지향하고 있어요. 저희 쿠무다에서 하는 모든 수행과 정진들은 <법화경>에서 말씀하시는 일승(一乘)의 세계로 가기 위한 방편일 뿐입니다. 쿠무다가 수행과 깨달음으로 완전한 행복을 찾아가는 하나의 첫걸음이 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 마지막으로 쿠무다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데, 드디어 개관식을 치른 소감이 어떤지?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는 말을 참 좋아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노력하고, 힘들어지면 ‘더 복을 지어라, 더 정진하라’는 마음가짐을 갖게 돼요. 이런 마음가짐으로 입재를 했으니 회향도 제대로 하려고 합니다.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의 ‘난행능행존중여불(難行能行尊重如佛)’이란 말씀이 있어요. ‘행하기 어려운 것을 능히 실천하면 부처님같이 존중받는다.’ 이 경지에 이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겁니다. 이번 불사뿐만 아니라 출가 후 수행해오면서 결코 놓지 않는 부처님 말씀이 있는데, ‘인욕의 갑옷을 입고 자비의 방에 들어가서 중생을 대하라‘에요. 그렇게 많은 사람을 만나고, 정진하도록 하겠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곧바로 이어진 개원식 2부에서는 축하 문화공연이 열렸다.
인터뷰를 마치고 곧바로 이어진 개원식 2부에서는 축하 문화공연이 열렸다.
공연을 감상하는 주석 스님과 내빈들.
공연을 감상하는 주석 스님과 내빈들.

인터뷰를 마치고 곧바로 이어진 개원식 2부에서는 축하 문화공연이 열렸다. 쿠무다의 ‘향수해’가 첫 곡으로 나섰다. 어두운 공연장 안, 고요히 흐르는 곱디고운 선율, 무대를 밝히는 환한 빛이 관객석을 은은하게 비췄다. 이곳의 사람들은 빠져들고 있다. 미소 짓고 있다. 걱정과 고민을 잊은 듯, 지금 이 순간은 공연만이 전부인 듯 혼연일체가 되어있다.

최상의 행복은 몰입에 있다고 했던가. 아무 감정도 느낄 수 없고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어 그 자체가 행복으로 이어지는 ‘몰입의 경지’ 말이다. 공연을 선사하는 예술가도, 공연을 감상하는 관객도, 한곳에 집중해 혼연일체를 이루는 이들의 모습은 가히 수행자와 같다. 긴장과 흥겨움의 팽팽한 줄다리기 속에서 아름다운 문화가 불교와 세상을 잇던 그 순간, 쿠무다의 존재 의미가 단번에 와닿았다.

급변하는 이 시대에서 불교는 어떤 길을 걸어야 하는가, 미래의 불교는 어떠해야 하는가, 어떤 모습으로 깨달음을 나누어 중생들에게 진정한 행복을 전해야 하는가. 머릿속을 스친 이 모든 물음에, ‘쿠무다’가 활짝 피어 화답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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