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불자들이 모여 어려운 이웃들에 도움의 온정을 나누는 봉사단체 미소원이 개원 10주년을 맞이했다.
부산 불자들이 모여 어려운 이웃들에 도움의 온정을 나누는 봉사단체 미소원이 개원 10주년을 맞이했다.

“함께 웃는 세상, 여기는 미소원입니다!”

‘미소원’은 부산 불자들이 모여 어려운 이웃들에 도움의 온정을 나누는 봉사단체다. 지난 2011년 11월 창단을 시작으로 재소자가 희망을 얻고, 실명 위기에 있던 사람이 앞을 보고, 수재민의 집이 새집으로 탈바꿈하는 등 이곳에서는 수많은 기적이 이뤄지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오랜 세월 타인을 도우며 살아온 장유정 이사장이 있다.

“사실 누구든지 자기 돈 안 귀하신 분 있으세요? 다 귀하죠!”

자기 돈 하나도 귀하지 않은 듯 돈이 모이는 족족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베풀어온 미소원은 올해로 개원 10주년을 맞이했다. 10주년 소감을 묻자, 누구든지 자기 돈 안 귀한 분이 없고 마음이 움직여야 돈이 움직이는 것이라 회원들에게 그저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는 장유정 이사장. 지난 10일, 미소원을 방문해 그녀와 함께 10년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지난 10일, 장유정 이사장과 함께 미소원의 10년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지난 10일, 장유정 이사장과 함께 미소원의 10년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소규모에서 시작해 지금까지 오게 된 미소원, 지난 10년을 돌아보면 어떤가
지난 10년을 돌아보면 참 치열하게 살았다 싶다. 반찬 봉사, 구치소 수용자 상담, 국내외 결핵 환자 지원 등 하나하나 말할 수도 없이 우리가 했던 일들이 참 많다. 근데 내가 아무리 잘 하려고 해도 회원들이 안 따라주면 안 되지 않나. 우리 회원들이 열심히 잘해줬고, 스님들도 미소원에 힘을 많이 실어주셨다. 지난 10년의 감회가 새롭다. 너무 빨리 지나갔다. 그만큼 후회 없었던 10년이었다.

미소원의 10년에 대해 그저 고맙다, 시작하길 잘했다고 밝게 웃으며 말하는 장유정 이사장. 그런 그녀에게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었을 때가 없었냐고 묻자, 우문현답이 돌아온다.

힘들었던 순간이나, 그만두고 싶었던 적은 없나
이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원력을 갖고 시작했던 일이다. 그래서 정말 힘든 순간에도 부처님 앞에 엎드려서 울면서 절하고 기도했으면 했지, 다른 사람에게 표를 낸 적도 없다. 물론 힘든 순간도 있었다. 경제적 문제가 컸다. 도와주고 싶은 곳은 많은데 돈이 없으니까. 이걸 시작하면서 돈 버는 일도 그만뒀기 때문에 차라리 돈을 벌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그래도 부처님 전법에 원을 세워서 했기 때문에, 그 원에 작은 것들은 다 흡수되고 묻히는 거다. 힘들어도 충분히 이겨낼 수 있는 부처님 말씀과 기도가 있었고, 스님과 회원들이 격려해 주시니까 잘 이겨낼 수 있었다. 또 봉사를 할 때 만나는 분들이 미소원에 감동을 하고, 그 감동이 미소원을 더 감동하게 하니 주저앉을 수 없다.

부처님을 비롯해 미소원 회원들과 어려운 이웃들이 있기에 주저앉을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하는 장유정 이사장. 그런 그녀에게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묻자, 단호했던 눈빛을 거두고 활짝 웃으며 답을 이어간다. 

봉사를 하다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있다면
너무 많다. 실명 위기에 있던 사람들에게 치료비를 드리기 위해 바자회도 하고 그랬는데 그런 분들이 앞이 보일 때, 감사하다고 할 때 참 기뻤다. 또 반찬 봉사할 때 반찬 드신 분들이 ‘딸이 해준 거보다 맛있다!’ 하셨을 때도. 특히 미소원이 구치소에서 단체로 법회도 하고, 1:1로 상담도 하는데, 재소자분들에게 희망의 터닝 포인트를 줬을 때도 참 기뻤다. 어느 날에 길을 가다 누가 나한테 인사를 한다. 사실 그렇게 만나면 모른 척하는데, 나를 부르더니 옛날에 복수를 하고 싶었는데 그때 부처님 이야기를 듣고 마음을 다잡아서 지금 너무 잘 살고 있다고. 그때가 참 기억에 남는다.  

어려운 이웃들을 돕고, 재소자에 상담으로 희망을 전하고, 독거노인과 결핵 환우들에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반찬 해서 나누는 삶을 10년 동안 꼬박 보내온 미소원. 이런 활동의 원동력은 어디에서 얻는지 묻자, 또 한 번의 우문현답이 돌아온다.

봉사활동의 원동력은 어디에서 얻나. 부처님의 말씀에서 영감을 얻었나
부처님 법을 안 만났으면 이 일을 했겠나. 하하. 근데 부처님 법문이 있다고 해도 수지하지 않고 실천하지 않으면 소용없다. 내가 공부를 잘하진 않지만 아는 거 실천은 잘한다. 아무리 부처님 법에 금강경 핵심이 어떻다 해도 언행일치와 지행일치, 내가 아는 걸 바로 실천하는 게 중요한 거다. 목종 스님께서 만날 때마다 ‘바르게 알고 바르게 실천하는 것이 정법이다’고 하셔서 계속 되새겼다. 우린 가진 게 없지만 부처님 법 따라 그저 실천할 뿐이다. 

역시 불교에 관한 질문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불교와 어떻게 만나게 됐나
예전에 다니던 직장에서 사장님 부인이 매주 스님 법문 이야기를 꼭 해줬다. 반야심경 의미를 몰라도 같이 외우는 시간도 보내고 그랬다. 아마 그 법문을 듣고 있었던 시간이 불교에 자연스레 젖어들고 있었던 순간인 듯하다. 그 이후에 동생들이랑 사찰에 소풍을 갔는데 끌림이 너무 강했다. 그렇게 불교와의 인연이 시작됐다. 아는 사람도 없었지만, 그냥 사찰에 가서 청소도 하고 어르신들 필요한 것도 도와드리고 그랬다. 

그때부터 ‘돕는 삶’이 시작된 건가. 
그렇다. 청소부터 시작했다가 본격적으로 의류 가게를 하면서 수익의 일부를 모아서 불사를 한다거나 어려운 분들을 돕는다던가 했다. 그러다 불교 신문에서 정각 스님이 활동하고 계시는 자비원 봉사회 소식을 본 거다. 스님께서 문화적, 사회적, 환경적으로도 여러 활동들을 하고 계시길래 스스로 찾아갔다. 그때부터 자비원 봉사회 활동도 하고, 후원회장으로도 있다가 ‘우리 스타일로 해볼까?’싶어서 스님께 말씀을 드리고 회원들과 돈을 모아서 법당을 마련했다. ‘미소원’의 시작이었다.

법당을 열 때 많은 용기가 필요했었다고 덧붙여 말하는 장유정 이사장. ‘보살 정도면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응원하는 주변 사람들 덕분에 지금까지 오게 되었다고 말하며 ‘그분들이 나를 살렸다’고 연이어 강조한다.

‘그분들이 나를 살렸다’라고 했는데, 그게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
39살에 애들 아빠가 심장마비로 죽었다. 아이들은 초등학생, 중학생이었다. 갑자기 그런 일이 닥치니 충격을 받아서 몸이 많이 아팠다. 아이들 밥도 못해줄 정도였다. 아이들에게 힘든 모습 보여줄 수 없으니 세수하면서 울고 그랬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주변 사람들이 제가 일어설 수 있게 도와줬다. 어려울 때 도와드렸던 분들이 ‘당신 덕에 우리가 잘 살고 있으니 용기를 내야 한다’고 그랬다. 그게 참 힘이 되더라. 그때쯤 주변 분의 권유로 정토 깨달음의 장에 갔는데 그때 확 깨어져서 왔다. 모든 게 맞물리듯이. 그때 기도를 많이 하면서 ‘아. 나를 믿고 후원해 주시는 회원들이 있고, 아직도 도울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생각도 했다. 그때부터 나는 덤으로 산다고 생각했다. 덤으로 사는 인생은 크게 걸림이 없다. 힘든 일이 있어도 그게 막 정말 힘들게 와닿지 않는 거다. 

장유정 이사장은 이렇게 서로를 도와 희망을 나누며 살아온 지난 10년이 참 감사하고 거룩한 시간이었다고 말한다. 이어 그녀에게 지난 10년을 뒤로하고 앞으로의 꿈과 목표에 대해 물었다.

‘함께 웃는 세상’이라는 의미의 미소원, 앞으로의 꿈과 목표가 있다면     
이름처럼 모두가 함께 웃는 세상을 만드는 거다. 모든 사람을 잘 살게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한 부분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참 좋겠다. 지금까지 미소원을 10년을 했다. 몇 년 전부터 세대교체를 준비하고 있는데, 앞으로의 10년을 다음 세대들이 잘 이끌어갈 수 있게 하는 게 지금의 목표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것보다 다음 세대들은 그에 맞는 걸 하지 않을까.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보여주는 것, 그들이 잘 해나갈 수 있게 준비해 주는 것이다. 그래서 미소원 청년회가 있고 아빠 봉사단이 있는 거니까. 회원들 보고 있으면 참 든든하다.

마지막으로, 남을 도울 여건이 안 되는 사람에게 ‘돕는 삶’의 팁을 알려준다면
돈 없어도 관계없다. 청소하면 된다. 나는 그냥 마음이 힘들 때 와서 청소를 하라고 한다. 우리는 반찬 봉사 때도 부엌에 바로 안 들어간다. 등용문은 화장실, 법당, 계단 청소부터 다 하고 공양간 들어가서 부처님께 공양 올리는 마음으로 반찬 한다. 그분들이 곧 부처님이니까. 우리 미소원은 맞춤형 봉사가 준비돼 있다. 어떠한 조건의 사람이라도 함께할 수 있다. 그러니 누구든지 오시라. 뭐든 할 수 있다.

미소원이 받은 상장들.
미소원이 받은 상장들.
상패들.
상패들.
활동사진들.
활동사진들.

자리를 옮겨 미소원의 상장과 상패, 그간 활동사진들이 나란히 놓여있는 사무실에 들어갔다. 지난 10년의 시간을 이야기해 주듯 번쩍거리는 상들이 빼곡하다. 그런데 상보다 활동사진을 보여주며 이날은 이랬고 저 날은 저랬다고 활짝 웃으며 미소원의 10년을 회상하는 장유정 이사장이다. 

“주변 사람들이 저보고 그럽니다. 제가 이다음에 죽으면 좋은 곳으로 갈 것 같다고 죽어서도 저 따라다닐 거라고요.”

장유정 이사장과 죽어서도 함께 하겠다는 주변인들의 말에서 그녀가 살아온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곧이어 밝고 명랑한 목소리가 온 법당에 울려 퍼지며 그곳에 있던 사람들을 또 한 번 활짝 웃게 만든다.

“근데요. 저는 지옥 가도 상관없습니다! 지옥 가면 지장보살님 옆에 꼬옥 붙어서 꼬봉할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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