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 운문사 전경
청도 운문사 전경

생각지도 못했던 풍경들을 마주하게 될 때면 커다란 선물을 받은 것처럼 마음이 설렌다. 청도에 위치한 호거산 운문사(雲門寺)로 올라가는 길, 잘 닦여진 도로 왼쪽으로는 거대한 운문천이 조용하게 흐르고 앞으로는 짙은 초록의 가로수 터널이 이어져 운문사에 발걸음이 채 닿기도 전 마주한 풍경은 불자들에게 뜻밖의 큰 선물이다.

솔바람길
솔바람길
천연기념물 제180호 처진소나무
천연기념물 제180호 처진소나무

부드러운 곡선, 춤추는 소나무
솔바람길과 처진소나무

운문사 매표소를 지나 경내로 들어가기 전 부드러운 곡선을 자랑하며 마치 춤을 추는 것 같은 소나무 숲길이 눈길을 끈다. 하늘 높이 뻗어있는 소나무들은 굽이굽이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의 경계를 침범하지 않은 채 따로 또 같이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고 있다. ‘운문사 솔바람길’은 청도의 명품 길로 손꼽히며 남녀노소 누구나 사랑하는 산책로 중 하나다. 코로나19로 인해 마스크는 어느덧 우리 신체의 일부가 되어 답답하기만 하지만 노송이 빚어낸 울창한 숲길에는 짙은 솔향의 청량함만이 가득하다.

운문사 경내로 들어서면 앞뜰에는 천연기념물 제180호로 지정된 ‘처진소나무’가 있다. 운문사의 처진소나무는 가지가 아래로 처지는 특성 때문에 매우 희귀한 나무로 가지가 계속 밑으로 자라기 때문에 많은 지지대가 가지를 떠받치고 있다. 처진소나무는 추정 수령만 400년이며, 높이 6m, 가슴높이둘레 2.9m, 가지는 동서방향으로 17.6m, 남북으로 20.3m 퍼져 반원형에 가까운 수형을 이루고 있다. 운문사에서는 해마다 음력 3월 3일 삼짇날 막걸리 12말을 희석해 영양제로 부어주고 있다.

천년의 숨결이 깃든
비구니 수행 도량

560년(신라 진흥왕 21) 신승이 창건한 운문사는 608년(진평왕 30)에 원광 국사가 제1차 중창을 했으며, 원광국사는 만년에 가슬갑사에 머물며 일생 좌우명을 묻는 귀산과 추항에게 세속오계(世俗五戒)를 주었다고 전해진다. 제2차 중창은 당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후삼국의 통일을 위해 왕건을 도왔던 보양이 오갑사(五岬寺)를 중창했으며, 943년 고려 태조 왕건은 보양의 공에 대한 보답으로 운문선사(雲門禪寺)라 사액하고 전지 500결을 하사했다. 제3차 중창은 1105년(고려 숙종 10) 원응국사가 송나라에서 천태교관을 배운 뒤 귀국해 운문사에 들어와 중창하고 전국 제2의 선찰로 삼았다. 이후 여러 중창과 수보를 거쳐 현재는 30여 동의 전각이 있는 여법한 사찰로서의 규모를 갖추게 됐다.

운문사는 1958년 불교정화운동 이후 초대 주지로 승려 원광 금룡(1892~1965)이 임명되면서 비구니 사찰로서 새 역사를 전개해 나갔다. 1958년 초대 강백으로 통도사 강주 승려 오혜륜을 모시고 비구니 전문 강원이 개설됐는데, 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비구니 전문 강원이었던 동학사 강원에 이은 두 번째 비구니 전문 강원이었다. 승려 금룡은 불교정화운동 이후 비구니 전문 강원 교육의 중심 도량으로 운문사를 발전시키는 데 초석을 마련했으며, 근현대기 비구니 법사로서 수행과 포교, 후학 양성에 큰 족적을 남겼다.

1997년 3월에는 비구니 강사를 양성하는 전문 교육 기관으로 최초의 비구니 승가 대학원인 ‘운문 승가 대학원’이 개설됐으며, 초대 원장에는 명성 스님이 취임해 1999년 1월 제1회 졸업생 6명을 배출했다. 국내 승가대학 가운데 최대 규모와 학인 수를 자랑하는 운문승가대학은 현재 약 160명의 비구니 스님들이 경학을 수학하고 계율을 수지봉행하고 있으며,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는 백장 청규를 철저히 실천하고 있다.

작압전
작압전

운문사의 전신, 
대작갑사의 유래 작압전(鵲鴨殿)

운문사 작압전(鵲鴨殿)은 전면과 측면이 한 칸에 불과한 작은 전각이지만 운문사의 전신인 대작갑사의 유래를 알 수있는 유일한 건물이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한 신승이 중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신비로운 새 떼가 날아오른 것을 본 자리에 암자를 짓고 수행해 큰 도를 이뤘다. 그가 처음 새를 보고 이른 터에는 무너진 석탑이 있어 무너져 있는 석조물로 다시 탑을 쌓으니 파편이 모자라지도 남지도 않는 것을 보고 좋은 징조로 여겼다고 한다. 그가 깨달음을 얻은 뒤 절을 짓기 시작했는데, 동쪽에 가슬갑사, 남쪽에 천문갑사, 서쪽에 대비갑사, 북쪽에 소보갑사를 짓고 중앙에 대작갑사를 창건했다. 이 다섯 사찰을 두고 오갑사라 하였다. 

작압전은 신승이 발견한 석탑터에 지어진 전각으로 나말려초의 보양국사가 전탑형식으로 중창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된 후 현재 목탑형식으로 재건됐다. 내부에는 보물 제 317호 석조석가여래좌상과 보물 제 318호 사천왕석주를 봉안하고 있다. 

호거산 운문사에는 수많은 전각들이 있으며, 도량의 탁 트인 전경과 낮은 돌담길, 부드러운 흙길은 산란했던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거닐기에 좋다. 운문사는 봄에는 갖가지 꽃들이 장엄하고 여름에는 싱그러운 짙은 초록이, 가을에는 붉은 단풍이, 겨울에는 포근하고 깨끗한 설경이 펼쳐져 사계절 모두 다른 색으로 칠해내고 있다. 어느 계절에 찾아도 좋은 절, 운문사는 코로나19로 답답한 날들을 보내고 있는 시민 불자들에게 최고의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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