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유일 고려 고승 초상조각 '해인사 건칠희랑대사좌상’ 국보 지정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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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유일 고려 고승 초상조각 '해인사 건칠희랑대사좌상’ 국보 지정 예고
  • 곽은영 기자
  • 승인 2020.09.10 10: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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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고·유일 고승 진영 조각품
사실적 표현과 뛰어난 생동감 돋보여
문헌기록·현존작 모두 남아있는 조사상
국보 지정 예고된 보물 제999호「합천 해인사 건칠희랑대사좌상(陜川 海印寺 乾漆希朗大師坐像)」 (사진=문화재청)
국보 지정 예고된 보물 제999호「합천 해인사 건칠희랑대사좌상(陜川 海印寺 乾漆希朗大師坐像)」 (사진=문화재청)

문화재청(청장 정재숙)은 고려시대 고승의 실제 모습을 조각한 ‘합천 해인사 건칠희랑대사좌상’(보물 제999호)을 국보로 지정 예고한다고 밝혔다.

보물 제999호 ‘합천 해인사 건칠희랑대사좌상’은 신라 말~고려 초까지 활동한 승려인 희랑대사의 모습을 조각한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초상조각으로 고려 10세기 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유사한 시기 중국과 일본에서는 고승의 모습을 조각한 조사상을 많이 제작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유례가 거의 전하지 않으며 희랑대사좌상이 실제 생존했던 고승의 모습을 재현한 유일한 조각품으로 전래되고 있다.

조선시대 문헌기록에 따르면 희랑대사좌상은 해인사의 해행당, 진상전, 조사전, 보장전을 거쳐 수백 년 동안 해인사에 봉안됐으며, 이덕무(1741~1793)의 ‘가야산기(伽倻山記)’ 등 조선 후기 학자들의 방문기록이 남아있어 전래 경위에 대해 신빙성을 더한다.

지정조사 과정에서 이루어진 과학 조사 결과에서 국립문화재연구소 보존과학연구실은 “이 작품은 얼굴과 가슴, 손, 무릎 등 앞면은 건칠로, 등과 바닥은 나무를 조합해 만들었고 후대의 변형 없이 제작 당시의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렇듯 앞면과 뒷면을 결합한 방식은 보물 제1919호 ‘봉화 청량사 건칠약사여래좌상’처럼 신라~고려 초에 해당하는 비교적 이른 시기의 불상조각에서 확인되는 제작기법이어서 희랑대사좌상의 제작시기를 유추하는데 참고가 된다”고 전했다.

건칠기법이 적용된 희랑대사좌상은 육체의 굴곡과 피부 표현 등이 매우 자연스러워 조선 후기에 조성된 ‘신륵사 조사당 목조나옹화상(1636년)’, ‘부석사 조사당 목조의상대사상(조선 후기)’, ‘괴산 각연사 유일대사상(조선 후기)’ 등 다른 조각상들과 달리 관념적이지 않고 사실적인 표현이 돋보인다. 마르고 아담한 등신대 체구, 인자한 눈빛과 엷은 미소를 띤 입술, 노쇠한 살갗 위로 드러난 골격 등은 뛰어난 생동감으로 생전 모습을 연상시킨다.

이 작품의 또 다른 특징은 ‘흉혈국인(胸穴國人)’이라는 그의 별칭을 상징하듯 가슴에 작은 구명이 뚫려 있는 것이다. 이 흉혈은 해인사 설화에 의해 희랑대사가 다른 스님의 수행 정진을 돕기 위해 가슴에 작은 구멍을 뚫어 모기에게 피를 보시한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고승의 흉혈이나 정혈은 보통 신통력을 상징하며, 이와 유사한 모습은 ‘서울 승가사 석조승가대사좌상(1024년, 보물 제1000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문화재청은 “우리나라 문헌기록과 현존작이 모두 남아있는 조사상은 ‘희랑대사좌상’이 유일하다"며 "제작 당시의 현상이 잘 남아 있고 실존했던 고승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재현해 내면의 인품까지 표현한 점에서 예술 가치도 뛰어나다”고 설명했다. 이어 “후삼국 통일에 이바지했고 불교학 발전에 크게 공헌한 희랑대사라는 인물의 역사성과 시대성이 뚜렷한 제작기법 등을 종합해 볼 때 이 조각상은 고려 초 10세기 우리나라 초상조각의 실체를 알려주는 매우 귀중한 작품이자 희랑대사의 높은 정신세계를 조각예술로 승화시켰다는 점에서 역사‧예술‧학술적 가치가 탁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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