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암
국사암

김시습이 말년에 충남 부여 무량사에서 병들어 누워 있을 때였다. 스님들이 김시습에게 물었다. “어떤 병에 걸리셨습니까?” 그러자 김시습이 답했다. “나는 행락병(行樂病)에 걸렸네.” 평생을 유랑하며 살았던 그의 인생을 그대로 보여주는 답변이다. 하지만 비단 김시습뿐이랴. 우리 모두는 길 위에 살고 있다. 때론 묵묵히, 때론 방황하며, 때론 잠시 멈추기도 하며 삶의 수많은 길을 거쳐 왔다. 그래서 우리는 가끔 두 다리를 의지해 걸음을 내딛으며 살아 있는 길을 걸을 필요가 있다.

쌍계사에서 국사암으로 가는 길은 짧다. 종각에서 금당으로 가는 계단을 조금만 오르다 보면 우측으로 작은 길이 나있다. 불일폭포와 국사암으로 가는 길이다. 원래 가파른 곳이었지만 최근에는 데크공사를 마쳐 편안한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산책로로 향하는 발걸음을 잠시 멈춰서 뒤를 내려다본다. 쌍계사를 위에서 내려다보는 색다른 풍경이 눈앞에 놓인다. 나무 사이를 헤집고 나온 붉은 단청과 기와가 조화를 부리며 길손의 눈을 즐겁게 한다.

데크 산책로가 끝나면 지리산의 흙을 제대로 밟아 볼 수 있다. 굵직굵직한 바위가 오랜 세월 다져져 만들어낸 길을 걸어 본다. 곧 이어 국사암과 불일폭포로 갈라지는 갈림길을 만난다. 이 길 사이에 놓인 벤치는 누가 놓았는지, 걷는 이의 마음을 헤아린다. 바쁜 삶 속에서 우왕좌왕 하는 이들에게, 잠시 멈춰 길을 돌아보라는 의미는 아닐는지.

계속해서 가다 보면 아주 오래된 돌탑과 마주한다. 이곳은 지난 수많은 이들의 마음을 쌓은 돌탑이 묵직한 세월을 이고 있다. 돌탑만 지나면 머지않아 국사암의 호법신장, 사천왕수를 만날 수 있다. 두 팔, 아니 네 가지를 활짝 펼쳐 ‘어서 오너라.’ 하고 반가운 인사를 건넨다.

총 소요 시간은 20분 내외. 서두르면 10분이면 충분하지만, 30분 정도 넉넉한 시간을 갖고 아주 느린 걸음으로 걷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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