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대학교 승학캠퍼스. (사진=동아대)
동아대학교 승학캠퍼스. (사진=동아대)

“부처님 가르침을 어떻게 실천했냐고요? 음... 좋은 선임이 되어줬습니다!”

모태불자라서, 혹은 템플스테이를 향한 가벼운 호기심도 아니었다. 군 시절, 군법당에 들어선 것을 계기로 불교와 인연을 맺게 된 청년불자가 있다. 동아대학교 불교동아리 회장 최문봉 법우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힘들었던 군 시절 큰 버팀목이 되었다고 했다. 어떤 가르침이 가장 힘이 되었냐고 물으니 핸드폰을 건넨다. 

‘모든 악을 행하지 말고 
많은 착한 일을 받들어 행하며 
스스로 그 뜻을 깨끗이 하라. 
이 모두가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좋은 선임’이 되어주는 것으로 실천했다고 늠름히 말하는 최문봉 법우. 그렇게 좌우명처럼 지니며 무사히 제대했지만, 불교와의 인연이 계속 이어졌던 것은 아니었다. 복학을 하며 불교와 잠시 멀어졌던 최문봉 법우가 불교를 다시 찾게 된 것은 취업 준비 무렵. 최문봉 법우는 매일 같이 도서관을 오가던 스스로의 모습을 ‘기계’라고 칭했다.

“매일 집과 도서관을 오가면서 공부만 했어요. 이대로 가다간 기계가 되겠구나 싶었죠. 그때 불교가 떠올랐어요. 마음을 쉴 곳이 절실히 필요했거든요. 그래서 대학교 4학년이 되어서야 불교동아리에 가입하게 됐죠.”   

동아대학교 불교동아리 학생들.
동아대학교 불교동아리 학생들.

하지만 동아리는 막 침체기에 들어서고 있었다. 최문봉 법우는 신입회원 모집을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인제대처럼 염주도 사보고, 부산대처럼 고가의 다기 세트도 구입했다. 하지만 기대만큼 회원들이 모이지 않았다. 현재 활동하는 법우는 5명 남짓. 게다가 코로나19로 활동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대불련 연합회 차원의 활동 덕에 동아리가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연합회 차원에서 이뤄지는 활동은 크게 3가지다. 연합 템플스테이, 연등행렬, 부처님오신날 사찰 순례. 회원들에게 가장 반응이 좋았던 활동을 묻자, 최문봉 법우는 하나를 꼽을 수가 없단다. 템플스테이는 차분한 매력이, 연등행렬은 활기찬 매력이, 사찰 순례는 차분함과 활기참이 섞인 다채로운 매력이. 저마다의 매력으로 ‘쉼’을 선물해 줬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쩐지 연등행렬 이야기를 할 때 가장 행복해 보인다. 

“잊을 수 없는 추억이에요. 내가 이 길고 긴 행렬단에 속해있다니! 정말 행복했어요. 우리가 불자라는 사실이 자랑스러웠죠. 아직도 회상하면 가슴이 좀 웅장해지는 느낌이 있어요. 행렬을 마치고 나서도 한동안 잔상이 남아서 안 잊혀지더라고요.” 

대불련 부산지부는 지난 4월 3년 만에 개최된 부산연등행렬에 참가했다.
대불련 부산지부는 지난 4월 3년 만에 개최된 부산연등행렬에 참가했다.
대불련 행렬단은 이날 많은 시민들의 호응을 얻었다.
대불련 행렬단은 이날 많은 시민들의 호응을 얻었다.

3년 만에 다시 개최된 연등행렬은 준비과정도 다사다난했다. 의상 디자인부터 팸플릿, 그리고 대학생 불자들의 ‘센터’를 차지하며 많은 시민에게 귀여움을 받았던 공룡 탈도 직접 만들었다. 또 “원래 이 나이 때 종교는 친구 따라 믿는 법”이라며 불자가 아닌 최문봉 법우의 친구도 함께했다. 포교의 일환이었다. 부산 서면 일대를 화려하게 장엄했던 연등행렬의 추억은 이들의 취향을 저격해버렸다. 

“특히 연합회 활동은 더 많은 또래들과 만나 교류할 수 있다는 점이 참 좋은 것 같아요. 우리는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잖아요. 이야기를 하다 보면 공감이 돼서 위로도 많이 받고, 또 더 다양한 전공과 개성을 가진 학생들이 모이는 거니까 시야가 넓어지는 느낌도 들어요.”    

대불련 연합회와 함께한 템플스테이.
대불련 연합회와 함께한 템플스테이.

그래서일까. 곧 졸업을 앞둔 최문봉 법우는 동아리를 연합회 차원으로 체제를 변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단독 활동으로 가다간 동아리가 없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다. 앞으로 남은 활동 역시 부산대 주관의 연합법회와 청년불자들이 참여하는 영부디스트 캠프, 연합 템플스테이까지 모두 연합회와 함께하는 활동이다. 

“이제는 불교계가 청년불자들에게 ‘활동’으로 지원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지원금은 정말 많이 주세요. 근데 쓸 곳이 없어요. 예전처럼 모여서 식사 비용으로라도 사용하면 좋겠지만, 비대면 법회에다가 회원 수도 적으니 그러기도 힘들죠. 그래서 우선 차곡차곡 모으고 있어요. 미래의 동아리원들에게 대대손손 물려주려고요.”

‘우리 동아리는 금수저인 셈’이라고 말하며 멋쩍게 웃는 최문봉 법우. 인터뷰 내내 비유에 비유를 거듭하던 그는 마지막으로 불교를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칭했다.

최문봉 법우에게 사찰은 힘들 때면 가장 먼저 찾아가는 장소가 되었다. 사진은 지난 부처님오신날 사찰 순례를 떠난 최문봉 법우의 모습. 
최문봉 법우에게 사찰은 힘들 때면 가장 먼저 찾아가는 장소가 되었다. 사진은 지난 부처님오신날 사찰 순례를 떠난 최문봉 법우의 모습. 

“우리는 알게 모르게 불교의 영향을 받으면서 살아가잖아요. 불교가 어려울 것 같다고 꺼려 했던 친구들도 막상 접하고 나서는 ‘나랑 잘 맞더라’고 말하더라고요. 또 불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좋은 일도 참 많이 하는데,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아요. 그래서 이런 것들을 좀 더 색다른 방식으로 홍보한다면 많은 청년들이 불교에 관심을 가질 거라고 생각해요. 요즘엔 다행히 알릴 수 있는 창구가 많아요. 유튜브나 SNS처럼요.”

끝으로 “이 좋은 걸 우리만 알기 아까우니까”라고 덧붙여 말하는 최문봉 법우. 불교 경전의 멋스러운 문구와 함께 내면을 탄탄히 다져온 그의 모습을 보아하니, 이제 스스로를 ‘좋은 선임’에 더해 ‘좋은 불자’라고 칭해도 될 듯하다. 앞선 두 명의 청년불자들처럼 말이다.

때로는 통통 튀는 발랄함으로, 때로는 어른스러운 진지함으로,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대학생 불자들에게는 역시나 불교의 미래가 있었다. 하지만 가능성, 미래, 희망이라는 단어는 비단 20대의 청년불자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은 아닐 것이다.

청춘은 인생의 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가짐을 뜻한다는 말이 있던가. 그렇다면 요즘애들, 아니 ‘요즘불자들’에게도 당연히 불교의 미래가 있다. 그러니 우리들의 소중한 불교를 더 널리 알리자. 불교만이 가진 매력을 더 많은 사람이 누릴 수 있도록 해보자. 라고, 청년불자들이 말한다. 이제는 동아리 밖으로 나와 불교의 미래를 환히 열어갈 준비를 끝마치고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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