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서울 북한산 심곡암에 있는 원경 스님을 찾아 책 『밥 한술, 온기 한술』 출간기념 인터뷰를 진행했다.
지난 13일, 서울 북한산 심곡암에 있는 원경 스님을 찾아 책 『밥 한술, 온기 한술』 출간기념 인터뷰를 진행했다.

도심 속의 산중에 위치한 심곡암에는 오묘한 풍경소리가 가득하다. 고운 바위로 이어진 계단, 그 위에 흩어진 낙엽과 하얀 눈을 밟을 때 나는 발자국 소리, 까악 우는 까마귀와 고양이 소리. 그 위로 원경 스님의 나긋한 목소리가 이불처럼 폭 덮힌다. 스님은 온기 가득한 목소리로 시를 읊는다.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을 때
사랑을 하고
소중한 사람이 먼 곳에 있을 때
정중히 안부를 물을 일이다.

내 안의 사랑을 퍼주기도 전에
떠나가지 않도록
마음을 기울여 사랑할 일이다.”

 

사회복지법인 원각 대표 원경 스님.
사회복지법인 원각 대표 원경 스님.

사랑에 의한, 사랑을 위한 따뜻한 책이 출간됐다. 7년간 무료급식소를 운영하며 배고픈 이에게 따뜻한 한 상을 베풀어온 사회복지법인 원각 대표 원경 스님이 최근 책 『밥 한술, 온기 한술』을 펴냈다. 원각사 무료급식소에서 일어난 에피소드와 그때그때 느꼈던 소회를 책으로 엮어 출간하게 됐다는 원경 스님. 지난 13일, 서울 북한산 심곡암에 있는 원경 스님을 찾았다.

“저는 북한산 심곡암 암자에서 수행하고 있는 원경이라고 합니다. 심곡암에 와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며 음악회도 오랫동안 해왔고, 또 산중에 머무는 것보다 세상과 함께 호흡하고 싶어 원각사 탑골공원에서 무료급식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원경 스님은 지난 2015년부터 7년간 원각사 무료급식소를 운영해왔다.
원경 스님은 지난 2015년부터 7년간 원각사 무료급식소를 운영해왔다.

20여 년이라는 긴 역사를 가지고 있는 원각사 무료급식소. 원경 스님이 이곳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지난 2015년부터다. 스님은 배고픈 이들이 줄지어 서있는 그곳의 풍경을 보고 부처님의 자비가 가장 절실히 요구되는 현실 같았다고 회상했다. 

“원각사 무료급식소는 20여 년 동안 보리 스님께서 운영하시다가 병환이 생기셔서 중단하게 되었던 곳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장소에서 많은 노인분들이 밥 한 끼의 어려움을 해결하려고 줄을 서있는 걸 보게 되었어요. 그래서 그때 ‘나라도 힘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무료급식소를 이어서 운영하게 된 겁니다. 특히 음식, 밥이라는 건 인간적인 삶을 위한 가장 기본 바탕이지 않습니까. 어려운 노인분들에게 밥 한 끼 드리는 것은 종교인으로서 당연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원경 스님이 어버이날을 맞아 무료급식소를 찾은 어르신들에게 카네이션을 선물하고 있다.
원경 스님이 어버이날을 맞아 무료급식소를 찾은 어르신들에게 카네이션을 선물하고 있다.

원각사 무료급식소에는 ‘사랑’과 ‘자비’의 마음이 풍성히 일어난다. 급식소 현장을 찾은 어르신들에게 봉사자들은 따뜻한 밥 한 끼를 건네고, 매년 겨울에는 따뜻한 외투를 나누기도 한다. 어르신들은 이곳에서 굳은 몸과 마음을 녹인다. 

또한 이곳은 더 많은 도시락을 나누지 못해 안타까운 마음도 함께 일어나는 곳이기도 하다. ‘더 주세요’와 ‘1인당 하나씩’ 사이에서 봉사자들의 고뇌도 여러 번. 약해진 마음에 도시락을 하나 더 건넸다가 원칙의 문제를 둘러싸고 말이 오간 적도 있단다. 그중 가장 마음이 아픈 순간은 단연 준비한 도시락이 소진돼 빈손으로 돌아가는 어르신을 볼 때다.

“코로나19로 인해 무료급식을 찾는 분들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코로나 이후부터는 방역의 문제를 감안해 직접 식사를 준비해 드리던 것을 도시락으로 대체해서 전달하고 있는데, 그래서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고 있어요. 봉사자들의 참여도 후원도 예전처럼 원활하지 않아서 현실적으로 급식소 운영에 어려움이 따르고 있는 상황입니다. 십시일반 마음을 모아 더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드릴 수 있도록 원력을 내야지요.”

원경 스님과 봉사자들.
원경 스님과 봉사자들.

코로나19로 인해 봉사자들의 참여도 후원도 많지 않은 어려운 상황. 그럼에도 스님은 이곳에서 밥을 먹으며 외로움과 배고픔을 달래는 어르신들과, 언제나 씩씩하게 미소 짓고 있는 봉사자들을 떠올리면 힘이 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봉사자분이 있어요. 한번 쯤은 지치실 법도 한데 꾸준하게 열정적으로, 씩씩하게, 정말 남다르게 봉사를 하시던 분이었죠. 알고 보니 그분의 아버지가 무료급식소에 와서 식사를 많이 하셨다고 했어요. 생전 자식이 많지 않은 관계로 혼자 살고 계신 분이었는데, 돌아가시면서 ‘너도 불우한 어른들을 위해 봉사를 많이 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고 해요. 그래서 그분께서 남다른 애정과 열정을 가지고 봉사를 하셨던 거죠.”

온기 가득한 밥 한술과 미소가 오가는 원각사 무료급식소에는 이처럼 수많은 인연이 함께했다. 특히 원경 스님의 수행 여정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던 법정 스님과의 인연담도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다. 한평생을 수행자이자 봉사자로 살아온 원경 스님은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연에 대한 이야기 중 법정 스님과의 일화를 세 편에 걸쳐서 정성스럽게 담아냈다. 

“법정 스님은 제가 출가해서 초보 수행자로 지내던 시절부터 인연을 쌓아 모셨던 분입니다. 큰 절에서 행사가 있을 때 떡이며 과일이며 보자기에 싸서 법정 스님이 계신 곳에 가져가곤 했는데, 그때마다 스님께서는 어린 수행자를 굉장히 애틋하고 살갑게 맞이해 주시고, 좋은 가르침을 많이 주시곤 하셨어요. 그래서 스님께 갈 때마다 ‘오늘은 어떤 말씀을 해주실 것인가’하는 설렘으로, 소풍 같았던 발걸음이었습니다.”

원경 스님은 법정 스님을 모시며 참 수행자의 모습은 저런 것이구나, 하고 생각했다고 했다. 법정 스님이 머물다 가신 자리는 늘 맑고 청빈했으며, 간결한 모습 가운데 향기로웠다고 회상하는 원경 스님. 그런 수행가풍에 걸맞게 다양한 식물도 정성껏 가꾸시는 스님을 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저절로 깨달을 수 있었다고.

“참 수행자의 모습을 언어 이전의 스님 모습을 통해서 깨달을 수 있었달까요. 법정 스님의 청빈하고 고고한 삶의 모습 자체가 늘 저에게 깨우침을 주었습니다. 스님 처소에 ‘청산에 살으리랏다’ 시구절이 놓여있었는데, 그런 걸 보면서도 당신의 삶이 이런 모습이구나, 하고 가늠할 수 있었어요. 존경할 수 있는 어른을 모시는 것 자체만으로도 수행의 기본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던 거죠.”

원경 스님은 법정 스님의 수행가풍을 잇는 듯 심곡암을 찾은 신도들은 물론 곳곳에 핀 꽃들과 나무, 바위틈에 핀 들꽃까지 모든 자연물과 인연을 맺고 교감을 나눴다. 그렇게 스쳐 지나가는 모든 것들을 향한 내면의 사랑은 스님 삶의 든든한 밑거름이 되어줬고, 그것은 ‘삶의 지혜’라는 소중한 꽃으로 피어올랐다고 말한다.

그래서 스님은 책의 마지막 장에 이제껏 살아오며 깨우친 지혜와 인생의 의미에 대한 소중한 글을 담았다. 삶의 어려움과 갈등을 대하는 지혜, 요즘같이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삶의 태도, 인생에서 진정한 가치는 무엇인지. 한 명의 수행자로서, 혹은 인간으로서의 일상과 고민, 깨달음들을 진솔하게 풀어내 공감과 위로를 나누고 싶어서다.

“요즘 모두가 어려운 시기죠. 그렇지만 과거에도 어려움은 있었고, 우리는 잘 극복해 왔어요. 또 위기가 기회라고 하였듯, 어려움은 삶의 다양한 지혜를 일궈낼 수 있는 토대가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가만히 돌이켜보면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에 따라 우리 삶의 방식이 변해왔어요. 이렇듯 어려움은 우리가 좀 더 슬기롭고 지혜롭게 삶을 구축해나갈 수 있는 기회입니다. 그러니 우리 사회가 더 발전할 수 있도록 우리 스스로도 능동적으로 무언가를 해볼 마음을 낸다면 좋지 않을까요.”

스님은 사람들에게 저마다 지고 가야 할 삶의 무게가 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지속적으로 주변을 돌아보며 어려움 속에서나마 사랑과 연민을 나누며 살아야 한다고 덧붙인다.

“이 책은 결국 인간애를 기반으로 한 책이 아닌가 싶어요. 사회 전반에 소외된 사람들이 많아진 이 시기에, 자신보다 남을 더 생각하는 봉사자들과 어려운 이웃에게 전하는 도시락의 온기. 삶 속에서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될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새겨보고, 그런 깨달음을 삶의 태도로 가져와서 우리가 더욱 새로워질 수 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원경 스님과 산이(고양이)가 심곡암을 거닐고 있다.
원경 스님과 산이(고양이)가 심곡암을 거닐고 있다.

서울과 자연의 풍경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심곡암 곳곳을 거닐기 위해 스님과 길을 나섰다. 고운 바위로 이어진 계단을 넘어 서울 도심의 풍경이 훤히 보이는 커다란 바위까지 다다랐다. 그 위에 걸터앉은 원경 스님은 나긋한 목소리로 시를 읊는다. 

원경 스님과 산이(고양이).
원경 스님과 산이(고양이).

그때, 고양이들이 스님에게로 몰려든다. 스님은 잠시 책을 덮고는 ‘산아, 산아’ 하고 포근히 이름을 부른다. 산이(심곡암 고양이)는 스님 곁에 가만히 머물고, 스님은 산이를 다정히 쓰다듬는다. 그 풍경이 참 따뜻하고 정겹다. 원경 스님의 삶은 이런 모습이구나, 하고 가늠케 한다. 

『밥 한술, 온기 한술』은 지금 우리의 삶 속에서 언제나 사랑이 함께 할 수 있기를 염원하는 마음에서 쓴 책입니다. 내면의 허기를 느끼는 많은 이들에게 온기 가득한 밥상을 대접하는 마음으로 책을 썼어요. 이 책이 누군가의 빈속을 든든히 채워 주는 따뜻하고 푸짐한 한 상이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타인의 삶을 사랑하는 이에게서 자비심이 나오고,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이에게서 우리는 지혜를 얻을 수 있다. 타인의 끼니를 걱정하는 사려 깊은 마음과 스쳐 지나가는 모든 것들을 향한 사랑이 담긴 책 『밥 한술, 온기 한술』. 원경 스님은 책을 통해 인생에서 진정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굳어있는 마음과 세상을 녹여내 모두가 따뜻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나긋이 알려준다. 그저 사랑하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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