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당 지오 대강백의 영결식과 다비식이 7월 1일 금정총림 범어사에서 엄수됐다.
정혜당 지오 대강백의 영결식과 다비식이 7월 1일 금정총림 범어사에서 엄수됐다.

평생 후학 양성과 역경 저술에 매진한 정혜당 지오 대강백의 영결식과 다비식이 금정총림 범어사에서 엄수됐다.

정혜당 지오 대강백 범어문도장 장의위원회는 7월 1일 범어사에서 ‘정혜당 지오 대강백 범어문도장 영결식 및 다비식’을 봉행했다. 경내 보제루에서 엄수된 영결식에는 금정총림 범어사 지유 대선사, 원로의원 정여 스님, 주지 보운 스님을 비롯한 범어사 본‧말사 주지 스님, 중앙종회의원 무관, 석산 스님, 금하광덕문도회 문장 지정 스님 등 문도회 스님 및 용인 관음사 주지 대혜 스님 등 상좌 스님을 비롯해 조원호 불광법회장 등 승‧재가불자 3000여 명이 참석해 대강백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금정총림 범어사 지유 대선사
금정총림 범어사 지유 대선사

금정총림 범어사 지유 대선사는 법어에서 “지오 스님, 지오 스님 이 소리가 들립니까? 들린다면 들린다고 답을 해주십시오”라며 “사람들은 사람이 육신을 가지고 있을 때는 온갖 고통에 시달리는데 만약 이 몸을 하직하면 마음을 괴롭혔던 몸이 떠났으니 괴로움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설했다. 이어 “그런데 육신을 떠났음에도 여전히 육신을 가지고 있을 때와 같이 고통이랄지 괴로움이 있다고 하면 육신이 있을 때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집착해서 그런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며 “지오 스님께서는 육신을 하직하셨는데, 지금 심정이 어떠십니까, 편안하십니까? 혹은 그렇지 않는지 스님께서 여러 대중에게 열반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스님을 따르는 모든 후학자들이 곰곰이 생각할 것”이라고 기렸다. 

금하광덕문도회 문장 지정 스님
금하광덕문도회 문장 지정 스님

금하광덕문도회 문장 지정 스님은 “스님께서 해인사 시절 학인들에게 불법에서는 가고 오는 것이 없다고 교육하시었는데, 지금 스님은 어디로 가시는 겁니까? 스님은 높으신 수행의 분상에서는 가고 오는 것을 방편으로 보여 주실지는 몰라도, 이제 스님을 보내드리는 저희들로서는 서운하기 그지없다”며 “지오 스님이시여, 당신 뜻을 이어 갈 후학들을 믿으시고 온갖 업무 훌훌 털어 버리시고 어차피 가시려고 나서셨으니 편안한 극락에 가셔서 잠시 휴식하셨다가 다시 오셔서 이 어지러운 사바세계를 불광정토로 만들어 주십시오”라고 스님의 향훈을 그렸다.

범어사 주지 보운 스님
범어사 주지 보운 스님

범어사 주지 보운 스님은 “언제나 경장을 손에서 놓지 않으시고 공부에는 다함이 없음을 몸소 보여주셨던 대강백 정혜당 지오 큰스님이 원적에 드신 오늘 우리는 적멸로 떠나시는 스승의 장삼자락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다”며 “지오 큰스님, 범어사 강당에는 여전히 스님의 음성이 남아있고, 책상에는 스님의 온기가 남아있으며, 스님과 함께한 옛 일이 오늘처럼 생생하다”고 회상했다. 이어 “작별의 슬픔 대신 존경의 마음을 실어 배웅하며, 스님이 일러주신 옥석같은 가르침을 지남으로 삼아 수행 정진하겠노라 다시금 서원한다”고 추모했다. 

조원호 불광법회장
조원호 불광법회장

지오 스님의 불광 제자 조원호 불광법회장은 “스님께서는 항상 부드럽고 온화한 모습으로 저희 대중들을 맞아 주시고, 법상에서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설법하시며, 평소에는 항상 계율을 중시하는 저희들의 큰 스승이었다”며 “ 평소 병약한 모습을 보이시다가도 법상에만 오르면 사자후를 토하시는 스님의 모습은 설법제일 부루나 존자의 화신인 듯하였다. 특히 불광사 불광법회에서 스님이 들려주신 금강경 법문은 어떤 다른 금강경 해설이나 법문보다 저희 불광 대중들에게 큰 울림을 주셨다”고 회고했다. 이어 “추운 겨울이 온 후에야 소나무와 잣나무의 푸름을 안다는 말이 있듯이 스님께서 가시고 난 지금에야 비로소 스님의 법향이 더욱 그리워진다”며 스님의 속환사바를 발원했다.

상좌 대표 용인 관음사 주지 대혜 스님
상좌 대표 용인 관음사 주지 대혜 스님

상좌 대표 용인 관음사 주지 대혜 스님은 “스님께서는 몸이 많이 편찮으셔 병원에 계실 때에도 상좌들이 문병이라도 가려고 하면 병원에 올 시간에 공부하라며 병원에 오지도 못하게 하셨다”며 “스님 방을 찾아 뵐 때면 항상 안경을 쓰시고 컴퓨터 모니터 앞에 바짝 앉아 역경 작업을 하시다 환하게 웃으시며 반갑게 상좌들을 맞이해 주시던 스님의 모습이 너무 그립다”고 전했다. 이어 “은사 스님께서 걸어오셨던 수행과 중생제도의 길을 이제부터는 저희 상좌들이 스스로 가야한다”며 “항상 스님께서 저희 상좌들에게 하신 말씀 간직하며 공부 열심히 하고 스님께서 보여주신 여법한 수행자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닮아가고자 노력하겠다”고 서원했다. 

영결식에 이어 지오 대강백의 법구는 오색 만장 물결을 따라 설법전과 천왕문을 지나 범어사 일주문에서 노재를 지낸 후 다비장으로 이운됐다. 연화대에 오른 스님의 법구는 “스님, 불 들어 갑니다”라는 사부대중의 외침을 뒤로하고 타오르는 불길을 따라 금정산에 홀연히 흩어졌다. 

1947년 음력 10월 7일 경남 밀양에서 태어난 지오 스님은 1970년 범어사 금강계단에서 광덕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수지하고, 1972년 범어사에서 석암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했다. 이후 1973년 범어사 승가대학 대교과를 졸업하고 1975년 동국대 부설 동국역경원 역경사를 수료했으며, 1976년부터 40여 년간 해인사, 범어사, 송광사, 통도사, 대만 묘종사, 중국 안휘성 감로사, 기원선사, 중국 양주 고민선사 등 제방 선원에서 35안거를 성만했다. 스님은 범어사 제97, 98회 보살계 수계법회 유나, 해인사 승가대학 학장, 범어사 승가율원 율원장, 범어사 승가대학 학장, 학교법인 금정학원 이사 등을 역임하며 후학 양성에 매진했다. 스님은 6월 27일 오후 1시 32분 범어사 서지전에서 원적에 들었다. 세수 77세, 법랍 54세.

스님의 저서로는 ‘사성체경’, ‘팔성도경’, ‘치선병비요경’, ‘불자독송집’, ‘초전법륜의 근본이념에서 본 교육적 의의(논문)’, ‘관음전예문’, ‘팔양신주경’, ‘보살계수계산림계본’, ‘약사경’, ‘초발심자경문’, ‘불교교리(구사 유식 5위 75과 100법)’, ‘반야심경사기’, ‘좌선하는 법(5문선경요용법)’, ‘참선의 요의(선요)’, ‘부파 및 종단불교’, ‘지장경’, ‘사미율의 1~3책’, ‘사미니율의 1~3책’, ‘범망경’, ‘보살계본경(보살계본1권(담무참역), 불설대승계경, 불설팔종장양공덕경, 보살수재경, 재가보살계, 보살계본(현장역), 보살선계경1권, 보살5법참회문, 보살계 갈마문, 불설재경, 불설8관재경)’, ‘화엄경 1~12책’, ‘부처님 법 우리가 지키고 보호하리(불설법멸진경)’, ‘금강경 5가해(범본 · 육가한역) 1~5책’, ‘서장 1~5책’ 등이 있다. 

한편, 지오 대강백의 49재는 7월 3일 용인 관음사에서 초재를 시작으로 10일 2재, 17일 3재, 24일 4재, 31일 5재, 8월 7일 6재가 봉행되며, 49재 막재는 8월 14일 서울 불광사에서 엄수된다. 

身雖披染衣하나
心衣非定色이라
我今脫兩衣하니
佛恐羞自裸이라.

몸은 비록 염의染衣를 걸쳤으나
마음의 옷은 정해진 색이 없어라.
내가 지금 두 옷을 다 벗어 버리니
부처가 나신裸身이 부끄러워 도망가네.

 

저작권자 © e붓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