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에게는 꿈이 있다. 하나, 자가용 모닝을 4륜구동으로 바꾸는 거다. 온갖 암자를 날아다닐 수 있게! 둘, 디자인 스튜디오에 실력 있는 직원들을 뽑아두는 거다. 날마다 절에 다닐 수 있도록! 셋, 현생에서 부자가 되는 거다. 어려운 사람들을 더 많이 도와주기 위해서! 그리고 넷, 다음 생에도 부자가 되는 거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한 불교에게 진 빚을 계속 갚아나갈 수 있도록!

불교에 너무나도 진심인 이 불자의 정체는 디자이너 심효빈 씨(35살, 법명 정수안). 불교 시각디자인 스튜디오 ‘추추비니’의 대표다. 불교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한 불교 굿즈부터 각종 기업과 관공서들의 로고, 포스터, 책, 그래픽 작업까지. 이 많은 작업물이 모두 그녀의 손끝에서 탄생한다. 세속 일과 불교 일을 넘나들며 불교를 알리고 있는 심효빈 디자이너. 지난 18일, 울산 추추비니샵에서 그녀를 만났다.

불교 시각디자인 스튜디오 ‘추추비니’의 심효빈 대표
지난 18일, 불교 시각디자인 스튜디오 ‘추추비니’의 심효빈 대표를 만났다.

― 어떻게 불교와 인연이 닿게 됐나
“25살쯤이었다. 현실을 알게 됐다. 나도 서울에서 일하고 싶고 유학도 가고 싶은데, 형편상 뜻대로 안되니까 분노, 박탈감이 생겼던 거다. 그때 엄마를 따라 처음 갔던 울산 황룡사에서 마음의 평안을 얻었다.”

― 브랜드 ‘추추비니’의 탄생 과정이 궁금한데, 어떻게 불교 굿즈를 만들 생각을 했는지
“황룡사에 간 뒤로 꾸준히 법당을 찾으면서 불교를 접했다. 어느 날 주지스님이 책을 준비한다고 하셔서 표지 디자인 작업을 도와드렸고, 그때 출판사 도반과 인연이 닿게 됐다. 이것저것 함께 작업했다. 그 후부터 신기하게도 작업 의뢰가 끊이지 않았다. 서울국제불교박람회, 홍콩서 열린 일러스트페어에도 참여했다. 그렇게 지금까지 오게 된 거다.”

― 불교를 만나고 ‘힘듦’에서 ‘감사, 혹은 이룸’으로 가는 특별한 전환점을 꼽아본다면
“스님 따라서 수행하기 시작한 거. 처음엔 법당에서 엉엉 울면서 나 좀 잘 풀리게 해달라고 부처님께 반 협박도 했다. 근데 수행하면서 마음의 중심을 잡게 됐다. 그러다 4년 전에 금강경 사경하며 썼던 노트를 발견하고는 다시 법당에 가서 엉엉 울었다. 내가 꿈꿨던 것들이 다 이뤄졌더라. 근데 그것 때문에 운 건 아니었다. ‘부처님 저 지켜보고 계셨네요. 제가 스스로 잘 할 수 있게, 저 자신에게 그런 힘이 있단 걸 제가 알 때까지 지켜보고 계셨네요’ 하고 깨달아서, 그게 너무 감사해서 울었다.”

― 사경 노트에 뭐라고 써져있었나
“일 많이 들어오게 해주세요. 신문사랑 인터뷰하게 해주세요. 오! 지금처럼. 그리고 울산 시내에 매장, 결혼, 그리고 신혼집 평수까지. 근데 신혼집을 ‘매매’라고 구체적으로 안 썼던 게 아쉽다. 지금은 전세라서 갈 길이 멀다. 그래도 부처님 가르침 덕에 나를 바꾸고, 내 인생을 바꿀 수 있었다. 게임으로 치면 ‘렙업’을 하게 된 거다! 완전 그런 느낌이다.”

― ‘수행’과 ‘렙업’의 상관관계가 궁금하다.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너무 많은 생각보다는 우선 그냥 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생각을 많이 하게 되면 분별하게 되고, 정신이 흐트러진다. 처음엔 생각이 많아서 불안했다. 그런데 수행을 하면서 마음이 편안해지고, 온전히 작업에 몰입할 수 있게 됐다.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꾸준한 노력과 꾸준한 수행이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결국 불교는 하루아침에 뚝딱 뭔가를 이뤄지게 하는 게 아니라, 수행하고 마음을 다스리면서 내 인생을 내가 만들어나갈 수 있게 해주는 것 같다. 아! 그리고 하나 더 있다. 내 욕심보다는 ‘내가 이걸로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거야’라는 이타적인 마음으로 임한 작품이 유독 흥하는 것 같다.”  

― 어떤 수행을 했나. 젊은 불자 심효빈의 ‘수행루틴’을 소개해달라
“우선 매일 법화경 사경을 한다. 벌써 3권 째다. 마음이 불안할 때는 염주를 굴리면서 염불을 한다. 운전하면서도 한다. 주로 신묘장구대다라니와 광명진언. 사홍서원은 샤워하면서도 흥얼거린다. 아! 그리고 꿀팁을 하나 드리고 싶다. 화가 날 때 사홍서원을 해봐라. 마음이 안정될 거다. 속는 셈 치고서라도 꼭 해보길!“

― 불교 굿즈를 만들 때 불교 지식이 필요할 텐데, 어떻게 공부하나
“스님 법문에서 지식을 얻는다. 절에 가서도 듣고 유튜브로도 듣는다. 또 매주 불교대학 수업에도 참여한다. 매일 공부한다고 보면 된다.”

심효빈 대표가 법화경 사경을 하며 작업한 포스터를 소개하고 있다.
심효빈 대표가 법화경 사경을 하며 작업한 포스터를 소개하고 있다.

― 부처님 가르침을 디자인 작업으로 녹이는 과정이 궁금하다
“예를 들면, 최근엔 법화경 사경을 하면서 갑자기 부처님에 대한 존경심, 신심이 일어났다. 그래서 부처님이 불자들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는 포스터를 만들었다. 그냥 사경하다 감명을 받아서 작업을 한 거다. 부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렸기에 행복하게 작업했던 기억이 난다. ‘고타마 싯다르타 부처님은 분명 잘생기셨을 거야! 마음을 예쁘게 쓰시니까 잘생기실 수밖에 없어!’ 하면서 그렸다. 하하”

― 작업을 하다가 잘 안 풀릴 때는 어떻게 하는지
“새벽 기도! 법당에 간다. 가서 기도하거나, 집에서 사경하거나 명상하면서 수행하는 거다. 근데 정말 신기한 게 그러면 잘 된다. 머리가 맑아져서 팽글팽글 돌아가는 느낌. 마치 마음사우나 같다. 이것도 꼭 해봐라. 속는 셈 치더라도 꼭!”

― 인스타그램에 심상치 않은 게시글이 있더라. ‘저와 대화를 하고 싶다면 미리 예약을 해달라’고 써져있던데.
“많지는 않아도 꾸준히 손님들이 들어오신다. 저를 어떻게 아셨는지 막 이것저것 물어보신다. 그렇게 한번 대화를 시작하면 3~4시간이 그냥 지나간다. 관심은 정말 감사하지만, 그날마다 해야 할 작업물이 있는데 마감에 쫓기는 게 걱정인 거다. 그래서 인스타그램에 써놨다. 아! 매장에 손님들을 위한 불교 책도 구비해놨다. 예약 하신 분에게는 마음 편히 대화할 시간을 드리고, 예약을 못하셨거나 불교에 관심 있는 분들은 매장에서 불교를 직접 알아가실 수 있도록! 저 작업할 때 옆에서 책 보시면 된다. 하하” 

― 손님들과 어떤 대화를 하나? 그중 특히 기억에 남는 손님이 있다면
“스님 선물 사러 왔다고 추천해달라고 하시는 분도 있고, 또 유튜버 강산 씨의 영상 보고 오신 분도 있다. 그냥 내가 궁금해서 왔다고 했다. 응원한다고. 종종 고민 상담도 하신다. 아! 내게 출가 상담을 하신 분도 있었다. ‘왜 나한테 출가 상담을?’ 의아했는데 생각해 보니 절이 문턱이 높아서 그런 게 아닌가 싶었다. 어떤 분은 남자친구랑 절에 갔는데 어떻게 뭘 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나온 적이 있다고 했다. 절에서 ‘삼배하는 방법! 기도하는 방법!’ 이렇게 아기자기하게 방문자용 리플렛을 만들어서 구비하면 어떨까.” 

― 좋은 아이디어다. 사전 인터뷰때 부터 유독 청년불자 포교에 관심이 많은 것 같은데
“부처님 가르침을 일찍부터 알면 힘든 상황에서도 이겨낼 힘이 생기니까. 내가 이렇게 잘 된 이유는 부처님 덕분이다. 사랑도 자비도 돌고 도는 거라서 상처 많은 친구들을 돕고 싶다. 또 어른들의 문화에는 이미 불교가 정착이 잘 되어있지 않나. 근데 청년들의 문화는 아직 그렇지 않다. 그래서 불교가 젊은 친구들 사이에서 하나의 트렌드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있다.” 

― 어떤 방법이 있을까
“도심포교다. 황룡사 주지스님이 도심 속에서 포교를 하셨기에 나 같은 불자가 생긴 걸 테니까. 또 도심 속 사찰들은 접근성이 좋지 않나. 언젠가 젊은 친구들 사이에서 ‘오늘 몸도 찌뿌둥한데 사찰이나 갈까. 기분도 꿀꿀한데 법당 가서 기도나 할래?’ 하고 자연스럽게 수행할 수 있는 분위기가 생겨나길 바란다. 그날을 위해 사찰 순례 모임도 생각 중이다. 인스타그램으로 모집할 건데, 만약 하게 된다면 꼭 오시라!” 

― 추추비니는 어떤 ‘도량’인가
“세속과 불교의 중간지점이 아닐까. 불자인 사람도, 불자가 아닌 사람도 매장에 와서 굿즈를 사간다. 또 불교에 대해 이것저것 묻기도 하더라. 그래서 앞으로도 추추비니를 매개체로 불교에 입문하는 청년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들과 같이 수행하면 얼마나 좋을까. 저는 불자들이 늘어날수록 많은 사회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생각한다. 불교는 좋은 사람이 되게끔 도와주지 않나.” 

― 앞으로의 계획은
“우선 단기적으로는 올가을에 열릴 서울불교박람회를 무사히 잘 마치는 것. 장기적으로는 해외 진출로 한국불교를 더 알리는 거다. 사실 프랑스 박람회에서 초청장이 왔는데, 비용적인 부분이 부족해서 참가를 못하게 됐다. 하지만 기회는 내년도 있고 내후년도 있을 거다. 더 열심히 수행하면서 일한다면 시절인연처럼 좋은 기회가, 나만의 때가 또 찾아오지 않겠나.”

― 마지막으로, 심효빈 불자에게 불교란?
“불교는 내 인생의 치트키다. 하지만 이제 ‘나의 불교’에서 ‘만인의 불교’가 되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정말 괴로웠던 시절 불교를 만나 지금처럼 행복할 수 있게 됐는데, 이 세상에 나같이 힘든 사람들이 얼마나 많겠나. 그러니 더 많은 사람들이 불교를 만나 행복했으면 좋겠다.”   

심효빈 대표가 불교 굿즈를 소개하고 있다.
심효빈 대표가 불교 굿즈를 소개하고 있다.

인터뷰를 마치고, 그녀와 함께 추추비니 도량을 구경했다. 가장 마음을 쏟은 작품을 꼽아달라고 하니 불자용, 비불자용 두 버전으로 만든 그림을 보여준다. 육바라밀을 지키면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처럼 행복해진다는 그림은 ‘불자용’, 거기서 육바라밀을 쏙 뺀 그림은 ‘비불자용’. 그럼에도 ‘happy’라는 문구를 깨알같이 그려 넣었다. 세속과 불교를 연결하는 도량 추추비니샵에는 그녀가 사랑하는 불교가 곳곳에 깃들어 있다.

“작업을 할 때 ‘이 그림을 보는 사람이 정말 잘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그린다. 누구든 불교가 주는 행복을 향유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추추비니샵으로 불교와 만난다면, 불교에 관심을 갖는다면, 그래서 행복을 느낀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불교가 정말.. 너무 좋다. 진짜 좋다. 진심이다.”

대화 내내 ‘불교가 너무 좋다’는 말만 여러 번 했던 그녀는 불교가 한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바꿨는지 더 널리 알려지길 바란다. 먼 훗날 나 심효빈이 눈 감는 날에 묘비명에도 써두고 싶을 정도란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이 자리에서 바로 써보자고 제안하니, 준비라도 한 듯 술술 읊는 유쾌한 그녀다.

“불기 2xxx년! 불교를 만나 인생이 바뀐 불자 심효빈! 괴로움에 갇혀 있는 무명의 청년들을 절로 이끌고 그리고.. 디자이너로서도 더욱 성공해서 한국불교를 세계에 널리 알린 다음에 이곳에 잠들다!”  

그녀의 손끝에서 탄생하는 것은 작품뿐일까. 아름다운 손길로 작업물을, 무명의 손님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그녀를 보고 있으니 ‘아. 나도 수행해볼까? 나도 마음사우나에 가볼까?’ 하는 마음이 들게 한다. 그녀를 만난 누구라도 그녀인지 불교인지 둘 중 하나에는 분명 반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게 한다. 행복, 치유, 그리고 희망. 이 모든 것이 ‘추추비니’ 속에 스며들어 있었기 때문에.

추추비니샵의 불교 굿즈들.
추추비니샵의 불교 굿즈들.
K-직장인들이 바라만 봐도 행복할 것이라며 만든 불자&비불자 공용 ‘퇴근합시다’ 엽서.
아기자기한 열쇠고리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아기자기한 열쇠고리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화가 날 때 보면 좋다는 ‘나는 자비롭다’ 엽서.
화가 날 때 보면 좋다는 ‘나는 자비롭다’ 엽서.
‘불성’을 상징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는 컵. 자신감이 떨어질 때 시원한 물 한 컵 떠마시면 좋다고 한다.
‘불성’을 상징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는 컵. 자신감이 떨어질 때 시원한 물 한 컵 떠마시면 좋다고 한다.
추추비니샵 한편에는 불교에 관심 있는 손님들을 위한 ‘도서 코너’도 마련돼 있다. 
추추비니샵 한편에는 불교에 관심 있는 손님들을 위한 ‘도서 코너’도 마련돼 있다. 
행복과 치유, 그리고 희망​​을 전하고 있는 어여쁜 도량, '추추비니샵'
행복과 치유, 그리고 희망​​을 전하는 어여쁜 도량, ‘추추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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