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책 『AI 부디즘』을 출간한 보일 스님.

“인공지능에도 불성이 있을까?” 

학인 시절, 위와 같은 소박한 질문을 시작으로 인공지능과의 인연을 이어온 해인총림 해인사 승가대학 학장대행 보일 스님이 최근 저서 『AI 부디즘』을 출간했다. 지난 8일 출간을 맞아 저자 보일 스님을 만났다. 붉은 단풍잎이 곱게 물든 해인사. 풍경과 잘 어울리는 열정 어린 눈빛을 띤 보일 스님은 인공지능과의 만남을 ‘시절 인연’이라 칭하며 정성스럽게 책을 소개했다.

학인 시절 도반들과 대화하다 주제 떠올려
전국승가대학 학인 논문 공모전 대상 수상
이후 불교신문 2년간 연재 끝에 책 출간

“인공지능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우연이었습니다. 오래전 해인사 승가대학 학인 시절에, 졸업을 하려면 졸업논문을 제출해야 했어요. 어느 날 도반들끼리 무얼 주제로 삼을까 대화하다가 인공지능 로봇에 대한 얘기가 나왔어요. ‘인공지능도 과연 깨달을 수 있을까?’ 도반들 중 일부는 깨달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일부는 아니라고 하면서 그렇게 찬반 토론이 벌어졌던 거죠. 그게 개인적으로는 참 흥미로웠고, 이걸 주제로 연구해 보면 재미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이후 스님은 방학도 반납한 채로 졸업논문 연구에 몰두했다고 했다. 당시 보편적이지 않은 주제라 자료수집에 어려움을 겪는 등 만만치 않은 과정이었지만, 그럼에도 스님은 참 재밌었다고 회상하며 미소를 띠었다. 그렇게 완성된 논문 「인공지능 로봇의 불성 연구」. 스님은 이 논문으로 전국 승가대학 학인 논문 공모전에 응모해 대상을 수상했고, 이후 시간이 많이 흐른 어느 날, 선배 스님에게서 걸려온 전화 한 통으로 인공지능과 또 한 번의 ‘시절 인연’ 처럼 재회를 맞게 됐다고 했다.   

“동국대에서 인공지능을 중심으로 한, 제4차 산업혁명과 불교에 대해 불교학 대회를 개최한다고 했어요. 선배 스님께서 논문을 제출해 보는 게 어떻겠냐고 하시길래, 갑자기 왜 이런 대회를 하는지 궁금해서 찾아보게 됐습니다. 그런데 제가 모르는 사이에 인공지능의 비약적 발전이 있었고, 딥러닝이나 알파고처럼 인공지능에 관심이 없었던 사람들까지 관심을 갖게 된 계기도 있었던 거죠.” 

보일 스님은 이때 인공지능이 더 이상 막연한 호기심의 문제가 아님을 직감했다고 말했다. 그 후 본격적으로 논의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불교신문에 글을 매주 연재하기 시작했다고. 

“인터넷과 책, 기사, 네이처(Nature)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Scientific American) 같은 유명 과학 잡지를 다 모아봤어요. 데이터들을 모을 때 나름의 상상력을 가미해서 그림을 그려왔죠. 또 사람이 특정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되면 그쪽 업계와 학계 사람들과 자연스레 교류를 맺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인터뷰 아닌 인터뷰를 해오면서 대중적으로 얻을 수 없는 정보까지 습득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스님은 2년간의 노력 끝에 연재해온 글을 모아 인공지능과 불교의 관계를 담은 책 『AI 부디즘』을 펴냈다. 

인공지능과 불교는 다른 듯 같아
불교계서도 시대의 흐름에 맞는 변화 필요
'프롤로그' 부분 주목해 줬으면

“인공지능과 불교, 이 두 단어를 들으면 누구나 그렇듯 낯설 거예요. 왜냐하면 인공지능은 최첨단 기술을 상징하고, 불교는 2500년 전 석가모니 부처님의 깨달음으로부터 시작된 종교라 아주 오래되었으니까요. 그러나 불교는 인류 역사상 인간의 마음과 의식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집중해서 연구하고 수행한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이라는 건 인간의 마음과 정신을 모방한 기술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인간의 마음과 정신, 의식, 지능 등을 이해해야 하죠. 그래서 이 둘은 공통된 토대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듯하면서도 같습니다.”

스님은 인공지능과 불교가 ‘인간 마음에 대한 사유’라는 공통 기반을 나누고 있기에 오히려 서로에게 새로운 영감과 통찰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가령, 불교의 가르침을 기반으로 인공지능의 현재와 미래를 바라보고, 또 인간의 입장에서 인공지능을 바라보며 마음속에 어떤 가치를 담아낼 것인지 질문하는 방식을 통해서다. 

“시대의 흐름을 읽고, 그에 따라 서서히 변화를 시켜가는 일이 중요해요. 불교계에서도 마찬가지예요. 디지털 시대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이 스님이 된다고 했을 때, 이 사람들이 원하는 방식과 세상은 어떤 것인지 귀를 기울여서 승가교육에도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양한 배경을 갖고 출가하는 미래 세대 스님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거죠. 과거의 방식도 잘 지켜나가야겠지만, 그 안에서 우리가 어떤 혁신을 할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을 해봐야 할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어 스님은 『AI 부디즘』에서 독자들이 반드시 읽었으면 하는 주제로 ‘프롤로그’를 꼽았다.

“프롤로그 부분은 이 책의 주제를 관통하는 내용이 담겼어요. 또 부처님의 마지막 유훈과 시대가 변하는 모습을 우리가 어떤 자세로 바라봐야 하는지, 왜 내가 이 책을 쓰게 됐고 왜 불교가 이 변화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주제를 선명하게 담아내지 않았나 싶어요. 그런데 그 변화가 꼭 인공지능이 아니더라도 상관없다고 봅니다. 불교도, 실천과 수행도 그간 우리가 과거의 것들을 무의식 무비판적으로 답습하고 있는 건 아닌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부처님 말씀대로 세상은 무상하고 계속 변하고 있으니까요.”

"매 순간이 에피소드이자 도전" 
글쓰기를 통해 일상이 곧 수행임을 깨달아
시대의 흐름에 맞춘 교육 프로그램은 한국불교 자산 될 것

책이 탄생하는 과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묻자 ‘모든 순간이 다 에피소드’였다고 답하신 스님. 스님은 잠시 생각에 머문 끝에 ‘글을 쓰는 매 순간이 도전'이었다고 답했다.

“연재가 2년 넘게 지속되다 보니 매주가 도전의 연속이었어요. 한 주 어떻게든 고민하고 자료수집한 것을 풀어내서 겨우 마감을 하면, 바로 다음 주가 돌아오고. 그래서 본의 아니게 글을 쓴 것에 맞춰서 제 생활이 최적화됐어요. 항상 긴장도 됐고, 체력관리도 하게 됐죠. 근데 그런 변화가 참 재밌더라고요.”

스님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를 묻자, 스님은 가장 큰 한 가지의 변화에 대해 설명을 이어갔다. 

“한 가지 큰 변화라고 할 수 있는 건, 제 생활과 사유방식의 변화였어요. 처음에는 ‘내가 글을 쓰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반대로 글을 쓰면서 배워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또 인공지능뿐만이 아니라 세상이 돌아가는 걸 좀 더 관심 갖고 유심히 보게 되면서 시선도 달라지는 걸 느꼈죠. 사소한 변화도 그냥 지나치지 않게 되고, 세상의 변화에 대해 남들이 얘기하고 쓴 글을 그냥 듣고 읽는 게 아니라 내 사유로 끊임없이 정리하고 고민해 보는 시간을 보내면서요. 결국 ‘내가 글을 써서 세상에 선보이는’ 시간이 아니었어요. 글쓰기라는 작업은 내 생각을 남에게 드러내는 일만이 아니라, 내 생활과 사유방식을 바꾸는, 오히려 ‘내가 변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스님은 이런 변화는 비단 책을 쓰는 작가들에게만 해당되는 특권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어차피 시간은 지나가잖아요. 지금 이 순간에도. 꼭 ‘책을 쓰겠어!’ ‘내 생각을 밝혀서 세상을 변화시키겠어!’ 이렇게 거창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글을 쓰는 것도 명상이고 수행이에요. 어떤 새로운 형상을 보고, 사유하고 고민하는 시간들은 오롯이 집중된 상태잖아요. 그런 시간이 내 일상에 생긴다는 건 정말 축복이에요. 그게 없으면 그냥 다 지나가는 시간들이니까. 글이 수행이고, 글을 쓰기 위해 사소한 일상을 포착하고 사유하고 집중했던 시간들이 결국 ‘일상이 수행이다’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 셈이죠. 그걸 경험적으로 알게 돼서 개인적으로도 아주 좋은 성취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많은 분에게도 일상의 수행, 글쓰기 수행을 권하고 싶어요.”

2년간의 책 집필 과정을 ‘일상의 수행’이라고 표현한 스님. 스님은 기분 좋은 긴장감 속에 있었던 지난 2년을 회상하며 놀랍다고 말한다.

“핵심은 뭘 빨리, 뭘 많이 하는 게 아니라 조금 더딘 걸음이라도 소걸음처럼 지속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성실하면서 질적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이죠. 2년도 짧은 시간이지만, 충분히 나 자신과 세상을 변화시키고, 내 생각을 세상에 내놓아 책 한 권을 만들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자리를 옮겨 스님과 해인사 곳곳을 거닐었다. 해인사 승가대학 학장이기도 한 스님은 AI 불성에 관한 강의를 할 때 학인들의 눈빛이 가장 반짝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세상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교육적 지원이 참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세상을 바라보는 이해의 폭과 통찰력이 넓어진다는 이유에서다.

“최근 학인 스님들 중에서는 사찰음식 요리가가 되려고 열심히 특별활동을 하는 스님도 있고, 산스크리트어, 악기, 성악, 판소리 등을 배우는 경우도 있어요. 꼭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최소한 학인 과정에서 경험해 보는 사실만으로도 세상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질 거예요. 경전을 열심히 보면서 스님들에게 다양한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 이런 고민들을 시대 속에 어떻게 조화롭게 녹여갈 것인지 앞으로 고민해 보려 해요.”

스님은 앞으로 펼쳐나갈 다채로운 프로젝트를 언급하며 이러한 고민들이 한국불교의 큰 자산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굳게 확신했다. 가을 해인사의 붉은 단풍잎을 담은 열정 어린 눈빛, 그리고 학인 스님들의 호기심 어린 눈빛. 맑고 강렬한 두 개의 빛이 모두 보일 스님의 눈동자 속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해인사의 가을 풍경.
해인사의 가을 풍경.

 

저작권자 © e붓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