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 않는 꽃이 어디 있으며 피지 않는 꽃이 어디 있겠는가”

어딘가에서 본 인상 깊었던 문구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꽃이라 하면 응당 피어나는 것이며, 응당 져야만 하는 운명을 지니고 있다. 다만 꽃이 저물지 않길 바라는 마음은 흘러가는 시간을 멈추게 하고 싶은 우리의 작은 욕심일 것이다.

백양사 응진전의 꽃이 그러하다. 시간이 멈춘 듯 30여 년째 지지 않는 꽃이 피어있는 곳이다. 그 꽃은 한 번도 진 적이 없으나, 계절에 따라 색을 달리하고 세월을 좇아 모습을 바꾸며 생을 이어가고 있다. 시간을 불변에 가둬둘 순 없겠지만 누군가의 한결같은 마음이 있다면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손반야지 불자님의 손끝에서 응진전 꽃들의 시간은 멈춰있다.

백양사의 꽃공양을 책임지고 있는 손반야지 보살님.

1989년, 방어진에 살다가 중구로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주변에 교회에 다니던 친구들이 예배 전에 꽃을 사다 꽂아두는 것을 보고 반야지 보살님은 생각했다. ‘우리 절에도 저 꽃을 꽂으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생각은 곧 실천으로 이어졌다. 당시 소박했던 대웅전(지금의 응진전)에 꽃을 꽂고 장엄하니 법당이 향기로움으로 가득했다. 원력은 멈추지 않았고 일주일에 한 번, 한 달에 네 번씩 꼭 꽃공양을 올렸다. 소소한 취미는 습관이 되었고, 30여 년째 습관이 이어졌다. “그때는 법당 벽에 구멍도 숭숭 뚫려있었어요. 그래서 꽃을 꽂아두면 겨울에는 꽃이 꽁꽁 얼어버리곤 했답니다. 꽃이 상하기 전에 새로운 꽃을 올려야 한다는 마음에 부지런히 부처님 전에 공양을 올렸지요.” 이젠 손재주도 제법 늘어서 전문 플로리스트 못지않는 실력을 갖추게 되었다. 보살님은 매일 이른 아침, 도매 꽃집이 문을 열기도 전에 가게 문 앞에서 기다리다가 주인이 문을 열면 그날의 첫 꽃을 가장 처음 구입한다. 좋은 꽃이 소매상에 팔려나가기 전에 구하려는 마음 때문이다.

그 부지런함의 곁에는 류인상 처사님이 늘 함께한다. 좋은 아내, 좋은 엄마, 좋은 도반으로서 반야지 보살님의 곁을 신장님처럼 지키는 것이 처사님의 즐거움이기도 하다. 사실 반야지 보살님이 본격적으로 기도를 시작한 것도 남편인 류인상 처사님의 건강 때문이었다. 결혼 초, 남편의 건강이 걱정됐던 보살님은 늘 시댁인 경주에 있는 불국사에서 기도를 올렸다. 시댁을 갈 때마다 절과 기도가 동반되었다. 간절한 마음 덕분인지 부처님께서는 일찍 가피를 주셨고 건강해진 남편을 보며 불교에 대한 믿음과 신심이 더욱 깊어졌다

서로에게 든든한 도반이 되어 주는 부부.

“탈 없이 잘 커준 아이들과 평온한 가정을 이루게 해준 데는 아내의 믿음이 가장 컸지요. 우리 가족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도 아내의 공덕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류인상 처사님이 아내를 바라보는 눈은 애틋하다. 아내가 꽃을 사서 응진전에 꽃꽂이를 올리는 동안에도 처사님은 묵묵히 밖을 지킨다. 가고 싶은 절,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언제나 두말 않고 따라가주는 남편 덕에 보살님은 전국의 좋은 곳은 다 가봤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반야지 보살님은 매일 기도와 사경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한다. 믿음으로써 부처님을 모시고, 믿음으로써 불교를 배우며 여생을 회향하고 싶다는 마음은 기도를 놓지 않게 하는 원력의 바탕이 되고 있다.

응진전은 늘 향기롭다. 소박하고 작은 시작이 지지 않는 꽃이 피는 기적을 이루었다. 응진전의 30년 기적, 그리고 한 보살님의 30년 원력이 부처님 전에 귀한 공양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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