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경은 다른 경전보다 분량도 많고 또한 그 설법의 내용이 매우 심오하여 대승경전 중 최고이고 최상승 법문 중 가장 최상승입니다. 그러므로 화엄경을 제대로 설명하려면 그야말로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불교 강원에서도 화엄경을 몇 년간 공부하는데 이 짧은 시간에 이를 설명하려니 벅찹니다.

부처님은 임금의 자리를 헌신짝처럼 버리시고 출가 수행자의 길을 선택하셨습니다. 그 수행 끝에 납월 8일에 성도를 이루시고 펼치신 최초의 설법이 화엄경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녹야원서 다섯 비구에게 사제법을 설하시기 전에 마가다국 부다가야에서 성불하셨습니다. 그런데 성불 직후 바로 설법하지 않고 잠시 주저하셨습니다.

법화경에 이르듯 “내가 깨달은 진리는 최고 최상으로 가장 심오하여 말하기가 어렵고 또 말을 한들 내가 말한 진리를 누가 제대로 이해하고 알아듣겠는가.” 하시며 이칠일, 삼칠일 동안 유하셨습니다. 사유하는 동안 여러 보살과 제석천왕, 대범천왕 등 과거 석가여래 부처님과 인연이 깊은 도반들이 어리석은 중생을 외면하 열반에 들지 말라고 설득하셨습니다. 그리하여 부처님께서 여신 최초의 법회가 화엄법회이고, 80권 화엄경 39품 중 최초 품이 세주묘엄품입니다. 60권 화엄경은 이를 세간정안품世間淨眼品이라 번역했습니다. 세간정안품은 세상에서 가장 청정한 안목의 성인들이 모여 연 법회를 일컫습니다. 세주묘엄품의 세주란 세상의 주인인데 부처님을 비롯한 사천왕, 제석천왕, 천신 등 세주들이 화엄법회를 신묘하게 장엄했다는 뜻입니다. 이 세주묘엄품에서는 화엄성중華嚴聖衆들이 부처님과 부처님이 쌓으신 덕을 찬송합니다.

  • 불신충만어법계佛身充滿於法界
  • 보현일체중생전普現一切衆生前
  • 수연부감미부주隨緣赴感靡不周
  • 이항처차보리좌而恒處此菩提座

부처님의 불신과 보신은 법계에 충만하고 일체 중생 앞에 널리 나타나십니다. 달이 물이 있는 곳 어디서나 비치듯 모든 중생 앞에 감응하여 나타나지만 항상 깨달음을 얻으신 그 자리에 계십니다.

  • 약인욕식불경계若人欲識佛境界하면
  • 당정기의여허공當淨其意如虛空이라

만일 부처님의 경지를 알고자 하면 자신의 의식을 허공처럼 청정히 하라고 합니다. 허공은 더없이 넓고 텅 비어 있습니다. 비록 중생의 마음에는 잡념이 일어 무언가로 가득 차 있지만 본래 마음자리는 중생도 부처님도 똑같이 비고 밝습니다[虛明].

  • 원리망상급제취遠離妄想及諸趣하여
  • 영심소향개무애令心所向皆無라.

무애無라는 말은 마음에 걸림이 없다는 말입니다. 부처님이 되면 걸리는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나와 고통받는 이유는 마음에 걸림이 있기 때문입니다. 허공에는 비행기도, 새도, 바람도, 안개도 걸림이 없습니다. 승찬 대사의 『신심명』에 ‘허명자조虛明自照하여 불로심력不勞心力하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흘러가는 것에 쏠리지 않고 마음을 항상 비고 밝게 스스로 비추어야 합니다. 그 방법이 염불이고 참선이고 기도고 독경입니다.

말하는 사람도 모르고 듣는 사람도 모르는 불가사의한 경지, 생각할 수도 말할 수도 없는 자리, 그것을 화엄경에서 말씀하십니다. 화엄경의 진리는 깨우치면 임금보다 좋고 부귀영화보다 좋고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러나 화엄경은 깊고 심오하고 어려워 그냥 깨우쳐지지 않습니다. 부처님께서도 보살도를 닦으실 때 난행고행을 많이 하셨습니다. 하기 어려운 일을 많이 하고 공덕을 많이 쌓고 법을 위해서는 몸과 목숨도 잊어버릴 정도였습니다.

그중 가장 간단명료한 것이 허명虛明입니다. 염불도 허명한 자세에서, 참선도 비고 밝은 데서 해야 합니다. 화엄경 80권 마지막에 입법계품이 나옵니다. 선재 동자가 문수보살의 선지식을 친견하고 55위의 법문을 성취하여 성불하는 내용이 화엄경 입법계품입니다. 법계에 들어가는 것도 결국 비고 밝은 마음에서 이루어집니다. 마음을 텅 비워 망상 · 잡념 · 갈등 · 불안 · 공포를 다 놓아 버리는 것입니다.

흑치범지라는 바라문교 수행자가 부처님께 공양하기 위해 양손에 꽃을 들고 왔습니다. 그 사람에게 부처님이 놓아 버리라 하십니다. 그래서 왼손의 꽃을 놓으니 또 놓아 버리라 하십니다. 오른손의 꽃도 놓으니 다시 한 번 더 놓아버리라 합니다. 당황한 흑치범지가 무엇을 놓으라 하느냐고 묻자 부처님은 양손의 꽃이 아니라 안의 육근六根, 밖의 육진六境, 중간의 육식六識18계를 놓아 버리라고 설명해 주십니다. 그 말을 듣고 깨달은 흑치범지는 아라한이 되었다고 합니다. 놓아 버리면 지극히 편안하고 구애와 속박이 없습니다.

우리의 육안은 한정되어 지극히 큰 것, 지극히 작은 것, 지극히 어두운 것, 지극히 밝은 것을 보지 못합니다. 그리하여 무한의 진리, 무한의 광명을 보지 못합니다. 염불삼매를 성취해 아미타불을 친견할 때 아미타불의 광명을 볼 수 있습니다. 이때 마음의 본체, 진리인 대방광을 이룰 수 있습니다. 부처가 되면 대방광이 되고 보살의 육도 만행의 마음꽃을 피우면 비로소 불화엄을 이룰 수 있으니 이것이 바로 대방광불화엄입니다.

 

이 법문은 2016년 12월 29일 금정총림 범어사에서 열린 53선지식 천일 화엄대법회에서 부산 화엄사 회주 각성스님이 설하신 화엄경 강설의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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