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화엄제일 도량 범어사에서 여러분들에게 대방광불화엄경을 설하게 된 것은 과거생의 큰 인연의 소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 인연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뜻에서 오늘 여러분께 나누어 드린 대방광불화엄경 1권 사경책의 제일 뒤 표지를 봐 주시기 바랍니다. 여기 찍힌 도장은 원효암 우물 속에서 건져 냈는데, 신라 시대의 도장이라고 합니다. 국가 지정과는 별개로, 1338년 역사를 지닌 범어사에서 제1 보물로 지정한 도장입니다. 이 도장은 범어사를 창건하신 의상 스님의 도반인 원효 스님이 늘 사용하시던 도장입니다. “장대교망張大敎網 녹인천지어 人天之魚라.” 화엄경이라는 큰 가르침의 그물을 펴 이 세상 모든 사람을 제도하겠다는 뜻입니다. 범어사는 이와 같이 원효 스님과 의상 스님, 화엄경과 인연이 깊고 깊은 곳입니다. 그렇기에 제가 화엄제일 도량이라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경선 스님이 범어사 주지로 부임해 오셨을 때 제가 “주지 스님을 도와드리는 법은 이 화엄경 산림하는 일입니다.”라고 해서, 이번에 『대방광불화엄경 강설』 1권 300부를 법공양 올리게 됐습니다.

화엄경의 온전한 이름은 대방광불화엄경입니다. 인도의 말로는 ‘마하 바이프라 붓다 간다 뷰하 수트라’라고 합니다. 화엄경은 워낙 큰 경전이다 보니 이름의 뜻도 깊고 높습니다. 제가 화엄경을 강설한다고 하지만 화엄경 전체 뜻의 천 분의 일, 만 분의 일도 설명해 내지 못했습니다. 나머지는 여러분의 몫입니다. 거듭 읽고 사유하며 그 속에 담긴 뜻을 발견해야 합니다.

‘대大’, 즉 ‘크다’라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이 글을 쓰고 읽고 있는 당신이 크고 위대하다는 뜻입니다. 모든 사람, 모든 생명, 모든 존재가 다 크고 위대하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그 인생을 어떻게 살든 사는 모습에는 아무런 관계없이 생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그 삶이라는 자체만으로도 매우 훌륭하고, 아름답고, 신비하고, 위대하다는 뜻으로 ‘크다’라고 하였습니다.

‘방方’, 즉 ‘바르다’고 하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저나 여러분이나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무엇을 어떻게 하며 살든 그대로가 방정하며, 아름다우며, 여법하며, 저절로 그러하여 아무런 잘잘못이 없다는 뜻으로 ‘바르다’라고 한 것입니다.

화엄경을 풀어 가는 열쇠가 몇 가지 있습니다. ‘심불급중생心佛及衆生 시삼무차별是三無差別’ 마음과 부처와 중생은 차별 없이 하나라는 뜻입니다. 다음 열쇠는 ‘계성자시광장설溪聲自是廣長舌 산색기비청정신山色豈非淸淨身’ 모든 소리, 사람은 물론이고 저 시냇물 소리와 바람 소리까지도 다 부처님의 설법이라는 뜻입니다. 화엄경은 두고 가도 좋으니까 그 열쇠만 챙겨 가세요. 이 두 열쇠는 화엄경뿐만 아니라 팔만대장경을 다 열 수 있는 열쇠입니다.

‘광廣’, 즉 ‘넓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이 세상의 모든 사람 사람과 생명 생명들이 다 같이 넓고 넓어 그 끝을 찾을 수 없는 존재라는 뜻에서 ‘넓다’라고 한 것입니다. 즉 모두가 백천억 화신으로 작용하며 돌아가는 모습입니다. 제석천궁을 덮고 있는 인드라 그물은 하나하나가 구슬로 되어 있는데 그 구슬은 다른 모든 구슬을 서로 비추고 비추며 중重과 무진無盡을 이룹니다. 그 그물처럼 우리가 그렇게 얽히고 엮여산다는 것입니다.

‘불佛’, 즉 ‘부처’라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부처라는 뜻이며, 이 세상 모든 생명이 다 부처라는 뜻이며, 이 세상 유정무정의 모든 존재가 다 부처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화엄경의 가르침을 알고, 모두가 부처님으로서 당당하게 살도록 하는 것이 곧 불교 공부의 목표며, 나아가서 모든 사람, 모든 생명, 일체만유를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기고 서로 위하며 보호하고 아끼면서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도록 하는 것이 불교의 궁극적 목표입니다.

‘화華’, 즉 ‘꽃’이라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이 세상의 모든 것은 가장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이라는 뜻입니다. 뿌리도 꽃이요, 줄기도 꽃이요, 가지도 꽃이요, 잎도 꽃이요, 꽃도 꽃이요, 열매도 꽃이요, 모든 사람, 모든 생명, 모든 존재가 다 향기롭고 아름다운 꽃입니다.

‘엄嚴’, 즉 ‘장엄하다’라고 하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흔히 인위적으로 꾸며놓은 것을 ‘장엄’이라 하지만 화엄경의 깨어 있는 안목으로 보면 모든 존재가 있는 그대로가 훌륭한 장엄입니다. 또 하나의 아름다운 장엄을 이야기한다면 세상을 아름답게 하고 맑고 향기롭게 하여 진실로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 가는 불심이 가득한 보살행을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보살행은 봉사하는 것, 남을 배려하는 일입니다. 남부터 먼저 이롭게 생각하는 것이 보리심이고, 보살심이고, 보살행입니다.

‘경經’, 즉 ‘진리의 말씀’이라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진리의 말씀이 어디 종이에 쓴 부처님이나 조사의 말씀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시냇물 소리, 바람 소리, 시장에서 물건 값을 흥정하는 소리, 아이들이 장난치는 소리, 이 모두 진리의 말씀 아닌 것이 없습니다. 또 이런 선시도 있습니다. “나에게 한 권의 경이 있는데 종이나 먹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펼쳐 보아야 글자 하나 없다. 그러나 항상 큰 광명을 놓고 있다.” 불교에서 말하는 경전이란 바로 이러한 뜻을 지닙니다. 종이에 먹으로 썼거나 인쇄로 이루어진 것만 경전이 아닙니다. 하물며 화엄경이야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이상 대방광불화엄경 제목에 관해 설명했습니다. 열심히 공부하셔서 오늘 이 수승한 인연을 참으로 보람되고 유익하게 만드시기 바랍니다.

 

이 법문은 2016년 11월 29일 금정총림 범어사에서 열린 53선지식 천일 화엄대법회에서 전 조계종 교육원장 무비스님이 설하신 화엄경 강설의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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