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자의 질박한 생활을 보여주는 말이 삼의일발(三衣一鉢)이다. 이는 겉옷, 중간옷, 속옷 정도에 발우 하나를 더한 말이다. 미얀마는 나무로, 태국은 철로 되어있는 발우는 탁발하면서 먹기 위한 최소의 도구로서 삼의와 이 일발을 합친 것이 곧 스님들의 기본적인 재산이 된다. ‘삼의일발로 절인정하라’는 말이 있다. 삼의일발에 의지해 인정을 끊으라는 이 말은 도를 닦는데 최선을 다하라는 뜻이다.

수행은 실재참구라, 아무리 글로서 읽는다 한들 행동이 따르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강의를 하는 동안에도 교재를 읽는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행간 사이의 의미를 간파해야 비로소 공부를 했다고 할 수 있다.

산새

나뭇가지 사이에서 새가 / 깃털을 다듬는다.

거울도 없이 / 네 모습 다듬는 너의 솜씨

닮고 싶구나

쌓아놓은 재산도 없이 / 잘도 살아가는 너

얽힌 가지 사이로 / 걸림 없이 나는 너

부럽구나.

여기서 산새는 수행자의 자화상이다. 어느날 부엌에서 불을 떼고 있는데 반대쪽 나뭇가지에서 새가 깃을 다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갑자기 떠오른 생각을 시로 옮겼다. ‘쌓아 놓은 재산도 없이’ 이것은 무소유를 뜻한다. ‘얽힌 가지 사이로’는 마치 복잡다단한 우리의 세상과 닮아있다. 그 가지 속에서도 걸림 없이 산다는 것은 자유를 뜻한다. 산새는 무소유와 자유를 노니는 수행자와 꼭 닮아있다. 도를 닦는 사람은 마을에 살고 있어도 이 생각으로 도를 닦는다. 그래서 산새를 그런 수행자에 비유했지만, 산새는 불교도 모두에 비유될 수 있다.

우리는 자기 개인의 수행을 하는 신도이기도 하지만 부처님 제자다. 그렇기에 시대에 불교도로서 살아가는 나름의 사명의식을 가져야 한다. 부처님께서 처음 출가해서 집도 절도 없을 때 어떻게 사셨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부처님은 숲속을 다니며 좋은 나무아래 반석, 즉 석상수하에서 수행을 하셨다. 그리고 6년 고행 끝에 깨달음에 이르시고, 첫 제자를 만나 법문을 설했다. 이때 만난 첫 제자는 수자타에게 우유를 얻어먹는 부처님의 모습을 보고 부처님을 비난했던 사람 중 하나다. 부처님은 그렇게 첫 법문을 설했고 그 후 20년 동안은 계율을 범하는 이 없이 부처님의 말씀을 따랐다.

‘제악막작 중선봉행 자정기의 시제불교(諸惡莫作 衆善奉行 自淨其意 是諸佛敎)’라 20년 동안 1250명을 모아놓고 달밤 아래 포살할 때 부처님이 설한 유일한 계율이다. 하지만 20년 이후에 교단에서 여러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고, 계율이 만들어졌다. 문제가 없을 때는 법이 필요 없지만 문제가 생긴 이후에는 법이 필요해 진 것이다. 하지만 법이라는 것은 필요할 때는 쓰다가 시대에 맞지 않고 쓸모가 없어지면 사라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현대의 법은 폐지하지 않은 당시의 법을 그대로 가져다 쓰고 있다. 부처님께서 수행자로서 다니다가 깨달으시고, 그 후 30여 년에 가까운 세월을 순수불교 시대라고 본다. 나는 이 시대를 동경하고, 그같이 살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렇기에 의식 위주의 불교보다 법문과 수행위주의 불교를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승가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가? 스님이 되어 출가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스님들의 출가담을 듣다보면 누구하나 쉬운 결정을 내린 이가 없다. 봄에 뿌린 씨앗이 오래오래 싹을 틔우고 결실이 되어 대지에 툭 하고 떨어져야 비로소 출가의 길을 선택한다. 그렇기에 출가하는 그 자체가 훌륭하고 거룩한 일이다. 출가 후에는 스님 생활을 어떻게 하느냐는 문제에 당면한다. 하지만 스님이라면 도를 닦고, 자기 수행을 하는 것만으로도 응공應供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불자면 불자로서 당연히 불법을 배우는 세금을 내야한다. 이것이 단월이다. 단월은 베푸는 것을 즐거워하고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사람을 이르는 말로 다른 말로는 보살이다. 불교 신자라면 당연히 단월이 되어 스님들에게 응공 해야 하는 것이다.

일본은 과거에 불교신도에게 매기는 세금이 있었다. 보시하는 것을 기본으로 삼기 때문이다. 그 제도를 통해 스님과 신도라는 승가 안에서의 관계가 형성된다. 또 태국에는 무엇이든 스님에게 공양 올리는 것을 우선으로 한다. 그리고 스님은 법문이나 염불로서 되돌려준다. 공양을 올리고 법으로 돌려주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우리가 본격적으로 불교를 공부하기에 앞서 스님과 재가자의 관계를 명확하게 정립하는 일이 그만큼 중요하다. 스님을 응공의 대상으로 삼고, 불자 스스로는 단월이 되어 보시하기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마음가짐이 우리 공부의 가장 첫 단계임을 주지해야 한다.

 

* 이 내용은 2월 12일 도현스님께서 연암토굴에서 불자들에게 설하신 법문을 정리한 것입니다. 법문은 다음에 계속 이어집니다.

                                                          

도현 스님은
범어사 덕명 스님을 은사로 1963년 부산 범어사에서 입산 출가했다. 1965년 동산 스님에게 사미계를, 1972년 범어사에서 석암 스님에게 비구계를 받았다. 제방선원에서 30여년간 정진했으며 태국에서 5년 동안 위빠사나 수행을 체득한 스님은 현재 지리산 연암 토굴에서 홀로 수행자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저서로는 ‘조용한 행복’, ‘나라고 불리어지는 것에 대한 알아차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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