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코너는 많은 대중들의 소통을 위한 공간으로 누구나 기고가 가능합니다. 부처님의 정법에 기초한 견해를 밝히는 원고라면 자유롭게 공유하실 수 있습니다.

서산대사는 《선가귀감》에서 “선은 부처님의 마음이요, 교는 부처님의 말씀이다. 마음은 선법이고, 말씀은 교법이다.”고 말했다. 이어 “무언으로써 무언에 이르는 것이 선이며, 유언으로써 무언에 이르는 것이 교다.”고 하였다. 

비록 선불교는 일체의 언어문자와 사량분별을 여의지만, 한편으로는 불경에 나타나는 화엄사상, 공사상, 유식사상, 법화사상 등을 골고루 활용한다. 선을 중심으로 교를 융섭하는 서산대사의 통불교적 종풍은 이후로 한국불교의 특징이 되어 내려오고 있다. 

선 가운데 교가 있고, 교 가운데 선이 있다. 교를 통해 선을 증명하고, 선도 교를 뒷받침할 수 있는 힘을 갖추어야 한다. 이럴 때 선·교가 한 덩어리가 되고, 진리와 방편이 하나로 합쳐져서 법륜의 바퀴가 무애자재하게 굴러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과 교가 둘이 아닌 입장에서 선불교의 가치와 그 당위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선은 깨달음 자체이고, 교는 깨달음을 전달하는 언어다. 부처님께서 깨닫지 않았더라면, 불교는 탄생할 수 없었다. 부처님의 가르침인 교의 위대함은 그 속에 깨달음의 알맹이가 내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대긍정을 하신 분이다. 선과 교는 함께 긍정되고 소통되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부처님 가르침의 골수인 ‘무위법’을 즉각 드러내는 선불교는 교학적으로도 설명될 수 있어야 한다.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신 궁극적인 뜻은 인류에게 ‘유위법에서 무위법으로 전환하는 길’을 제시하신 데 있기 때문이다. 

불법의 지혜는 유위법에서 무위법으로 전환하는 안목을 가리킨다. 유위법은 인연으로 말미암아 생겨났다 사라지는 형상을 가지고 공부하는 점차(漸次)의 무상한 ‘생멸법’에 해당한다. 하지만 무위법은 번뇌가 새지 않는 무루법(無漏法)으로서, 인연에 따른 조작을 여의고 생주이멸의 변천을 겪지 않는 ‘중도불이’의 돈교(頓敎) 법문에 해당한다. 

인도에서 시작한, 초기불교와 대승불교의 다양한 교설을 정리하여 팔만대장경을 총체적으로 파악하려는 불교의 움직임은 중국에서 본격화되었다. 이 운동을 ‘교상판석(敎相判釋, 줄여서 교판)’이라 한다. 불교는 중생의 수준에 맞는 여러 가지 길을 열어놓았기 때문에, 다양한 수준에 따른 그 방편들이 일견 서로 모순적인 것으로 비쳐지기도 한다. 

불교가 중국에 들어왔을 때, 소승과 대승이 한꺼번에 유입되어 혼란스러웠다. 대·소승불교 사이의 오해를 불식시키고자 하는 시대적 요청에 의해, 전체의 시각에서 팔만대장경의 가르마를 타는 교판이 요청되었던 것이다.

화엄종 종밀대사는 중생들의 근기에 맞추어 다양한 가르침을 펼치는 불교의 입장을 ‘5교판’으로 나누어 설명하였다. 부처님이 오시기 전의 세상에는 ‘인천교(人天敎)’의 가르침이 지배하고 있었다. 부처님께서는 어디까지나 육도윤회로부터 해탈하는 열반을 가르치셨지만, 처음 가르침을 펼치실 때는 소승교 아래에 인천교를 배대하여 육도윤회 속에서 천상락(天上樂)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까지도 포섭하였던 것이다. 

부처님은 처음에 근기가 낮은 사람들을 위해서 그들이 익숙한 기존의 가치관을 이용하여 ‘세간적인 선업을 지어서 그에 상응하는 감응을 받도록’ 하는 가르침을 펼쳤다. 즉 삼세업보와 선악의 인과법을 가르친 것이다.

부처님께서 제위 장자를 위해 설한 《제위경(提謂經)》 등의 초기불교 경전이 이에 속한다. 지금까지도 불법을 제외한 대부분의 종교는 이 수준의 가르침에 속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비록 불자라도 기복을 추구한다면 인천교에 머물고 있는 사람이다.

천상이 목표인 일반종교와는 달리, 불교는 하늘이 궁극적인 이상이 아니라고 가르친다. 천상에 태어난다고 하여도, 그곳에 영원히 머물 수 없고 또한 지은 복이 소진하면 다시 아래로 내려오는 윤회를 피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생겨난 것은 반드시 멸하는 생멸법에서 천상락도 자유로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천상을 포함한 육도 윤회계는 생멸세계이고, 육도로부터 해탈한 자리가 열반이다. 유위법은 육도 내에서 부침하는 것이고, 무위법만이 육도로부터 벗어나 무애자재하게 되는 길이다. 
불교의 특징은 처음부터 무위법을 지향한다는 점에 있다. 그래서 육조혜능의 제자인 영가현각은 《증도가(證道歌)》에서 “한 번 뛰어 바로 여래의 지위에 들어간다(一超直入如來地)”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인천교적인 가치관 속에서는 복이 다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선업을 짓고 수행을 닦아가야 하므로, 이런 수행은 유위법에 속하는 것이다. 유위법으로는 육도 윤회에서 해탈할 수가 없다.
종파마다 다른 여러 교판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천태종 천태지의 대사의 ‘오시팔교(五時八敎)’다. 부처님의 설법을 다섯 시기로 나누고, 중생을 가르치는 형식과 교리의 깊이를 각각 네 가지로 분류한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불경 탄생의 다섯 시기는 역사적인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해석학적인 입장에 의한 것이다. 

천태종의 입장에서 봤을 때, 제1기의 불경은 《화엄경》이다. 부처님은 성도 후 21일 동안 깨달음의 내용을 있는 그대로 토해내었다. 이것은 제법실상(諸法實相)의 근본입장에서 설한 내용이어서, 부처님이 계시든 안 계시든 상관없이 설해지는 상주설법이다. 

그렇지만 그 가르침은 너무나 깊은 내용이어서, 중생들이 이해할 수가 없었다. 따라서 대자대비하신 부처님께서는 중생의 눈높이에 맞춰서 단계 단계로 설하는 방편의 가르침을 펼쳐내었다.

결국에는 불자들이《화엄경》을 소화할 수 있도록 기초를 놓는 작업이었다.

그 첫 번째 방편으로 제2기 12년 동안 《아함경》이 설해졌다. 인과법, 사성제, 팔정도, 십이연기 등 당시 중생들의 수준에 따라 기초단계를 설하기 시작한 것이다. 불교의 밑바닥에 아함을 깔아 놓고, 그 위에 무위법의 탑을 세우는 방편이었다. 따라서 아함 속에 화엄이 내재되어 있고, 화엄 속에도 아함이 들어있다. 

제3기 8년 동안은 한 단계 더 깊은 설법이 행해져 《유마경》, 《능가경》 등 대부분의 대승경전이 포함되는 방등부 불경이 편집되었다. 

그 후에 이제 보다 성숙해진 중생들의 근기에 맞춰, 존재의 실상을 여실히 보고 지혜를 얻게 하기 위해 제4기 22년간 《반야경》의 공사상을 설한다. 

이때 유위법에서 무위법으로의 전환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진다. 일반적인 명상 수행법을 넘어서는, 차원이 다른 수행법이 등장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제5기 8년 동안 《법화경》을 설하고, 열반에 들기 전 《열반경》을 설하였다. 법화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이 세상에 나오신 인연으로 설해진 경전으로, 여기서는 5시기 동안의 모든 가르침이 회통된다. 

그래서 《화엄경》에는 부처님의 제자들이 등장하지 않지만, 《법화경》에는 제자들이 많이 나온다. 화엄의 진리가 아함, 방등, 반야를 거쳐 법화 열반에 이르러 회통되는 것이 팔만대장경의 전체 내용인 것이다. 

이것을 요약한 것이 천태종의 게송인 “화엄최초삼칠일(華嚴最初三七日), 아함십이방등팔(阿含十二方等八), 이십이년담반야(二十二年談般若), 법화열반공팔년(法華涅槃共八年)”이다.

이상 다섯 시기의 설법 분류는 《법화경》에 나오는 ‘궁자의 비유’와 일치한다. 장자인 아버지는 집 나간 거지 아들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도망치려 하자, 달래고 달래서 마침내 전 재산을 물려주게 된다. 

여기서 아들을 달래는 장면은 ‘유위법’에 해당하고, 결정적으로 재산을 물려주는 장면은 ‘무위법’에 해당한다. 같은 부처님 말씀이지만, 불경 속에도 이런 점차적인 방편설법이 인연에 맞게 펼쳐졌다고 본 것이다. 

대한불교조계종은 대승불교를 선택했고, 그 중에서도 무위법을 통달할 수 있도록 합당한 교과를 짜서 시행하고 있다.

유위법에서 무위법으로 전환되는 결정적인 가르침은 반야부에 속하는 《금강경》이다. 이 경은 부처님께서 세수 60세가 넘어 원숙기에 접어들었을 때, 스라바스티(사위성) 교외의 기원정사에서 설하신 것이다. 

이 반야부 경전이 선과 교를 통섭한 대한불교조계종의 소의경전으로 정해진 이유는 바로 유위법에서 무위법으로의 전환이 분명하게 적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금강경》의 첫머리에서 아라한과를 증득한 장로 수보리존자는 “희유하십니다. 세존이시여.” 하고 아뢴다. 이 대목을 선적으로 풀면, ‘오가해(五家解)’가 보여주는 것처럼 이 한 마디에서 진리가 다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무위법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부처님과 수보리존자가 짐짓 한바탕 연극을 펼친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그런데 ‘왜 희유하다고 했을까?’ 하는 의문을 교적으로도 풀어볼 필요가 있다. 

수보리는 유위법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지만 보살들처럼 무위법에는 통달하지 못하고 있었기에, 스스로 궁금해 하던 무위법의 깊은 진리를 알고 계시는 부처님께 “희유하십니다.” 하고 감탄하면서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마음을 헤아리신 부처님께서 “착하고 착하도다.” 하고 치하하며, 무위법의 핵심을 일러주신다. “나는 중생 모두를 무여열반에 들어 해탈하게 하느니라. 이와 같이 한량없고 수가 없고 끝이 없는 중생을 해탈시키지만, 실은 한 중생도 해탈을 얻게 하였다는 생각이 없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수보리여, 만약 보살에게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있다고 한다면, 그는 진정한 보살이라 할 수 없기 때문이니라.”

아라한을 최고의 성자로 보는 초기불교와는 달리, 대승불교는 아라한 위에 보살의 지위를 둔다. 부처님께서 《금강경》에서 말씀하신 ‘육안(肉眼), 천안(天眼), 혜안(慧眼), 법안(法眼), 불안(佛眼)’의 오안(五眼)을 기준으로 말한다면, 아라한은 혜안을 증득한 지위이고, 보살은 그 위의 법안을 증득한 지위이다. 물론 부처는 제5안인 불안을 연 지위이다.

아라한은 ‘무아’를 통달했지만 아직 유위법의 꼭지 즉 상이 남아있어서, 상을 여읜 보살의 지위에는 들지 못했다. 아라한은 비록 깨달았다고는 하지만, 아직 완벽한 경지에는 이르지 못한 것이다. 깨달았다는 상마저 여의어야 더 큰 깨달음으로 들어갈 수 있다. 이렇게 마음을 항복받아 상이 없어지도록 이끄는 가르침이 《금강경》의 골자다. 

혜안까지는 유위법의 복덕을 쌓을 수 있지만, 법안을 열어야만 공덕을 닦아 불보살의 위신력을 지닐 수 있다. 

부처님의 10대 제자에 속하는 장로 수보리존자도 아직 마음을 항복받지 못하여 그 해결책을 부처님께 묻고, 부처님께서는 또 “선재 선재”라고 하면서 흔쾌히 가납하시어 무위법의 가르침을 펼치신 것이다. 부처님의 간곡한 설법을 듣고, 그 뜻을 알아차린 수보리는 다음과 같이 아뢴다.

“제가 부처님께서 설하신 바의 뜻을 알기로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고 이름할 만한 정해진 법이 없으며, 여래께서 설하시는 정해진 법 또한 없나이다. 왜냐하면 여래께서 설하시는 법은 가히 다 취할 수도 없고 가히 다 말할 수도 없으며, 법도 아니요 법 아님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무슨 까닭인가요? 모든 현성들은 다 무위법으로 차별을 삼기 때문입니다.”

무위법은 법도 아니요 법 아님도 아닌 도리, 즉 중도를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무아의 도리를 깨닫고 혜안을 증득한 수행자가 유·무를 넘어선 중도의 법안을 열기 위해서는 상을 여의어야 한다고 설하신 것이 《금강경》의 내용이다. 

그러므로 이 경은 바로 법안과 불안 즉 불법의 안목을 여는 무위법의 비결을 설하신 내용을 담음으로써, 팔만대장경 중에서 유위법에서 무위법으로 전환되는 불법의 요체를 담은 핵심적인 경이라고 할 것이다.

즉 초기불교의 차제적인 유위법의 공부도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닌 것은 아니지만, 아직 깨달음의 상이라는 한계를 지닌 것이다. 사유나 명상 등의 점교(漸敎)로는 상을 여읠 수가 없기에, 수보리처럼 한 번 더 분발하여 보살의 지위로 올라가야 한다. 

초기불교의 이상은 아라한이지만, 대승불교의 이상은 보살이다. 보살은 깨달았다는 그 상마저 남김없이 여의고서, 중생들을 위한 보살행에 전념하는 분이다.

이처럼 혜안에서 법안을 여는 가르침을 육조혜능 스님은 ‘돈교법문’이라고 불렀다. 법안은 해오(解悟)가 아니라 반드시 증오(證悟)를 해야 하므로, 대혜종고 선사는 “깨달음으로 법칙을 삼아야 한다.(以悟爲則)”고 강조했다. 

수보리는 보살의 지위로 올라가는 수행법을 물었고, 그 해답은 상을 여의라는 것이다. 상을 여의라는 부처님의 ‘파상(破相’)의 가르침이 쭉 이어지다가, ‘제십사 이상적멸분’에 이르자 수보리는 실질적인 큰 전환을 이룬다. 

“그때 수보리가 이 경을 설하심을 듣고 깊이 그 뜻을 깨달아 눈물을 흘리고 슬피 울며 부처님께 아뢰었다. 희유하십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심히 이와 같이 깊은 경전을 설하심은 제가 예로부터 얻은 바 혜안을 열었어도 일찍이 한 번도 듣지 못하였나이다.”

수보리는 이미 아라한으로서 ‘지혜의 눈’ 즉 혜안을 갖추고 있었지만, 《금강경》의 가르침을 듣고서 비로소 법안의 큰 눈을 뜨게 되어 ‘체루비읍(涕淚悲泣)’하며 감격하는 것이다. 같은 제14분에 부처님께서 다음과 같이 이어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수보리여, 보살은 마땅히 일체의 상을 떠나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하여야 하나니, 응당 색에 머물러 마음을 내지 말고 응당 소리와 냄새와 맛과 감촉과 법에 머물러 마음을 내지 말지니, 응당 머무르는 바 없이 마음을 낼지니라.”
후에 육조혜능 스님도 이 대목의 ‘응당 머무르는 바 없이 마음을 낼지니라.(應無所住以生其心)’ 하는 말을 듣고 두 번이나 깨닫게 되는 기연을 맞이했다. 

수보리 존자도 두 번 깨달았다. 아라한과를 증득하고 혜안을 얻었을 때 깨달았고, 또 아라한과를 증득한 후에 상을 떨어트리고 법안을 열었을 때 깨달았다. 《금강경》에서 제14분 이전에는 ‘장로 수보리’라고 불리다가, 그 이후로는 ‘혜명 수보리’라고 호칭이 바뀌는 것이 이 두 번의 경험을 상징한다. 비록 아라한과를 증득할 때 깨달았지만 아직 “나도 깨달았다. 나도 열반을 증득했다.”는 상이 남아있었는데, 이 상이 깨지면서 큰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금강경》이 대한불교조계종의 종헌에 소의경전으로 확정된 까닭이 여기에 있다. 금강경과 더불어 조계종단의 소의경전으로 모셔진 또 다른 하나는 ‘전등법어’인데, 그 대표적인 책은 《육조단경》이다. 

이것은 육조스님의 어록인데, 팔만대장경 중에서 부처님 말씀을 제외하고서는 유일하게 ‘경’이라는 호칭이 붙은 것이다. 그만큼 진리를 잘 드러내고 있다는 증거다.

《육조단경》에는 수보리존자처럼 육조혜능 스님도 두 번 깨달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처음에 나무꾼으로 객점에 나무를 배달하러 갔다가 어떤 손님이 금강경을 읽고 있었는데  ‘응무소주이생기심’을 듣는 순간 ‘깨치게[開悟]’ 된다.

이때 혜안을 열었는데, 그 경지는 신수스님의 유위법에 머문 게송에 대응하여 ‘본래 한 물건도 없다[本來無一物]’라고 표현되었다. 

그리고 8개월 동안 방아를 찧은 후에 오조스님의 방에 들어가 《금강경》 설법을 듣다가, 같은 대목에서 다시 크게 깨달아 혜안을 얻었고 즉시 말하기를 ‘어찌 자성이 본래 스스로 청정함을 알았겠습니까![何期自性 本自淸淨]’ 하고 오조스님께 아뢰었던 것이다. 

수보리존자가 법안을 열고 체루비읍한 대목에서 육조스님도 크게 깨달았으니,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불교종단의 이름이 ‘조계종’이 된 것이 우연이 아니다. 

즉 대한불교조계종은 부처님에서 발원한 혈맥(血脈)을 이어받은 육조스님의 가르침을 종지로 삼는데, 그것은 바로 ‘무위법’ 즉 ‘중도법문’인 것이다. 

그러므로 조계종이 《금강경》과 《육조단경》을 소의경전을 삼은 까닭이 더욱 선명히 드러난다.

이처럼 유위법을 통해 혜안을 연 수행자도 더 높은 차원의 구경각을 위해선 무위법에 통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확한 수행법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먼저 반드시 눈 밝은 선지식을 찾아야 한다. 

우리나라에는 이런 모든 과정을 집약해서 전해 내려오는 간화선법이 잘 간직되어 있다. 명안종사에게 간화선법을 지도받아 활구참선을 통해 정신적인 벽을 타파하고, 《화엄경》을 비롯한 모든 경전을 통째로 소화하는 안목을 갖추어야 한다. 
이때는 화엄이 곧 아함이고 방등이며, 반야이고 법화 열반이다. 무위법에서 팔만대장경 전체가 회통된다. 무위법을 통해 법안을 열고 나아가 불안까지 열어 구경각을 이루는 투철한 수증관(修證觀)이 바로 선불교의 독보적인 특징이자 올바른 가치관이다.

 

 

저작권자 © e붓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