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한 마리만 그려 넣으면 남은 여백 모두가 하늘이어라.’ 이외수 작가의 <화선지>라는 시다. 여백에서 느껴지는 여유와 아름다움은 동양화에서 공통으로 느낄 수 있는 요소이다. 우리의 삶도 여백의 공간을 늘림으로써 보다 아름답게 가꾸어 갔으면 한다. 채우기에 급급한 오늘날의 세태에서 비움으로써 넉넉해지는 마음을 느낄 수 있다. 무엇을 채울지 고민하기보다 비우고 버릴 것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삶의 여유가 생기기 시작한다.

쉼의 여유와 삶의 여백

쉴 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쉬면서 느낄 수 있는 삶의 여유와 풍요로움이 있다. 가진 자의 여유라고도 볼 수 있다. 그렇다고 어떤 특정한 사람만 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내 맘에서 여유를 느끼지 못하는 것과 쉬는 것은 낭비로 여기는 사회 분위기가 문제다.

2014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 속해있는 18개국 가운데 우리나라 국민의 수면시간이 7시간 49분으로 가장 짧았다. 가장 긴 프랑스는 8시간 50분으로 1시간가량 차이가 난다. 2015년 한국 임금 근로자의 연간 근로시간은 2071시간으로 OECD 28개국 중 2번째로 긴 것으로 나타났으며, OECD 국가 평균 연간 근로시간은 1692시간이었다. 

유엔에서 발표한 ‘2018 세계행복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행복지수는 157개국 가운데 57위, OECD 34개국 가운데 32위였다. 이는 수면시간은 짧고 일하는 시간이 많다는 것이 행복지수와 무관하지 않음을 나타내는 지표라고 볼 수 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우린 어떻게 삶의 여백을 만들 수 있을까? 사회 전반의 문제를 내 힘으로 바꾸긴 어렵다. 그러나 나의 문제는 나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히 많다. 인간 중심 치료(PCT, Person-centered therapy)를 개발한 심리학자 칼로저스(Carl Rogers)는 말한다. 

“내가 나를 수용하느냐 수용하지 못하느냐의 문제입니다. 현재 자신의 상태를 파악해보고 쉬지 못해 힘들다면 그 상황과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끊임없이 활동하는 뇌

제대로 쉬기 위해 휴가를 낸다고 해서 피로가 풀린다고 보장할 수 없다. 우린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아무리 쉬어도 쉰 것 같지 않을 때가 많다는 것을. 몸은 쉬었을지 몰라도 뇌는 끊임없이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천적으로 피로에서 해방되려면 뇌가 휴식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뇌는 아무런 활동을 하지 않아도 기본적으로 쓰는 에너지가 전체의 60~80%이다. 특히, 깨어있는 시간의 30~50%를 공상이나 잡생각을 하면서 보낸다고 한다. 마치 스마트폰을 켜 놓으면 기본적으로 사용하는 에너지가 있고 지금 사용하지 않는 많은 어플이 켜져 있어 불필요한 전력을 소모하고 있는 것과 같다. 뇌와 연결된 마음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진정한 휴식을 취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몸과 마음의 탈진 상태를 ‘번아웃 증후군(Burn Out Syndrome)’이라고 말한다. 직장인들이 이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 일과 삶의 의욕을 잃고 사회에 부적응하게 되는 것이다. 2009년에 발표된 국제정신의학저널과 미국의사협회의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명상이 번아웃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밝혀졌다.

뇌과학으로 입증된 명상의 효과

미국 조지워싱턴 대학교 의과대학 마커스 레이클 교수팀은 2001년에 DMN(Default Mode Network,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를 발견했다. 이전까지는 특별한 활동을 하지 않을 때 뇌의 활성도는 감소하고 오직 휴식하고 있을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FMRI(기능적 자기 공명 영상)로 본 뇌는 쉼 없이 작동하고 있었다. 마치 자고 있을 때도 우리의 심장은 뛰고 폐로 호흡하듯이 말이다. 휴식상태에서 활동하고 있는 뇌의 연결망을 DMN이라고 명명한 것이다.

멍하게 있을 때, 머릿속에서 다양한 잡념이 일어났다 사라지는 경우에도 뇌는 작동하고 있다. 주로 기억과 의사결정에 관여하는 부위들로서 ‘나의 느낌’, ‘나의 경험’과 같은 나와 관한 내용들이 떠오른다. 우울증 환자의 경우에는 부정적인 반추를 통해 왜곡된 자기에 대한 상을 갖게 되고 미래에 대한 비관적인 관점을 갖게 된다. DMN이 과도하게 활성화된 경우 우울증은 더 심각해진다.

DMN이 적정하게 활성화됨으로 인해 무의식적인 활동들이 가능하고 ‘자아’와 ‘의식’을 형성하는 기능을 해준다. 하지만, 그때 소비하는 에너지의 양이 어마어마하게 많다는 것이 문제다. 뇌 전체가 소비하는 양의 60~80%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결국 뇌는 피로하게 된다. 뇌는 신체 무게의 2% 정도지만 20%에 해당하는 에너지를 쓰는 대식가로 알려져 있다. 뇌가 차지하는 비중이 큰 만큼 뇌의 피로는 몸 전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몸의 건강을 챙기고 뇌를 쉴 수 있게 하려면 DMN을 너무 과다하게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 이완과 명상은 이러한 뇌의 에너지 낭비를 막는데 효과적이다. 과도한 잡념은 뇌를 피로하게 하는 최대 요인 중 하나다. 그러한 잡념의 활동을 억제하도록 주관하는 것은 뇌를 쉬게 하는 것이다. 이완을 통해 긴장감을 내려놓고 자신에게 맞는 명상법을 통해 깊은 휴식상태에 들어간다면 뇌는 충분히 쉴 수 있다. DMN을 관장하는 뇌 부위에 과잉된 활동이 조절되고 에너지 소비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뇌가 쉬어야 비로소 우리의 몸과 마음도 휴식할 수 있으며, 건강한 삶이 보장된다. 

 

도연스님은

카이스트 스님으로 알려진 도연스님은 카이스트에 입학해 전자공학을 공부하다 돌연 출가의 뜻을 품고 스님이 되었다. 이후 카이스트와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등에서 에너지 명상과 참선을 지도했으며, 2015년에는 카이스트 기술경영학과를 10년만에 졸업 하고 오대산 월정사에서 원명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2016년 사미계를 수지하고, 현재 서울 강남 봉은사에서 어린이, 대학생, 청년부 지도법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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