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이 있습니까?’라고 물으면 어떤 대답이 떠오를까? ‘없습니다.’ ‘있습니다.’ ‘잘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깊은 생각에 잠길지도 모른다. 사랑이 뭘까? 단지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게 사랑일까? 미워했지만 알고 보니 사랑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단순한 것 같지만 단순하지 않다. 복잡해 보이는 이 사랑에 빠지면 오히려 우리는 단순하고 명료해지기도 한다. 분산되는 여러 가지 생각과 에너지가 한 곳으로 모이기 때문이다.

사랑 안에는 많은 여러 가지 의미를 담을 수 있다. 작은 관심도 사랑이고, 뜨겁게 타오르는 정열도 사랑이 된다. 믿을 수 없지만 믿어주고, 용서할 수 없지만 용서하는 것도 사랑이다. 명상도 사랑과 깊은 연관이 있다. 그냥 봤을 땐 의아하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명상은 주로 혼자 하는 것이고, 사랑은 주로 누군가와 함께 하는 거라고 통용되기 때문이다. 사실 명상과 사랑은 닮은 점이 많다. 명상은 나에게 주는 사랑이고, 사랑은 남을 위한 명상이기 때문이다. 명상은 있고 사랑이 없거나, 사랑만 있고 명상이 없다면 이 둘은 온전히 성립되지 않을 것이다. 이에 대해 법정 스님은 이렇게 말했다.

“사랑에 침묵이 따르지 않는다면 마침내 빈 껍데기로 소멸될 것이다. 사랑은 침묵 속에서 여물어 간다. 가까이에 있건 멀리에 있건 간에 침묵 속에 떠오르는 그 얼굴을 익혀두라.”, “사랑하는 법을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마음이 움직이는 법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사랑을 파괴하는 것은 바로 마음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은 명상하고 침묵 속에서 그의 신과 연락한다.”

명상을 하고 있는데 사랑하는 마음이 싹트지 않는다면 점검해 봐야 한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처음 배울 때의 그 마음으로. 15년 전, 명상을 처음 배웠을 때 느꼈던 신선한 감동과 환희의 마음이 지금의 일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평소에 그 소중함을 망각하고 대충 안일하게 살아갈 땐 스스로 다시 경책을 하곤 한다.

스즈키 순류 선사는 『선심초심(禪心初心)』에 초심의 중요성의 강조했다. “선(禪)에 대해 읽은 게 많더라도 매 문장마다 초심으로 읽어야 한다. ‘나는 선이 뭔지 좀 안다’라거나 ‘나는 이미 깨달음을 얻었다’라고 말하지 마라. 모든 기예의 진짜 비결은 초심자가 되는 것이다. 빈 마음은 무엇이든 착수할 준비가 돼있다. 초심자의 마음에는 여러 가능성이 열려있다.”

명상은 자신에 대한 사랑이자 깊은 소통이다. 나를 깊이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남을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다. 그런 후라야 상대방이 나를 이해할 것을 조금 기대할 수 있다. 이해하지 못해도 어쩔 수 없다. 그것마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명상은 나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알고 존중하고 받아들임으로써 자연스럽게 나와 깊은 교감을 하는 것이다. 스즈키 순류 선사는 말한다.

“소통이란 여러분이 먼저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다. 여러분은 남이 먼저 여러분을 이해하기를 바라지만, 여러분이 먼저 남을 이해하기 전에 남이 여러분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람을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람들을 통제하는 최선의 방법은 그들이 바라는 것을 하도록 내버려 두고 지켜보는 것이다. 지켜보지 않는 것은 최악의 방식이다. 통제하려고 하는 것은 두 번째로 나쁜 방식이다.”

따라서 나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 사람은 타인의 마음에 대해 보다 가깝게 접근할 수 있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기보다 상대방을 배려하면 코드를 맞춰가는 것이다. 여기서 사랑은 서로를 깊게 이해하는 데 아주 좋은 매질이 되어 윤활유 역할을 해준다.

서양의 철학자 니체는 말한다. “진실은, 우리는 삶에 길들여져서가 아니라 사랑에 길들여져서 삶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언젠가 그대들은 스스로를 넘어서 사랑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선 사랑하기를 배워라! 그러기 위해서 그대들은 사랑의 쓰디쓴 잔을 마셔야 한다. 더없는 사랑의 술잔이라고 해도 마셔라.” 삶이 고단하고 힘들지라도 내 안에 사랑이 있다면 견딜 수 있을 것이며 나중에 가서는 삶의 이유를 알게 됩니다. 내가 살고자 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어느 날 살아야 하는 대로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밖에 없습니다. 뒤늦게 후회한다 한들 이미 내 삶은 회복하기 어려운 상태가 되어있을지도 몰라요. 한시라도 더 빨리 나를 챙기며 살아가야 합니다. 내 운명을 온전히 받아들이며 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람들을 사랑할 때 내 삶을 사랑하고 주도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인생은 끊임없는 복습이라고 한다. 명상도 연습하고 사랑도 연습하며 삶을 더 풍성하게 만들어 갈 필요가 있다. 사랑은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인간 활동이기 때문이다. 미치 앨봄(Mitch Albom)은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에서 죽기 직전 스승이 자기에게 들려준 마지막 가르침에 대해 이야기한다. 오직 다른 사람과 주고받았던 사랑만이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라는 것이다. “물질적은 것은 사랑은 물론 배려, 다정함, 우정의 대용품이 될 수 없다. 돈과 권력이 다정함을 대신할 수는 없는 것이다. 다가오는 죽음만큼이나 확실히, 나는 말할 수 있다. 네가 아무리 돈과 권력을 가졌다 해도 그것들로 네가 찾고 있는 감정을 얻을 수는 없다고.”

죽음을 앞둔 랜디 포시(Randy Pausch)는 『마지막 강의』에서 “몇 달밖에 살지 못한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가? 아직도 이루고 싶은 꿈은 무엇인가? 왜 지금 그렇게 하지 않는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면 뭘 하고 싶을까? 세상의 부질없는 돈과 명예와 권력, 성공에 대한 욕망이 과연 필요할까?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지 않을까 싶다. 생애 동안 해보지 못한 사랑을 마음껏 할지도 모른다.

 

도연스님은

카이스트 스님으로 알려진 도연스님은 카이스트에 입학해 전자공학을 공부하다 돌연 출가의 뜻을 품고 스님이 되었다. 이후 카이스트와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등에서 에너지 명상과 참선을 지도했으며, 2015년에는 카이스트 기술경영학과를 10년만에 졸업 하고 오대산 월정사에서 원명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2016년 사미계를 수지하고, 현재 서울 강남 봉은사에서 어린이, 대학생, 청년부 지도법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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