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침에 눈을 뜨기 전과 밤에 잠들기 전에 온전히 나에 집중하는 시간을 갖는다. 5분~10분이 될 수도 있고 30분이 넘어갈 때도 있다. 누워서 무얼 하느냐? 지금 이 순간 나를 느껴보는 일이다. 온몸에 힘을 빼고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의식을 확장해서 지켜본다. 마치 외부에 나를 바라보는 인공위성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동시에 내부에서 일어나는 반응과 감각들을 알아차리며 있는 그대로 느끼고 받아들인다. 이렇게 이완하고 누워있다 보면 스르르 잠에 들기도 하고 의식이 명료해지고 기운이 생겨 잠에서 깨기도 한다. 몸과 마음의 상태나 컨디션이 좋지 않다면 계속 쉬어주는 것이 좋다. 충분히 쉬어주지 않으면 건강은 더욱 나빠지고 일상생활을 하는데 무리가 따르기 때문이다.

앉아있을 힘과 의지가 생기면 가만히 앉아 호흡에 집중해 본다. 자세는 바르게 해야 하지만 몸에 너무 힘을 주면 경직되고 불편해 지기 때문에 자연스럽고 편안한 자세를 만들어 주는 것이 좋다. 어떤 자세가 좋은지는 몸의 반응과 마음의 상태를 점검해 봄을 통해 알 수 있다. 온몸의 긴장감을 풀고 호흡에 집중해 보면 어느새 몸이 이완되고 마음이 편안해 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들어오는 숨, 머무는 숨, 나가는 숨을 알아차리고 있는 그대로를 느껴보면서 몸의 감각에 주의를 기울여 본다. 이렇게 있는 그대로 나를 느끼고 바라보면 평소에 느껴지지 않았던 감각들이 살아나고 존재에 대한 각성이 일어난다.

이렇듯 우리의 삶 가운데 자신에게 집중하며 알아차리는 행동은 새로운 인식의 전환을 가져다준다. 인식의 전환은 나를 새롭게 바라보고 전에 모르는 내 모습을 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 내가 추구하는 가치, 무엇을 중심에 두고 살아갈 것인지 지금 이 순간 나에게 집중하고 각성하는 힘을 통해 알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가끔 이벤트처럼 하는 이완과 명상도 좋지만 의지를 내서 꾸준히 연습해보며 습관을 만드는 것이 좋다. 처음에는 쉽지 않다. 관성의 법칙 때문이다. 현 상태를 유지하려는 힘을 관성이라고 하는데, 그동안 살아왔던 습관의 힘이 있어서 새로운 습관을 길을 들이는데 지속적으로 에너지를 투입해 줘야 한다. 아침저녁 취침 전후로 하는 작은 노력이 큰 힘이 될 수 있다. 적은 부담으로 시작하면 몸의 저항을 최소로 줄일 수 있고 실패하더라도 피해가 적기 때문에 다음번에 다시 시작하기에 좋다.

최소한의 노력으로 명상을 하다 보면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의문과 의지가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누워있거나 앉아있거나 상관없이 편안한 몸과 마음으로 지금 이 순간을, 오늘 하루를, 한 해를,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생각해보자. 평소의 가쁜 숨과 움직임에서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고, 그럴 겨를이 없다. 하지만, 이렇게 자기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하는 순간 우리는 경이로운 발견을 하게 된다.

중요한 건 지나온 삶보다 앞으로의 삶이다. 과거의 과오가 있으면 반성하고 그 허물을 고쳐야 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무엇이 잘 됐고 잘못됐다는 것을 보는 눈이다. 그 눈을 지금 현재 뜰 수 있다. 그래서 ‘지금’과 ‘앞으로’가 중요하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을 살 뿐이다. 과거의 과오를 뉘우치고 바꾸어가는 것도 지금이고, 미래를 계획하고 만들어가는 것도 지금이다. 또한, 밖이 아니고 안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밖이지만 그것을 경험하고 축적하는 곳은 바로 여기다. 그래서 ‘지금 바로 여기’(Here & Now)에 집중해야하는 것이다.

삶의 기준을 외부에 두고 너무 신경 쓰다 보면 경직된다. 초기에는 학습을 하면서 책을 통해 성현의 말씀을 보고 다른 사람 얘기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그 기준은 자기 안에서 찾아야 한다. 법구경에 “진리를 들은 적이 없다 해도 자기 몸을 통해 자연의 법칙을 본다면, 그가 진정 진리의 삶을 사는 자이며 진리를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자기로부터 찾은 진리가 나에게 딱 들어맞는 기준이 된다. 여기서 내가 깨닫는 진리는 다름 아닌 ‘내가 이 세상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아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주인공으로 사는 삶, 나답게 사는 삶이다. 밖에서 사람들이 해야 한다는 것에 함몰되어 살다 보면 어느 날 내 인생은 사라진다. 무욕(無慾)과 무아(無我)의 마인드로 살아가야 하지만, 내 삶의 주체권을 남에게 주어서는 안 된다. 내가 생각하기에 올바르고 맞는다고 판단되는 것이 있다면 그 마음, 그 생각이 아무리 작더라도 그것을 존중해주고 힘을 실어줘야 한다.

그럴 수 있는 힘이 부족하다고 느껴진다면 명상을 통해 힘을 기르면 된다. 특히, 고요히 명상할 때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그 질문에 대한 답이 하나둘씩 떠오른다. 그 모두가 답일 수도 있다. 그렇게 자주 반복되는 그리고 명료한 생각과 에너지가 있다면 그것을 마음으로 붙들고 오랜 시간 머물러 본다. 닭이 알을 품듯, 고양이가 쥐를 겨냥하여 웅크리듯 말이다. 그렇다고 그 생각에 계속 집착해서는 안 된다. 붙들고 있는 그 마음이 사라질 땐, 사라짐을 알아차리고 지켜봐 주면 된다. 또 언젠가 내가 필요로 할 때 나타날 테니 말이다.

의식이 깊게 침잠되면 그것의 원천에 닿게 된다. 이 생각은 분별과 망상을 떠나고 집착을 떠난 그 무엇이다. 여러 가지 많은 생각들이 시작된 곳이다. 존재의 바탕이며 생명의 원천이다. 그래서 단지 생각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에너지와 힘이 있다. 우리는 그곳으로부터 지속적으로 에너지를 공급받고 있고 관심 갖고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증폭된 더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느껴지는 대로 보이는 대로 있는 그대로를 알아차려보자. 그렇게 나에게로 집중해 들어가 보는 것이다. 몸의 감각과 호흡 그리고 그것의 바탕으로서의 에너지 속으로 깊게 더 깊게 들어가 본다. 생각이 끊긴 자리 마음의 분별이 사라진 자리에 닿게 되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도연스님은

카이스트 스님으로 알려진 도연스님은 카이스트에 입학해 전자공학을 공부하다 돌연 출가의 뜻을 품고 스님이 되었다. 이후 카이스트와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등에서 에너지 명상과 참선을 지도했으며, 2015년에는 카이스트 기술경영학과를 10년만에 졸업 하고 오대산 월정사에서 원명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2016년 사미계를 수지하고, 현재 서울 강남 봉은사에서 어린이, 대학생, 청년부 지도법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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