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따금 오고가는 관광객들을 제외하고는 전각에서 흘러나오는 기도 소리만이 차분히 도량을 메운다. 푸른 녹음이 우거진 금정산의 너른 품에 안겨있으니 세상천지 나 아닌 것이 없고 나인 것 또한 없다는 부처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또 다른 나의 모습이기에 어떠한 갈등도 일어나지 않고 고요하다. 나를 둘러싼 그 어떠한 것도 내가 아니기에 그 역시 고요할 뿐이다. 이 고요함 속에서 그간 어지러웠던 마음을 한 곳에 모으기 위한 발걸음이 모여든다. 나를 옥죄는 욕심과 분노와 어리석음을 내려놓는 시간, 범어사 템플스테이다.

 

참선수행의 도량에 들어서다

‘선찰대본산(禪刹大本山)’. 마음의 근원을 궁구하는 데 가장 중심이 되는 수행도량을 말한다. 참선을 통해서 마음속에 일어나는 갖가지 잡념과 망상을 쉬게 하고, 참다운 불성을 깨닫게 하는 의미를 지닌다. 옛 선승들이 참선수행을 하던 범어사의 종신선원은 오늘날 ‘휴휴정사(休休精舍)’로 불리며 지난 2004년부터 템플스테이의 장을 활짝 열어 놓고 있다. 옛 수행자들의 굳은 서원이 깃들어있는 이곳에는 얽히고설킨 마음의 끈을 바로 풀어내고자 하는 사람들이 수시로 모인다. 한국불교의 으뜸가는 수행법인 참선수행의 근본도량에 걸맞게 범어사의 템플스테이 또한 참선이 중심이 된다. 자기의 본래 면목인 ‘참나’를 들여다보기 위함이다. 참나를 깨닫고자 하는 굳은 의지로 모여든 그들의 짧은 여정을 함께했다.

 

불가의 예禮를 지키다

대웅전을 지나 담쟁이 넝쿨을 따라 걸으면 저마다 사연을 지닌 마음 한자리 뉘일 곳, 휴휴정사가 보인다. 전각에 들어서면 모두 짐을 내려놓고 똑같은 색의 법복(수련복)을 받아든다. 법복을 입는다는 것은 세속의 욕망을 비우고 올곧은 수행을 이어나가겠다는 의지를 말해준다. 때문에 스님들의 삶을 직접 체험하면서 자아 성찰을 하기 위한 템플스테이는 바로 이 법복을 입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사찰은 스님과 불자들의 수행 공간이기 때문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몸과 마음가짐을 단정히 해야 한다. 그래서 복장에서부터 불가의 예를 지키는 것이다.

사찰 예절을 배우는 참가자들.

환복하고 나면 부처님 전에 인사를 드리는 입재식으로 프로그램이 시작된다. 부처님께 인사를 드리기에 앞서 사찰에서 지켜야 할 기본 예절교육을 스님께서 알려주신다. 도량을 지나다닐 때의 단정한 자세인 차수, 스님과 불자들을 만날 때 하는 인사법인 합장반배 그리고 삼보에 대한 예경을 표하는 절을 올리는 법 등이다. 절에서 인사를 할 때 두 손을 모으는 것은 흐트러진 마음을 한 곳에 모으는 의미이기도 하며, 나를 낮추어 상대방을 존중하는 하심(下心)의 자세이기도 하다. 이 하심의 자세가 바로 마음공부의 첫 시작이자 수행의 첫 단계이다.

 

나를 내려놓는 명상

범어사 계곡 바위에서 명상하는 모습.

입재식이 끝나고 나면 참가자들은 동그랗게 둘러앉는다. 그리고는 지금 이 자리에 앉아있기 까지 마음을 결심하게 된 계기를 털어놓는다. 아이를 둔 부모들은 좀 더 깊은 유대감을 형성하고 싶고, 산사에서 함께한 추억을 아이의 가슴속에 새겨주고 싶다고 말한다. 젊은이들은 단 하루라도 휴대폰을 내려놓고 세상의 이야기가 아닌 내 안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싶다고 말한다. 성별도 나이도 직업도 모두 다르지만 참가자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을 내려놓는 것. 참가자들의 이야기를 모두 듣고 난 후 연수국장 스님께서 한마디 하신다. “산사에서는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 외에 중요할 것이 없다.” 1박 2일간의 불교문화를 경험하면서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치유되는 기분을 꼭 느끼길 바란다고 덧붙이시는 스님의 말씀에 온전히 나를 내려놓는다.

스님의 인솔 하에 범어사 계곡 바위로 발걸음을 옮긴다. 온통 푸른 숲속에서 저 홀로 흐르는 물소리만이 청명하다. 계곡 바위에서의 명상을 통해 도시의 소음에 가려 혹은 그저 살아가기 바빠 돌아보지 못한 내 마음이 외치는 소리를 듣는다. 마음을 비우고 생각을 비우며, 비로소 비움의 지혜에 다가선 기분을 느낀다.

 

진리는 둘이 아닌 하나

명상을 통해 머릿속과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던 잡음을 비워낸 후, 참가자들 모두가 절의 입구로 내려간다. 사찰에 들어서는 산문 가운데 첫 번째 문, 모든 진리는 하나로 통한다는 일주문 앞이다. 기둥이 한 줄로 되어 있어 일주(一柱)라는 이름을 붙이는데, 이는 일심(一心)을 상징한다. 부처님을 뵙기 전 세속의 번뇌를 말끔히 털어내고 일심으로 진리의 세계로 향하라는 가르침이 담겨있다. 모든 진리는 하나라는 말을 새기며 합장반배한 후 일주문에 들어선다.

일주문을 통과하면 동서남북을 수호하는 사천왕을 모시고 있는 천왕문이 있다. 범어사를 출입하는 모든 이들이 이 문을 통과해야만 비로소 부처님 전에 나아가 참배할 수 있다. 이 인연 있는 길을 지나면 세 번째 산문인 불이문에 다다른다. 범어사로 가는 마지막 문인 불이문을 지나야 인간 세계에서 부처님이 계신 세계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진리는 둘이 아닌 하나’라고 일깨워주는 불이문까지 통과하고 나니, 부처님을 뵙는 길 어느 한 곳도 허투루 만들어 진 곳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공양도 마음을 다스리는 수행

불가에서는 음식을 만들고 먹는 일도 마음을 다스리는 수행의 하나라고 여긴다. 채우기 위해 먹는 것이 아니라 비우기 위해 먹는 것이다. 따라서 ‘내 덕행으로는 받기가 부끄럽네’라며 스스로 반성하고 밥이 아닌 약으로 받아 깨달음을 이루는 것이다. 참가자들은 수행자들의 식사 예법인 발우공양을 통해 사찰음식의 정신을 배운다. 템플스테이에서 만나는 발우공양 체험은 이 음식이 나에게 오기까지 거친 수많은 인력과 대자연에게 감사한 마음을 품게 한다. 쌀 한 톨 남기지 않고 빈 그릇을 스스로 닦음으로써 배보다 정신과 마음을 채운다.

 

스스로에게 맹세하다

108배를 하며 염주를 만드는 모습.

종루에서 울려 퍼진 법고 소리와 함께 저녁 예불을 마친 참가자들의 모습이 숙연하다. 체력의 한계에 부딪히게 되는 108배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좌복 위에는 108개의 염주가 놓여있다. “중생을 괴롭히는 번뇌가 108가지나 되지만 번뇌는 본래부터 마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들어와 청정한 마음을 더럽히는 것입니다. 이 번뇌가 본래 실체가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내 안의 고통도 연기처럼 사라지게 됩니다.” 스님의 말씀에 합장하고 선 채 마음을 가다듬는다. 그리고 죽비소리에 맞추어 일제히 절을 시작한다. 절을 한 번 하고 염주알을 하나 꿰어나간다. 어느새 숨은 가빠지고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다리가 후들거리기까지 하지만 포기하는 이는 없다. 모두가 자신들의 한계를 넘어서는 중이기 때문이다. 108배를 통해 스스로를 향한 굳은 맹세를 하며 산사에서의 밤이 저문다.

 

텅 빈 마음이 곧 참마음이다

이튿날 새벽, 명상을 통해 하루를 연다. 스님께서는 “고요히 눈을 감고 편안한 호흡을 반복하다 보면 내 안의 허공을 만나게 된다.”고 말씀하신다. 내 안의 허공을 만나는 길은 산내 암자를 순례하면서도 계속 이어진다. 호젓한 산길을 따라 스님들이 철야정진을 많이 하던 곳, 계명암에 올랐다. 금정산을 외호하고 있는 계명암이 빚어낸 것은 절경뿐만이 아니다. 처처가 법향의 숲을 이루고 있으니 텅 빈 마음이 곧 참마음임을 깨닫는다.

계명암에서 참선명상을 하는 모습.

새벽녘부터 이어진 참선을 모두 마치고 스님과의 차담이 마련되었다. 불교에 대해서 저마다 궁금했던 것을 여쭈어본다. 그러다 어린 딸을 키우고 있는 어머니가 스님께 여쭙는다. “엄마이기 때문에 아이가 올바르게 컸으면 좋겠습니다. 이러한 욕심이 아이와 갈등을 일으킬 때가 많은데 현명한 방법은 무엇인가요?”

스님은 사찰에 들어서기 위해 지나쳤던 세 개의 산문을 떠올려보라고 하신다. 마지막으로 통과한 불이문은 말 그대로 진리는 둘이 아닌 하나라는 뜻이다. 이는 부처와 중생이 다르지 않듯이 너와 나, 생과 사 역시 그 근원은 모두 하나임을 자각해야 한다고 말하신다. 불이(不二)의 뜻을 온전히 이해하게 되면 그동안 둘로 나누었던 내 앞의 경계를 모두 허무를 수 있다고 말이다.

 

다시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선 역시나 세 개의 산문을 지나야 한다. 절에 들어오기 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속세와 산사의 경계는 넘나들지언정 마음속의 경계는 의심의 여지 없이 허물어졌다는 것. 어느새 내 마음에는 비움의 지혜로 향하는 길이 한 갈래 생겨났다.

저작권자 © e붓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