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스물 두살, 취업 준비, 대학공부, 연애(?), 다사다난한 청춘의 변곡점에서 한 학생이 대만으로 떠났다. 목적은 여행도 아니요, 관광도 아니다. 그것은 지리적인 목적지가 아니라, 거리를 알 수 없는 내면의 목적지를 향한 여정이었다. 대만 불광사에서 한 달간의 귀한 여정을 마치고 온 장원석(부산대학교 공과대학 건설융합학부 토목공학과) 학생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원래 ‘2018년 대만 불광산사 1개월 템플스테이 체험기’는 8회를 게재할 예정이었다. 귀국하고 같이 템플스테이한 친구들과 메시지를 주고받게 되었다. 내가 친구들에게 아버지께서 불교에 심취하여 템플스테이 오게 되었다고 이야기하였기 때문에 친구들이 질문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내용 일부를 소개하는 것도 의미가 있는 것 같아서 귀국 후일담을 쓰기로 했다.

 

대만 불광산사 템플스테이 대만에서 귀국

드디어 8월 12일 귀국하는 날이 되었다. 태풍 14호 야기 영향으로 비행기가 1시간 이상 지연되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비행기가 무사히 김해국제공항에 도착하였다는 것이다. 염려하여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아버지와의 대화

귀국해 아버지와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알려진 프랑스 출신 분자생물학 박사 라마승 마티유 리카르에 대한 필리핀 친구의 이야기, 같이 템플스테이한 친구들의 이야기 등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 이야기를 들은 아버지께서 '승려와 철학자, 현대물리학이 발견한 창조주, 검색의 시대 사유의 회복, 삶은 환타지다, 길을 걷는자 너는 누구냐, 생각 버리기 연습' 등 관련된 책들을 추천해 주었다.

그 가운데 '승려와 철학자'의 이야기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철학자인 아버지 장 프랑수아 르벨과 승려인 아들 마티유 리카르이 서양과 동양을 대표해 서로 비판하고 토론하는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이 격의 없이 허심탄회하게 비판하고 토론하는 문화를 우리 사회에 대입시켜 보면 어떨까. 권위주의를 벗어던진 평등한 논쟁이야말로 사회를 더욱 풍요롭게 해줄 수 있을 것이다.

 

템플스테이에서 풀지 못한 기본 의문 윤회

템플스테이에 참가한 친구들이 여전히 품고 있는 의문 중 하나가 윤회에 대한 증명이었다. 우리나라도 인구가 줄고 유럽도 인구가 줄어들고 있는데, 이런 현상을 어떻게 논리적으로 증명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이다.

윤회의 시각으로 보면 같은 나라에서 탄생하는 것도 아니고 같은 종으로 탄생하는 것이 아니다. 즉, 인구수로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생명의 수를 측정해 증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생명이 다한 뒤 다음 생을 맞을 때까지의 중음신 상태를 고려하면 더욱더 그렇다. 그럼 이를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일단 진리란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하는 가부터 정의하면서 시작하기로 하자.

진리란 합리적이어야 하며, 원인과 결과가 엄연해야 한다는 사실이 전제돼야할 것이다. 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결과가 따르며, 그 결과가 새로운 원인이 되어 새로운 결과를 생성해야한다. 한 생명의 탄생에도 반드시 원인이 있어야한다.

우주에는 다양한 생명체가 존재하며, 같은 종에서도 다양성이 존재한다. 금수저로 태어난 사람, 흙수저로 태어난 사람, 건강한 사람, 허약한 사람, 머리가 좋은 사람, 머리가 나쁜 사람, 키 큰 사람, 키 작은 사람, 뚱뚱한 사람, 마른 사람, 잘난 사람, 못난 사람, 강대국 국민, 약소국 국민 등 엄청나게 다양하다. 이 다양성의 원인은 무엇일까?

불가지론자들의 주장과 같이 신의 뜻이라고 하면 해결되는 것일까? 신의 뜻인 예정조화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전도할 때 “기적을 믿느냐?”고 묻는다. 즉 신앙생활을 할 때 합리성과 이성을 버리고 들어오라는 말이다. 비판적 사유를 버리고 완전히 절대자의 노예가 되라는 뜻이다.

우리들은 그럴 수는 없다.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진리란 원인과 결과가 엄연하여야 한다는 사실을 전제하여 사색하여보자. 우리가 알 수 없지만, 우주의 다양한 생명체의 탄생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일까?

알 수 없는 그 원인을 전생이라고 정의해 보자. 알 수 없지만 전생이란 원인은 천차만별할 것이다. 그 천차만별한 전생이란 원인에 따라 다양한 현생의 생명체가 탄생했다고 한다면 아주 합리적인 원인과 결과의 관계가 성립될 것이다.

그리고 현생의 다양한 삶이 원인이 되어 내생의 다양한 삶이 표출된다면 현생과 내생이라는 원인과 결과의 관계도 합리적으로 설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전생, 현생, 내생이 원인과 결과로 서로 얽매여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것은 태어나서 소멸되어지는 선형적인 관계가 아니라 탄생과 소멸이 끝없이 이어지는 하나의 원으로 형성되어질 것이다. 이것이 윤회이고, 인과이며 인연법이 되는 것이다. 논리적이고 객관적이며 합리적이다.

 

템플스테이에서 풀지 못한 질문 ‘불교의 전도’

러시아 모스코바 대학 수학과 조교수가 미국 버클리 대학 교수에게 질문한 불교의 전도에 관해 대답을 듣지 못했다고 나에게 WeChat (Whatsapp)으로 연락을 했다. 나는 이 문제에 관하여 아버지와 논의 후 답변해 주었다. 아버지께서 종교의 전도는 상대적인 것으로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타 종교와 비교해 보아야 한다며 기독교의 전도를 곁들어 설명하면서 몇 가지 책들을 추천해 주었다.

아버지께서 내게 종교의 전도는 상대적인 것이라며, 불교와 기독교의 전도를 함께 설명해 주었다.

역사적으로 기독교의 전도는 제국주의 식민지 지배의 첨병(尖兵) 역할을 하며 국가와 권력 주도의 전파였다. 그러나 불교의 전도는 진리를 추구하는 개인에 의하여 전파되어 왔다. 지금도 기독교는 조직적이며 강제적인 전도를 한다면, 불교는 개개인의 성찰에 의하여 전도되어 진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고 진실을 알려고 하는 욕구가 있기 때문에 문명이 발달할수록 불교의 전도는 자연스럽게 진행될 것이다. 답장을 보내니 러시아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Hello, dear Wansoek!

Indeed, it's my question.

No, didn't get answer from the professor.

Your answers looks reasonable.

But are these two answers can be applied to every historical period?

(바로 내 질문이었다. 미국 교수로부터 해답을 받지 못하였다. 너의 대답은 합리적인 것 같다. 너의 대답이 모든 역사를 통하여 적용되는 것인가?)

나는 내가 역사를 전공한 것도 아니고 해박한 역사지식을 가진 것도 아니기 때문에 모든 역사에 적용되는 것인지는 몰라도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역사적으로 그럴 것이라고 했다.

 

템플스테이에서 풀지 못한 질문 ‘mindfulness’

하루는 필리핀 친구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다. 그 질문은 어느 것 하나 가볍게 생각할 수 없는 근원적인 물음 같았다. 참으로 세계 각국에 대학생들은 인생에 깊은 성찰과 고민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버지는 내게 ‘실용 한-영 불교용어사전 (http://dic.tvbuddha.org/)’ 인터넷 사이트를 소개해 주었다. 설명하기 어려운 불교 용어를 이 사이트에서 찾아서 첨부해 설명했다. 일일이 설명하는 것은 지면상 어려울 것 같아서 질문만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

 

What is mindfulness for you? (당신에게 마음챙김이란 무엇인가?)

Do you practice mindfulness? How? (마음챙김 수행을 합니까? 어떻게 합니까?)

As a person living in this contemporary era (modern world) do you find mindfulness more essential? Why or Why not?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당신은 마음챙김이 더욱 필수적으로 생각합니까?)

In your perspective how can a persons’ mindfulness contribute in this modern world? How do you perceive a world with and without mindfulness? (당신의 관점에서 사람들의 마음챙김이 현대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습니까? 마음챙김이 있든 없든 세상을 어떻게 인식합니까?)

How can you apply mindfulness in your daily life especially you are living in this contemporary era (modern world)? (특히 이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당신의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마음챙김을 적용할 수 있습니까?)

What do you have in your mind about buddhism/ humanistic buddhism? (불교 / 인문적 불교에 대해 무엇을 생각하고 계십니까?)

What are bad and good thoughts to you? (나쁜 생각과 좋은 생각은 무엇입니까?)

What are the advantages and disadvantages brought to you by Buddhist practices?(불교 관습(실행)에 의해 얻게 되는 장단점은 무엇입니까?)

 

아버지의 마지막 말씀, 병 속의 새(花甁之鳥)

‘병 속에 새 한 마리를 넣고 키웠다. 그 새는 자라서 어느 새 그 병 안에 꽉 차게 되었다. 그 병의 목이 너무 좁아 새는 밖으로 나올 수가 없다. 만약 밖으로 나오지 못하면 그 새는 곧 죽을 것이다. 그 병은 매우 귀중한 병이라서 그 병을 깨어서는 안 된다. 새를 살리자면 병을 깨야하고, 병을 깨지 않으려면 새가 죽는다. 병을 깨지 않고 새를 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출처 : 구글 이미지

마찬가지로 너의 자유로운 상상력과 영혼을 수능이라는 작은 굴레 속에 가두어두려고 하였구나. 이제 수능이란 작은 사슬에서 벗어나 세계를 무대로 마음껏 자유의 날개를 펴도록 하라. 고뇌가 깊으면 그 상처도 깊을 것이지만, 꿈이 크면 깨어진 조각도 크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믿고자 한다. 김수현 작가의 에세이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에서의 한 구절 '1년을 낭비한 걸까? 괜찮아. 1년 더 살면 돼'라는 구절을 인용하면서 삼수한 나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며 마무리하고자 한다. “2년을 낭비한 걸까? 괜찮아. 2년 더 살면 돼”

끝으로 미흡한 체험기를 게재할 수 있게해 준 e붓다와 최은영 기자님을 비롯한 관계자, 애독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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