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바뀌었다. 아침저녁으로 제법 쌀쌀한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한다. 연휴를 보내고 일상으로 돌아온 사람들은 밀려 있던 업무를 처리하느라 바쁘다. 10월의 첫 날이자 한 주의 시작인 월요일, 모두가 분주하게 하루를 시작한다.

오전 업무를 정리하고 문득 바라본 하늘은 너무도 쾌청하다. 맑은 날씨가 괜스레 사람의 마음을 들뜨게 한다. 사실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도 더욱 완연한 가을을 느낄 수 있다. 생각으로만 끝내기엔 이 계절은 너무도 짧다. 그 길로 부산을 떠나 양산으로 향했다.

양산에는 유명한 8경(景)이 있다. 내로라하는 양산8경중에서도 제일 손꼽히는 곳은 제1경 통도사가 아닐까 싶다. 올해 6월 영축총림 통도사(주지 영배스님)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또한 이번 10월은 통도사의 산문이 열린 1373주년 개산대재를 맞이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통도사 온 도량이 축제 분위기로 야단법석이다.

산문에서 오른편으로 조금만 걸어오면 산책하기 좋은 솔밭길이 나온다.

통도사 산문을 조금만 지나면 무풍교에서 경내 청류교까지 이어지는 무풍한송로 솔밭길이 있다. 솔밭길엔 수백 년 된 적송(赤松)이 제각각 뻗어 자라나 있다. 그 모습이 자연스레 어우러져 더욱 매력 있다. 이곳에 볼거리는 소나무뿐만이 아니다.

사찰에서는 특별한 법회나 의식을 행할 때 대형불화인 ‘괘불(掛佛)’을 만들어 걸어둔다. 괘불의 크기는 폭 6m, 높이 15m로 매우 크다. 보통 큰 행사가 있을 때나 볼 수 있어 자주 접하기 어려운 괘불이 솔밭길에 떡하니 자리해 있다. 사찰을 찾은 방문객들을 위해 실사화 한 괘불을 오는 28일까지 전시한다. 푸르른 소나무 사이 오방색 괘불탱화의 조화, 자연스레 눈길이 머문다.

부도전을 지나 성보박물관 앞 보행로에 재치 있는 조형물이 보인다. ‘양산의 거리’란 주제로 장식된 조형물은 국보 제290호인 통도사 대웅전 천장 반자의 범자육연화문양을 전통 단청기법으로 양산에 그려놓은 것이다. 10명이서 4개월간 1100여 개를 제작했다고 한다. 평소 가까이 보기 어려운 대웅전 반자를 자세히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지난 6월 영축총림 통도사(주지 영배스님)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100만 개의 비즈로 수 놓아진 관세음보살

일주문을 지나 천왕문에 도착했다. 천왕문 오른편에는 화려한 비즈 장식의 관세음보살이 방문객들을 맞이한다. 관세음보살은 모든 중생들의 고통을 거두고 즐거움을 안겨주는 존재다. 그래선지 자비로운 그 미소에 마음이 편안해진다. 비즈 관세음보살은 통도사 대중과 전문가 등 2000여 명이 동원돼 100일에 걸쳐 불사가 이뤄졌다. 소요된 비즈만 100만 개에 바늘 500개, 낚싯줄 200m라고 한다. 유난히도 더웠던 올 여름, 많은 이들의 구슬땀으로 더욱 찬란하게 빛이 난다.

조각가 이영섭 작가의 소조상이 경내 곳곳에 설치돼 있다.
온 도량에 가을 꽃 국화가 예쁘게 피었다.

하로전과 중로전에는 동심을 자극하는 어린왕자 소조상이 전시돼 있고, 도량에 수놓아진 국화가 가을 향기와 분위기를 고취시킨다. 조각가 이영섭 작가의 어린왕자 소조상은 어린왕자를 통해 오랫동안 잊고 살아온 우리 안에 간직된 순수한 마음을 떠올리게 한다.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세상이 달라질 수 있다. 우리는 살면서 그 이치를 잊고 살아간다.

통도사 대중 스님들이 직접 찍은 사진들이 전시돼 있다.

 

감로당 앞막이에는 정감 있는 사진들이 즐비해 있다. 바로 통도사 대중 스님들이 직접 찍은 사진이다. 스님들의 산중생활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는 모습들이 담겨 있다. 가장 아름다운 사진은 피사체에 대한 애정이 담겨 있을 때다. 그래서인지 스님들이 찍은 사진에는 따뜻함이 묻어난다.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대웅전이 보인다. 그곳엔 통도사 창건의 기본정신인 금강계단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 금강계단에는 진신사리가 봉안돼 있다. 진신사리(부처님 사리)와 금란가사(금실로 수놓은 가사)를 모셔둔 통도사를 불보종찰이라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통도사에 오면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천년도량의 역사만큼이나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길지 않은 가을, 어쩌면 그래서 더 특별한 게 아닐까. 이 계절이 끝나기 전 가족, 연인, 친구와 함께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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