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앞바다에는 불법이 파도친다

'동양의 나폴리'로 불리는 통영 앞바다

바다가 아름다운 곳을 꼽으라면 나는 망설임 없이 남해바다, 그중에서도 통영 앞바다를 꼽는다. 무심히 솟아난 섬 사이를 들여다보면, 어느 곳은 거센 물살이 굽이쳐 흐르고, 또 어느 섬 사이에는 호수보다 잔잔한 결을 이룬다. 통영은 이순신 장군이 왜구를 격파한 곳이기도 하지만 원효 대사, 사명 대사 등 여러 고승들이 두루 거쳤던 구법의 길목이기도 하다.

그런 이유에서 통영 앞바다에는 유독 불교적 이름을 가진 섬들이 많다. 설사 한자가 다르더라도 가만히 뜻을 반조해 보면 통영바다가 바로 향수해香水海가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지게 한다.

이를테면 연꽃을 표현하는 연화도, 연대도라든지, 대놓고 부처님의 이름을 가져다 쓴 미륵도라든지, 욕지도관세존도欲知島觀世尊島라는 뜻으로 ‘알고자 하면 세존도(통영에서는 세존도도 보인다)를 바라보라’는 구전이 전승되고 있는 욕지도도 마찬가지다.

사량도는 원래 ‘뱀 사’ 자에 ‘대들보 량’ 자를 쓴다. 섬의 형상이 뱀이 대들보를 감고 있는 것 같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실제로 사량도에는 뱀이 많단다. 그러나 이 역시 들여다보면 속뜻이 다르다. 사량도에는 윗섬과 아랫섬이 있는데 윗섬에는 작은 산이 둘 있다. 하나는 지리산이요, 하나는 불모산이다. 불교에 대해 조금만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금세 지리산은 대지문수사리보살이요, 불모산은 어머니 같은 부처님을 떠올릴 것이다. 이를 통해 섬의 지명이 범상치 않음을 짐작할 수 있다.

 

사량도에서 보타낙가산을 보다

관음낙가사 입구

그리고 옥녀봉을 병품 삼아 바다를 마당 삼아 자리 잡은 도량이 있다. 관음낙가사(주지 효원 스님)다. 관음낙가사의 역사는 길지 않다. 위치만 놓고 보자면 최고의 관음기도도량으로 손색이 없지만, 섬이라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대도량으로 일구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꽤 긴 시간 옹졸한 모습의 법당 하나만 덩그러니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범어사와 인연이 닿아, 당시 주지였던 정여 스님이 혜안으로 부지를 매입했고 남섬부주 보타낙가산에 도량을 일군다는 원력으로 불사를 시작했다. 지금의 주지 효원 스님이 은사 정여 스님의 권유로 사량도에 온 것도 그즈음이었다. 2010년 여름부터 긴 불사가 시작되었다.

 

고된 가람 불사, 그것은 수행이었다

3천 평 부지 위 새 관음전을 짓기 위해 스님은 매일 가람 정비 불사에 매진했다.

걸망 하나 짊어지고 사량도에 입도할 때 마주한 풍경을 잊을 수 없다. “여여선원에서 천일 기도를 마치고 그 인연으로 사량도에 들어오게 됐습니다. 관음 원력이 있었기에 멀리서 사량도를 보고서 ‘아, 이곳에서 관음기도도량을 일굴 수 있겠다.’라는 자신감이 생겼지요.” 물론 녹록치 않은 일이었다. 8천 평이나 되는 터를 관리하는 일 자체가 쉽지 않았다. 산지를 제외하고도 3천 평이나 됐다. 효원 스님은 관음전을 해체하여 옥녀봉을 모시는 산신각으로 이전하고, 새 관음전을 지었다. 기초공사에서부터 기왓장을 얹는 일까지 모두 출가 전 27년간 목수일을 했던 경험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섬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중장비를 부르는 일도 보통일이 아니었다. 중고 포클레인을 구입해서 웬만한 작업은 혼자서 척척 해냈다. 만능 일꾼이 되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새벽 3시에 일어나서 매일 가람 정비 불사에 매진했다. 수행이 곧 울력이었다. 불사에 매진한 결과 점점사찰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고 비로소 관음전 낙성을 마쳤다. 이어 탱화까지 모시며 옥녀봉 아래 남해바다를 품은 곳에 관음전이 자리 잡았다.

 

사량 분별 내려놓은 자리, 그곳이 관음의 자리

사량도 앞바다를 바라보고 계신 관세음보살님

사량도는 윗섬과 아랫섬, 두 섬으로 나누어져 있다. 상상력을 조금 보태자면, 이 사량분별심을 내려놓는 곳이 바로 사량도가 아닐까 하는 추측이다. 나뉘어 있지만, 그들의 뿌리는 바다요, 그저 물 위로 드러난 모습이 나누어져 있을 뿐이다. 제법 그럴 듯한 상상 아닌가. 남섬부주에 사량분별심이 끊어진 자리, 그곳에 해수관음상을 모시는 일은 효원 스님의 큰 구상이다.

관음낙가사 주지 효원 스님

“가람 정비가 마무리되고 나면 아주 큰 해수관음보살상을 모실 계획입니다. 섬 안에서의 포교는 어려운 일이지만, 좋은 기도처로서 전국 각지에서 불자님들이 기도할 수 있는 도량이 된다면 더욱 값진 일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섬에서 불사를 하려면 육지에서보다 세 배 이상의 비용이 든다고 한다. 그러니 섬 안에서 무를 유로 만들어 내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관음낙가사가 그렇다. 이날 취재차 절을 방문하지 않았더라면 스님은 아침부터 예초기를 돌릴 계획이었다고 한다. 도량에 난 풀을 제거하는 데만 며칠이 꼬박 걸리는 일이라고, 오직 불자들을 위한 훌륭한 기도처를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매일 울력으로써 수행을 삼는 스님은 그렇게 차근차근 초석을 다져 나가고 있다.

어쩌면 이미 해수관음은 이곳에 우뚝 서 계신지도 모르겠다. 근사하고 화려한 겉모습을 내려놓고 본다면, 스님이 직접 도량 곳곳을 보듬고, 다듬고, 가꿔 놓은 모든 공간에 해수관음이 모습을 드러낸다. 사량분별을 내려놓고 보니, 이곳이 바로 관음의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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