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나란히 길을 달리다 보면 미륵산 미래사에 당도한다. 사람들은 이 아름다운 도시 통영에 케이블카를 놓고 위에서 보는 바다를 즐기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그러나 통영 사람들은 모두 안다. 바다를 가장 아름답게 즐기는 방법은 높은 곳에서 보는 게 아니라 일렁이는 파도와 시선을 마주하는 것이라는 걸.

삼회도인문 뒤로 보이는 미래사 대웅전

‘미륵불이 해동의 남쪽바다에 당도하실 것’이라는 설이 있다. 미륵산을 중심으로 멀리 바다 위에는 연화도, 세존도, 사량도, 욕지도가 미륵불이 오시기를 기다리며 용화세계를 장엄하고 있다. “수좌가 걸망 내려놓을 자리가 있어야 한다.”는 효봉 큰 스님의 말씀에 상좌 구산 스님은 이곳에 터를 잡고 작은 토굴을 마련했다. 그것이 미래사의 시초다.

미륵산 아래 미륵불이 오실 것이라는 사명(寺名)의 미래사도 그즈음 효봉 스님이 지었을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다. 석두, 효봉 스님이 이곳에 머물며 정진하는 동안에는 인법당의 모습이었다. 특히 효봉 스님의 법력에 관한 여러 이야기는 아랫마을 사람들의 구전으로 전해오고 있다. 몇 가지 분명한 것은 스님이 미래사에 주석하는 동안 오직 기복으로 점철돼 있던 통영 민초들이 차츰 수행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수행이 깊은 스님의 모습을 보며 감화되었다고 보는 게 더욱 정확하겠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삼층석탑(좌)과 요사채(우)

미래사의 불사는 현 주지 여안 스님의 은사이신 종욱 스님으로부터 본격화되었다. 인법당이던 낡은 대웅전을 헐고 30평 규모의 웅장한 대웅전을 지었다. 또 조사전과 삼층석탑, 요사채와 삼회문, 범종각을 새로 지으며 효봉 스님의 수행처이자 대중 교화의 산실이라 이름 할 수 있는 사격을 갖추게 되었다. 옛날의 낡은 모습은 잊었지만, 산문 옆 석두, 효봉, 구산 스님의 부도탑을 나란히 모시고 곁에 중창주이신 종욱 스님의 부도탑을 나란히 모시고 곁에 중창주이신 종욱 스님의 부도까지 모시며 미래사의 짧지만 깊은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1954년 인법당이엇던 대웅전의 옛 모습

미래사 주지 여안 스님은 “자연 속에서 수행이 이뤄지는 법이라, 자연이 사라지면 수행처가 사라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륵산에 케이블카가 놓이고, 관광객이 늘어나는 만큼 ‘미륵산’이 가진 성지로서의 의미, 그리고 석두, 효봉 스님의 드높은 법력이 요동치던 이곳 수행처의 자리는 줄어들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남해바다를 바라보는 석조미륵대불

미래사 석조미륵대불은 통영 앞바다를 훤히 내려다보고 있다. 그 시선 끝에는 거제도와 한산도 등 여러 섬들이 서로 떨어진 듯, 붙어 있는 듯 자연스러운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미륵부처님은 사바세계에 나투시어 세 번의 설법으로 중생을 제도한다 하였다. 이곳 미륵산은 그 첫 번째 설법지요, 당도하여 내딛으실 사바세계의 첫 번째 관문을 상징하는 셈이다.

미래사의 사명(寺名)은 미륵을 향한 기다림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곳을 지나는 많은 대중들이 다 미륵이요, 그저 그들의 걸음을 맞이하는 일이 도량의 역할이라 하겠다. 효봉 스님의 법문 중 한 구절을 새기고자 한다.

효봉스님을 중심으로 석두스님, 구산스님, 종욱스님 등 고승들의 진영이 봉안돼 있다.

“이 삼계의 불타는 집에 누가 그 큰 법왕인고? 그는 석가도 아니요, 미륵도 아니다. 오직 대중의 눈동자에 맡기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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