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스물 두살, 취업 준비, 대학공부, 연애(?), 다사다난한 청춘의 변곡점에서 한 학생이 대만으로 떠났다. 목적은 여행도 아니요, 관광도 아니다. 그것은 지리적인 목적지가 아니라, 거리를 알 수 없는 내면의 목적지를 향한 여정이었다. 대만 불광사에서 한 달간의 귀한 여정을 마치고 온 장원석(부산대학교 공과대학 건설융합학부 토목공학과) 학생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대만 불광사 템플스테이 개별 여행

15일간의 오리엔테이션, 기본적인 수도원 생활, 그리고 기초 불교 교리 교육과 수행, 7일간의 본격적인 집중함양과 참선 수행, 3일간의 삶과 선에 관한 국제 청소년 세미나, 2일간의 대만 관광을 끝으로 8월 3일 해산식을 가졌다. 이로써 모든 공식 일정을 마무리했다.

나는 대만을 떠나기 전 미리 귀국 날짜를 5일 정도 늦추었다. 앞서 2015 FGBMR 프로그램에 참여한 지인의 권유로 8월 8일 귀국하는 것으로 예약하였다. 그런데 같이 여행하는 친구가 며칠 더 같이 여행하자고 하여 비행기 표를 연장하려고 하였다. 기존 비행기 표의 연장 변경 수수료는 NT$6,434인데 대만에서 김해국제공항 들어오는 편도 구입비는 NT$4,068이었다. 연장 변경하는 수수료가 새로 편도 구입비보다 비싸다는 사실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사실이었다. 앞으로 외국 여행할 때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될 중요한 팩트가 될 것 같다.

불광산사에서 한 달 템플스테이를 마치고 나니 수고했다며 NT$4,000을 주었다. 어차피 대만에서의 추억과 체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불광산사에서 받은 돈을 사용하여 비행기 표를 연장 변경하였다. 지인의 말로는 FGBMR 프로그램에서는 사찰 주관으로 5일간 대만 관광을 하였는데 2018 FGBMR 프로그램에서는 사찰 주관으로 2일간만 대만 관광을 하니 NT$4,000를 주며 개별 여행하라는 뜻이 아닐까 싶었다. 아무튼 템플스테이 마치고 10일간 대만 자유여행을 한 셈이다.

8월 3일부터 8월 8일까지 필리핀 독일 중국 친구들과 함께 여행하기로 하고 스마트폰 앱으로 타이베이 게스트하우스 예약하였다. 가오슝과는 달리 타이베이는 가오슝보다 훨씬 덥고 습도도 높았다. 그래서 낮에는 박물관 등 실내 관광을 주로 하였고, 저녁에는 야시장 구경을 하였다. 관광하면서 같이 템플스테이 했던 친구들을 만나 같이 관광했다.

채식이 몸에 배었는지 육식이 입에 맞지 않았다.

한 달 채식이 몸에 배었는지 육식을 하니 속이 느끼하고 구토가 나는 것 같았다. 우리들은 주로 콩으로 만든 음식과 채식 식당을 찾아다니면서 식사했다. 대만 음식은 가격도 저렴하였고 맛도 좋았다.

관광하면서 참선을 상징하는 손 조각 위에서 명상 포즈로 사진도 찍고, 소녀상과 유사해 보이는 동상 앞에서도 사진을 찍었다. 이 사진을 찍으면서 나는 외국 친구들에게 위안부 문제를 설명하곤 했다.

야시장을 구경할 때 저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더워 모두들 거리에서 음료를 마시며 자유로움을 만끽하였다. 타이베이 최대 야시장인 쓰린야시장(士林夜市)을 구경하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대조소(大雕燒)라는 빵집 간판이었다. 성기 屌와 발음이 같은 독수리 雕를 사용한 대조구이 빵이다. 우리나라에서 야시장 정식 제과점에서 저런 빵을 만들어 판매한다면 어떻게 될까 상상해 보았다. 언론과 시민단체로부터 몰매를 맞아서 도산되었을 뿐 아니라 패가망신했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언젠가 방송에서 금지곡들의 방송금지 이유를 듣고 아연실색한 적이 있었다. ‘껌 씹는 아가씨’는 껌 씹는 것이 퇴폐적이라서 금지, ‘왜 불러’는 반항적이고 공무집행 방해한다는 이유에서 금지, ‘거짓말이야’는 사회불안 조장한다는 이유에서 금지, ‘행복의 나라로’는 대한민국이 가장 행복한 나라인데 어디 행복한 나라가 있느냐 하며 금지했다고 한다. 이제 우리도 모든 점에서 자유로운 상상과 발상이 금지되지 않고 자유로웠으면 한다.

야시장을 돌면서 각국의 물가를 서로 이야기하면서 비교해 보았다. 독일 친구가 한국의 음식 물가가 독일보다 비싸다고 했다. 나 스스로 우리 물가가 그렇게 높은 것을 알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리 비싼 물가에 우리들이 여유 없이 자유로움이 없이 방황하는 것이 아닌가도 생각하여보았다.

 

 

대만 불광사 템플스테이 못 다한 이야기들

체험기를 적으면서 이런 이야기는 독자들과 같이 나누고 싶었는데 체험기 구성상 못 다한 이야기들을 두서없이 자유롭게 서술하고자 한다. 짜임새 없는 넋두리를 이해하여 주기를 바랄뿐이다.

헝가리에서 온 한 친구는 외트뵈시 로란드 대학교를 다닌다고 했다. 예전에는 부다페스트 대학교라고 불리었던 헝가리 최고 명문대학이다. 내가 가장 존경하는 인류 역사상 최고의 천재 수학자 존 폰 노이만이 부다페스트 대학교를 졸업했다. 존 폰 노이만은 현대컴퓨터 모델과 DNA의 자기 복제에 관한 이론적 근거를 제시한 천재 중의 천재이다. 그래서 내가 존 폰 노이만을 아는지 물었다. 그는 모른다고 대답했다. 헝가리가 낳은 인류 역사상 최고의 천재이고 자기 대학의 선배인데도 관심도 없고 모른다고 하였다. 나는 이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학교 입학하면 우리 졸업생 중에 유명한 사람을 나열해 소개하고 자랑하기 바쁜데 그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니 이는 참으로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이제까지 우리는 자기가 아닌 자기에 사로잡혀 살아온 것이 아닌 지 반성해 본다.

템플스테이 참가한 프랑스 친구가 3~4명 있었다. 국제 정치와 사회에 관해 대화를 하다가 프랑스 입시제도인 바칼로레아 논술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프랑스에서는 고등학생 33% 정도가 바칼로레아 논술에 관해 공부를 하고 66%는 공부하지 않고 현실적인 취업을 위한 기술을 배운다고 했다. 템플스테이 참가한 프랑스 친구 중 자칭 사이언티스트인 친구 1명만 바칼로레아 논술을 공부했다고 한다. 우리 교육제도와는 사뭇 다르다고 느꼈다. 우리는 모든 학생들이 똑같이 배우고 공부하고 똑같은 과정을 밟아야한다는 획일주의에 몰입되어있는 것 같았다. 나는 이공계인데도 불구하고 바칼로레아 논술에 관해 엄청 공부했다고 하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모든 것을 획일적으로 강요당하는 우리 교육이 더 행복할까 회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프랑스 친구와 핀란드 친구가 자기 나라 교육제도에 관해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나는 우리나라에서 핀란드 교육제도가 가장 완벽하고 이상적인 교육제도로 소개되고 있으며 핀란드 교육제도를 도입하려고 한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소개된 핀란드 교육의 장점을 이야기하고 우리나라 교육에 관해 이야기했다. 유럽과 미국 친구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런 제도는 북한이나 나치 치하의 전체주의에서나 가능한 제도이지 어떻게 가능하냐면서 자기들은 그런 교육제도에서는 질식당하고 살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다른 나라와 비교한 상대적인 관점에서가 아니라 자기 나라 자체의 본질적인 문제들에 초점을 맞춰 개선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주장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의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성찰보다는 외부를 너무 의식하고 있는 것 같았고 너무나 많은 잡다한 지식에 압도되는 느낌이었다.

불가리아에서 온 친구는 한국 대사관 관련 업무를 하다가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에 근무한다고 했다. 한글에 관해 관심이 많다고 하면서 한글의 창제에 관한 역사를 나보다 더 상세히 알고 있었다. 이곳에서 한국에 근무하고 있는 불가리아 친구를 만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세상은 넓고도 좁은 것 같다. 유럽 친구들은 광범위하게 아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에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탐구하는 것 같아 부러웠다.

독일 친구는 중국어에 흥미가 있어 3년간 중국 유학도 하고 아직 중국어 공부를 하고 있다고 했다. 중국 유학하면서 여자 친구를 사귀었는데 부산대학교에서 교환학생으로 온 여학생이라고 했다. 묘한 인연의 신비로움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다섯 단계만 건너면 세상의 모든 사람과 연결된다고 했는데 세상의 인연이 미묘하고도 미묘한 듯하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아는 사람들이 엮어질지 모를 일이다. 항상 몸가짐에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독일 친구의 말이 자기는 중국어 5급 자격증이 있고 여자 친구는 중국어 6급 자격증이 있지만 자기보다 중국어를 못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시험 위주의 한국 교육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너무나 잘 알고 있다고 했다. 나는 우리나라에서 생존하려면 실력도 중요하지만 자격증이 더욱 중요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항변해 보았다.

대만 불광사 한 달간 템플스테이와 10일간의 자유 여행에서 너무나 많은 것을 배우고 소통하고 느꼈다. 헝가리 친구가 자기 나라 출신이면서 대학교 동문 선배인 인류 역사상 최고의 천재 수학자 존 폰 노이만을 모르고 자기 발전에만 몰두하듯이, 우리도 선배, 집안, 출신성분에 관계없이 자기 스스로의 발전과 성찰에만 관심을 가지는 성숙한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외국의 좋은 시스템을 소개하면서 우리 스스로를 비하하고 강요하는 못된 습성도 극복했으면 한다. 이런 그릇된 인식들이 스마트폰 키 하나만 눌리면 다 알 수 있는 정보화 시대에는 그 시대에 걸맞은 시대정신들로 교체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나 자신을 얽어매고 있는 이 모든 굴레의 사슬들에서 해방되었으면 한다.

스마트폰도 없고, 인터넷도 없고, 친구와 친척, 가족도 없고, 누구와의 모든 관계를 여의고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은 고립된 심심하면서도 고요한 삶 속에서 나 스스로를 깊게 관조해 보았다. 관계 속에서가 아니라 내 스스로 독립된 존재로서 그들과 만났고 대화를 나누었고 논쟁도 했다. 그러나 귀국해서 수강 신청하는 데 너무 자유가 없이 짜인 관계의 과정에 함몰되고 있다. 대만 불광사 템플스테이에서 이제까지 익숙한 삶들과의 이별이 가장 힘들고도 값어치 있었던 것 같았는데 다시 전체주의적 제도에 함몰되고 있다.

야나세 다카시가 그의 저서 ‘네, 호빵맨입니다’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생, 세 가지 일을 해왔다. 시를 쓰다, 그림을 그리다, 창피를 당하다. 창피를 당하더라도 하는 것이다. 일단 하면, 무엇인가 얻는 게 있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자 한다. “2018년, 세 가지 일을 해왔다. 글을 쓰다, 사진을 찍다, 창피를 당하다. 창피를 당하더라도 하는 것이다. 일단 하면, 무엇인가 얻는 게 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 자신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일단 도전하면 무엇인가 얻는 게 있다.

 

 

다음에는 불광산사 템플스테이 귀국 후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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