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좋았던 순간과 그렇지 않은 순간을 떠올려 보자. 좋았던 그 때 우리는 무얼 하고 있었는가? 누군가와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냈을 수도 있고 내가 좋아하는 무언가를 하고 있을 때도 있었을 것이다. 반대로 좋지 않았던 때에는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면서 현재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못하거나 있고 싶은 사람과 함께 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방황하는 마음은 불행하다고 한다. 이것저것을 하느라 정신이 이 곳 저 곳으로 분산된 상태에서는 마음이 산란할 수밖에 없고 불안이 뒤따르게 된다. 반면에 내가 하고 있는 이 일에 집중하거나 누군가와 밀도 있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을 때는 마음이 한결 편안하다.

생각이 많다는 것은 번뇌가 많다는 것이고 번뇌는 집착으로부터 비롯되므로 내가 엉뚱한 것에 꽂혀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 그런데 바쁘게 살다보면 이걸 놓칠 때가 많다. 해야 하는 일은 많고 시간도 부족하다보니 어떻게든 우격다짐으로 끼워 맞추려고 한다. 그러다 보면 몸과 마음은 지치고 삶은 어느 순간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그래서 한번 쯤 멈춰서 어디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지 돌이켜 봐야 한다.

 

이때 필요한 것이 명상이다. 명상(瞑想)은 ‘눈을 감고 고요히 생각한다.’는 의미다. 눈 감을 명(瞑) 또는 잘잘 면(瞑)이라는 글자에 생각 상(想)자가 합쳐진 말이기 때문이다. 사전적 의미를 통해서 명상의 본질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다. 우리는 평상시에 눈을 뜨고 생활을 하기 때문에 눈을 감는 다는 것은 일상생활에 큰 변화를 주는 것이다.

눈을 감으면 시각을 통해 들어오는 정보가 멈추고 그 정보를 처리하는 뇌의 작용도 줄어든다. 시각 정보는 우리가 받아들이는 정보량의 80% 정도에 해당하기 때문에 그것을 차단하는 것만으로도 뇌의 활동은 많이 억제된다. 평소에 과도하게 쓰고 있는 뇌의 활동량을 줄이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생각은 많이 줄어든다. 많은 생각으로 인해 발생하는 스트레스와 에너지 소비도 자연히 감소한다. 따라서 우리의 몸과 마음은 전체적으로 휴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번뇌의 원인이 되는 집착을 내려놓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다. 과부하 걸린 뇌가 충분히 휴식하면 그 자체만으로도 생각의 양이 줄어들고 정신집중이 용이해진다. 즉 바른 생각을 하기 좋은 상태가 되는 것이다. 체력이 바닥나고 마음이 복잡하고 생각이 많아질 때에는 모든 것이 귀찮아지고 산만해지지만 내가 전체적으로 회복된 사태에서는 집중력이 상승하기 때문이다. 자연히 정신 차려서 내 삶의 중요한 가치와 내용을 중심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되고 번뇌를 일으키는 삿된 생각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된다.

다시 명상(瞑想)이라는 글자의 의미를 생각해보자. 일단 명상을 한다는 것은 평소의 말과 행동 그리고 생각과 조금 다른 흐름을 따르는 것이다. 명(瞑)에 담겨 있는 어둡다는 의미는 평소의 밝게 확장하고 확산하는 에너지의 흐름은 안으로 돌려서 깊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밖으로 발산하는 온갖 생각과 활동들을 억제하고 거두며 안으로 축적하여 새롭게 시작하는 의미다. 그러므로 눈을 감는 것으로 시작해 나의 삶 전반의 활동을 축소, 점검, 휴식하면서 새로운 출발을 도모하는 일체의 생활양식이라 볼 수 있다.

따라서 명상을 하면서 하는 생각은 평소의 생각과 다를 수밖에 없다. 갖가지 걱정과 번뇌로 휩싸여 있는 복잡한 생각을 내려놓는 것에서 시작한다. 생각하지 않는 가운데 일어나는 한 생각에 집중하는 것이 명상의 핵심인 것이다. 노자 도덕경에 나오는 무위이화(無爲而化, 애써 공들이지 않아도 저절로 잘 이루어짐)라는 말처럼 ‘함이 없이 함’을 이룰 수 있는 단초가 여기에 있다. 즉 생각을 하지 않으면서 하는 생각이란 어두운 가운데 하는 생각이며 쉬면서 하는 생각이다.

명상 상태에서 하는 생각이여야 참된 생각이며 진정한 사유의 시작이다. 사유(思惟)는 어떠한 대상에 대해서 두루 생각하는 것으로 어떤 개념과 구성을 짜고 판단하며 추리하는 정신활동이다. 올바른 사유에서 반듯한 사유체계가 만들어 지는데, 체계적인 사유의 틀이 있어야 확고한 가치관을 축으로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된다. 명상을 통해 맑은 정신에서 어떤 주제나 삶에 대해 생각하고 궁리하면서 사고(思考)의 구조를 만들어 가는 것은 우리가 인격체로 성장해 가는 일련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명상을 통해 하는 생각은 사유수(思惟修)가 된다. 이것이 바로 참선을 의미하는 말이 사유수인 까닭이다. 단지 바른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닦는다는 의미의 수(修)가 있기 때문에 실천과 활동이 동반하는 것이다. 그래야 8정도(八正道)의 하나인 정사유(正思惟)가 이루어지는 것이며 지혜롭고 슬기로운 생각이 가능해 진다. 결론적으로 명상은 평소의 활동을 잠시 쉬면서 다른 차원의 의식을 여는 것이고, 이를 통해 새로운 하나의 길을 내는 것이다. 더 나아가 수행을 통해 말과 생각과 행동이 하나의 바른 흐름을 갖는 일련의 과정이다.

 

도연스님은

카이스트 스님으로 알려진 도연스님은 카이스트에 입학해 전자공학을 공부하다 돌연 출가의 뜻을 품고 스님이 되었다. 이후 카이스트와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등에서 에너지 명상과 참선을 지도했으며, 2015년에는 카이스트 기술경영학과를 10년만에 졸업 하고 오대산 월정사에서 원명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2016년 사미계를 수지하고, 현재 서울 강남 봉은사에서 어린이, 대학생, 청년부 지도법사로 활동하고 있다.

저작권자 © e붓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