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스물 두살, 취업 준비, 대학공부, 연애(?), 다사다난한 청춘의 변곡점에서 한 학생이 대만으로 떠났다. 목적은 여행도 아니요, 관광도 아니다. 그것은 지리적인 목적지가 아니라, 거리를 알 수 없는 내면의 목적지를 향한 여정이었다. 대만 불광사에서 한 달간의 귀한 여정을 마치고 온 장원석(부산대학교 공과대학 건설융합학부 토목공학과) 학생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2018 FGBMR에 선정되었다는 통보와 함께, 불광산사에서 템플스테이 규정집과 가이드북을 보내어 주었다. 규정집에는 지켜야할 에티켓, 건강, 음식, 돈, IT기기, 추천도서, 긴급연락처, 교통편, 스태프, 구체적인 일정, 준비 필수품, 숙소와 세탁 등에 관하여 상세하게 설명돼 있었다. 스마트폰 없이는 못사는 젊은 참가자들이 한 달간 모든 IT기기 없이 생활해야한다는 점이 가장 불편해보였다. 설명된 교통편과 항공비를 비교하여 코스를 정하고 비행기 표를 예약했다.

부산 김해국제공항에서 타이베이 국제공항(Taoyuan International Airport)에 도착, 타이베이 국제공항에서 셔틀버스(20분 소요)를 타고 Taoyuan High Speed Rail (HSR) station에 도착, HSR(90분 소요)를 타고 가오슝 Zuoying Station에 도착, Zuoying Station에서 E-da/Hafo 셔틀버스(40분 소요)를 타고 불광산사 수도원에 도착하는 코스였다.

7월 6일부터 7월 7일 오후 2시까지 불광산사 수도원에 도착하면 되지만, 교통편이 다소 복잡하고 초행길이 되어서 7월 5일 11시 5분 비행기로 출발하여 타이베이 국제공항 12시 30분(현지시간) 도착하는 비행기를 예약하였다. 예정보다 2일 전에 도착하는 일정이었다. 불광산사 생활에 적응하여 보다 알차게 템플스테이를 위해 불광산사에 미리 가겠다고 사전에 양해를 구했다.

 

김해 국제공항에서 대만 불광산사로의 여정

가이드북을 참고하여 짐을 꾸리고, 7월 5일 새벽 선잠에서 깨어나 김해 국제공항으로 향하였다. 생각과는 달리 그다지 붐비지 않아서 공항에 일찍 도착하였다. 티케팅을 마치고 대만 도착하여 진행하여야할 여정을 마음속으로 몇 번이고 정리하여보았다. 비행기 안에서 기내식을 먹고 나니 순식간에 타이베이 국제공항에 도착하였다. 입국심사를 마치고 혹시 모를 긴급 상황에 대비하여 공항에서 대만 통신용 유심칩부터 구입하였다. 유심칩을 구입하여 메일을 체크하니 나와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이유로 미리 도착하는 참석자들이 여럿 있는 것 같았다. 

공항에서 메일을 체크해보니 미리 도착하는 참석자들이 여럿 있었다. 제공: 장원석

타이베이 국제공항을 이리저리 구경하고 국제공항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Taoyuan High Speed Rail (HSR) station에 도착했다. Taoyuan High Speed Rail (HSR) station에 도착하니 가오슝 출발 HSR시간도 넉넉하고 배도 출출하여 대만 식당에 들어가서 간단히 요기를 하였다. 음식은 대만 대중적인 요리인 만두와 튀김을 먹었는데 염려하였던 것과는 다르게 느끼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HSR에서 보는 풍광이 너무 아름다웠고, 염려와는 달리 부산보다도 습도가 낮고 온도도 낮아서 쾌적했다.

가오슝 Zuoying Station에 도착하여 E-da/Hafo 셔틀버스를 타고 불광산사 수도원에 도착하였다. 불광산사 도착하여 wechat으로 스태프와 연락하여 숙소를 안내받았다. 숙소에는 나보다 먼저 도착한 참가자들이 짐을 정리하여두고 불광산사를 미리 관람하는 것 같았다. 나도 혼자서 불광산사 전체를 둘러봤다. 사찰을 둘러보며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사찰 입구에 새겨진 선불장(選佛場)이라는 글귀였다. 우리나라 사찰을 관람하면서 참선도량 현판으로 새겨진 선불장(選佛場)이라는 간판은 보았지만 사찰입구에 선불장이라는 현판은 처음 보았다. “부처님을 선발하는 장소”에 들어간다는 것만으로도 경건해짐을 느낄 수 있었고, 내가 부처로 뽑히는 후보로 입장한다는 상상만으로도 정신적으로 성숙되어지는 것 같았다. 지금부터 선불장에서 수련을 하고 생활하는 것이라고 다짐도 하여보았고, 퇴소하는 순간에는 부처를 선발하는 시험을 본다는 각오도 하여보았다.

불광산사 수도원에 도착해 스태프의 도움으로 숙소를 안내받았다.
숙소의 모습.
사찰 입구에 새겨진 선불장이라는 글씨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불광산사(Fo Guang Shan Monastery)의 4대 종지(宗旨)가 문화를 통한 불교포교, 교육을 통한 인재양성, 자선을 통한 사회봉사, 그리고 수행을 통한 심신정화였다. 우리나라에서 접한 불교는 부처님 오신 날, 혹은 휴식삼아 사찰 순례하면서 등을 달고 예불하고 소원을 비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였는데 사뭇 다르게 느껴졌다. 현재 불광산사는 40여년의 짧은 시간에 대만과 해외에서 문화와 교육, 자선과 수행, 전통과 현대가 함께 어우러진 인간불교 이념을 실천하는 불교교단으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내가 잘 모르지만, 우리나라 불교에서도 문화, 교육, 자선, 수행의 캐치플래그를 내걸고 변화한다면 우리 젊은 세대에게 호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불광산사의 4대 종지가 팸플릿에 나와있다.

불광산사 팸플릿에 새겨진 “그대는 어디로 가는가?”와 “언제 다시 올 것인가?”라는 문구는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찾아서 온 나에게 너무나 절실한 질문과 화두와도 같았다. “나는 지금 무엇을 찾아 방황하고 있는 것인가?” 그리고 “언제 나의 참 모습을 찾아서 흔들리지 않고 매진할 것인가?”라는 질문과도 같았다. 다시 한 번 숙연하여지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대는 어디로 가는가? 언제 다시 올 것인가?"

불광산사를 관람하면서 또 인상적이었던 것은 불타기념관 지궁진보 (佛陀紀念館 地宮珍寶)의 카운트다운(開啓地宮門倒數)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었던 지궁과 카운트다운의 의미를 알 수 없었고, 정확한 의미를 전달하고자 대만 德悅스님과 性圓스님께 문의하였다. 德悅스님과 性圓스님께서 친절하게도 체험기를 작성하는데 필요한 사진과 정보를 제공해 주셨으며, 상세한 설명도 보태주셨다.

불타기념관.
지궁진보의 카운트다운.

지하궁전 지궁은 불교유물, 20세기 톱 십대발명품, 대만 문화유물, 가정 가보 등 문화유산을 수집하여 미래세대에게 사실적으로 문화유산을 제공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건립되어 현재 세계 각국에서 의미 있는 문화유산들을 수집하고 있다. 백년마다 개장하여 새롭게 박물관에 전시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리고 지상에 있는 8개 탑을 천궁(天宮)이라고 하는데 아직도 건립 중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불교계가 기존의 문화유산 보존뿐만 아니라 이 시대 의미 있는 문화유물들을 수집하고 그 유물들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미래사회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정신적 선도역할을 수행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광산사를 순례하면서 한없는 고요함과 적막함에 젖어들었다. 이 고요함과 적막함속에서 숙소에 돌아와서 한 달간 템플스테이 잘 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면서 명상에 잠겨보았다. 불광산사 수도원에서 첫 뷔페식 저녁 공양을 하면서 불광산사 템플스테이가 시작되고 있음을 느끼고 스스로 긴장되어갔다.

 

같은 숙소에 머문 참가자와의 첫 날 밤

먼저 도착한 참가자 8명이 같이 합숙하였다. 템플스테이 참가한 동기와 목적은 달랐지만, 각기 나름의 철학을 가지고 참가하였고 고민을 하고 있음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참가자 중 인상 깊었던 몇 명을 소개하고자 한다.

자기소개를 마치고 내가 먼저 질문하였다. “God bless you!”라고 하는데, “여기서 God는 누구인가?”하고 물었다.

먼저 인도 친구가 인도 힌두교에서는 신의 수가 8억 명이 넘는데, 본인은 그런 신을 믿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런 신은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하였다.

멕시코 친구는 부모님이 독실한 가톨릭 집안이지만, 신이 모든 것을 주재한다는 것을 믿을 수 없고 믿지도 않으며, 불교의 인과응보와 인연이 진리에 맞는 것 같아서 공부하기 위해 왔다고 하였다.

내가 다시 의문을 제기하였다. 예수님은 자신을 신의 아들이고 뭇 생명체는 신의 피조물로 역설함으로써, 인본주의를 신본주의로 바꾼 것 같다. 그런데 부처님은 사람 수보다 많은 신의 나라, 인도에서 “일체중생 개유불성”을 설파하면서 신의 중심이 아닌 생명 중심의 인본주의를 가르치시며, 곤고하였던 신분제도를 타파하여 모든 생명이 동체 평등함을 역설하시었다. 이렇게 혁신적이고 개혁적이었던 불교가 우리나라에서는 고루하게 여겨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 같은 젊은 세대에게 매력적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사람들이 조금만 비판적으로 사유하여보면 불교적 진리에 빠져들게 될 것인데, 안타깝다고 하였다.

 

천재성이 번뜩인 러시아 친구는 모스코바 대학 수학과 조교수였는데, 자아를 찾기 위해서 왔다고 하였다. 교수가 되고나서 학생을 가르치면서 잡무에 시달리다보니 수학에 대한 흥미도 상실하고, 교육자로서 학생들에게 동기 부여할 시간도 없어 존재의미를 상실하게 되어 자괴감이 들었다고 하였다. 세계 최고의 대학 조교수직을 던져버리고 자아를 찾아서 왔다는 점이 신기하고 부럽고 경이롭기조차 하였다.

가장 흥미로웠던 친구는 심리치료사를 한다는 필리핀 친구였다. 한 때 집안이 필리핀의 100대 부자 중의 하나였는데, 아버지께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그 어떤 가치를 추구하시는 분이 되어 몰락하였다고 하였다. 그러니 중국계 어머니께서, 본인에게 돈을 벌라고 강요하여 많은 갈등을 하였다고 하였다. 상반된 부모님 사이에서의 갈등으로 심각한 우울증까지 앓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심리치료사가 되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현대인들의 병의 상당한 부분이 정신적 갈등과 스트레스에서 오는 것으로 명상과 참선으로 치유 가능하다고 하였다. 그래서 본인은 필리핀에 있는 수도원을 걸쳐 자리를 옮겨가면서 3개월째 수련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하였다. (사진 10) 그러면서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알려진 프랑스 출신 분자생물학 박사 라마승 마티유 리카르에 대하여 이야기도 하였다. 나는 형이 한의사인 관계로 치유방법으로써 명상에 관한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모스크바대학 수학 조교수 자리를 던지고 온 러시아 친구와 3개월 째 수련 중인 필리핀 친구.

다음 이야기에서는 본격적인 불광산사 수련생활에 관하여 설명하고자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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