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맑다. 이런 날은 시도 읽지 말고 햇살이나 툭툭 차고 눌라는 김용택의 시가 다정하게 다가온다.

햇살 툭툭 차다가 해살 가장 아름다운 곳이 어딜까 생각해 보았다. 설악이었다. 햇살이 수줍은 처녀의 볼처럼 살짝 익은 설악이라면 가장 아름다운 햇살을 만날 것만 같았다.

설악을 가본지도 오래 됐다. 무엇이 바쁜건지 아님 게을러진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알랭드보퉁은 "여행의 기술"에서 때로 여행을 떠나지 않는 것이 여행을 떠나는 것보다 더 좋을 때가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냥 사진이나 그림으로 여행지를  감상하는 것이다. 그러면 여행지의 모든 번거로운 절차나 짜증을 만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번거로움이 없다면 사실 삶의 여정또한 없는 거다. 번거로움을 마다하는 것은 삶을 치열하게 살고 싶지 않다는 게으른 의지의 표명이다. 편안함은 삶을 위해 그리 중요한 요소는 아니다.

조금 더 부지런하게 살고 남의 일도 내 일처럼 좀더 넓게 사는 번거로움이 있을 때 삶은 비로소 삶으로 빛날 수가 있다. 보살의 삶이란 사실 그렇게 번거로운 것이다. 여행을 가고 싶다면 두 발로 찾아가 보고 남의 일도 내 일처럼 챙기고 사는 일이다.

가을 햇살이 더 농익기 전에 수줍은 처녀의 볼처럼 살짝 붉게 물든 지금 설악산에 가보고 싶다. 그러다 햇살 툭툭 차며 오르는 산길에서 바람이라도 만난다면 그것이 가을 날의 행운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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