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사의 제일 암자인 청련암은 1678년 숙종대에 창건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여러 번 의 불사를 거쳤는데, 1895년에 수룡, 화용 스님에 의해 중창되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그리 오랜 역사를 지닌 암자는 아니지만, 옥천사를 중심으로 백련암과 더불어 정진도량으로 자리 잡고 있다.

 

청련암
한글로 된 주련

청련암, 연화산 자락 휴식처로 변모

청련암이 크게 변한 것은 근래 들어서다. 청련암 감원이신 승욱큰스님이 주석하시고 난 이후부터 법당 불사를 새로이 하고, 도량 전체를 재정비했다. 인법당이던 큰법당은 여러 방으로 나뉘어져 있던 것을 리모델링해 여법한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그때의 흔적은 법당 입구에 삐죽이 나와 있는 툇마루가 증거하고 있다. 툇마루 덕분인지, 아니면 한글로 된 주련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도량이 한결 친근하고 편안하게 다가오는 느낌이다. 이밖에도 승원스님은 장경각을 새로 짓고, 연화산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차방을 지었다.

 

법당 내부

큰스님의 원력으로 이어져온 자비행

청련암의 근대사에 대해 얘기하려면 승욱스님의 삶을 엿보지 않을 수 없다. 스님은 당신의 고향인 옥천사로 출가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길에는 집 없는 아이들이 걸식을 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는데, 스님은 그런 모습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어 아이들을 절로 데려왔다. 그렇게 30여 년이 흘렀다. 그 사이에 도량의 모습도 변했다. 흔히 암자라 하면 ‘은거(隱居)’에 가까운 공간이지만, 청련암은 대중을 친절하게 맞을 준비를 한 모습이다. 현판과 주련은 모두 한글이고, 데크로 만든 넓은 마당은 아이들이 뛰어놀기 좋다. 암자에 책이 많아 따로 장경각을 만들었다고는 하나, 그동안 이곳에서 공부하며 자란 아이들의 흔적이기도 하다. 아이들과 스님의 손때가 묻은 책들이다.

스님의 인재불사는 2003년 결실을 맺었다. 옥천암 인근 좌련분교를 매입해 보리수동산이라는 아동복지시설을 운영하게 되었다. 청련암은 원래 염불정진도량으로서 그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1879년 염불기도공덕으로 방광하신 서봉 인오스님을 계기로 염불당이 되었으며 이후 1919년 서응스님이 만일계를 창설했다. 이후 만일계는 세대를 이어 내려오다가 승욱스님이 다시 ‘정토만일봉사회’라는 이름으로, 내세적 정토세계 구현뿐만 아니라 현세의 보살도 실천을 강조하는 조직을 결성했다. 이에 1997년 다시 시작된 회는 오는 2027년까지 이어갈 예정이다. 이 정토만일봉사회가 주축이 된 덕에 보리수동산이 뿌리를 내릴 수 있었던 것이다. 염불기도의 공덕이 스님의 인재불사 원력과 맞물려 귀한 시절 인연을 맞게 된 것이다.

스님은 주로 아이들 곁에 머물고 계신다. 상좌인 원각스님과 원명스님에게 연화산하를 당부하고는 오직 보리수 가꾸기에 여념이 없으시다. “심청정 국토청정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 마음이 청정하면 온 세상이 청정하다는 말입니다. 진흙 속에서 연꽃이 피듯이 거칠고 험한 세상 속에서 연꽃처럼 맑고 향기롭게 살 수 있다면 사바세계가 곧 극락입니다.” 한 송이 마음꽃을 틔워 세상을 향기롭게 일구려는 스님의 원력 덕분에, 보리수에 꽃이 피고, 연화산에 청련의 맑은 향기가 그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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