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 년 전 우리나라 젊은이의 아마도 십중팔구는 “Boys! Be ambitious!(젊은이여 야망을 가져라!)”라는 문구를 알고 있으며 또한 이 '유명한 명언'을 세상에 남기고 떠난 사람이 클라크(W. S. Clark) 박사라는 것도 대부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무엇을 한 사람이냐고 되물으면 대답을 할 줄 아는 사람은 아마도 거의 없다. 에디슨은 전기를 발명한 사람이고 라이트형제는 비행기를 고안해낸 사람이고 링컨은 미국 대통령이었고 하는 식으로 그의 이력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었다. 왜일까? 대답은 당연히 우리가 모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인류의 역사에 큰 업적을 남기거나 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선 크라아크 박사의 편력에 대해서 보면 1826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애쉬필드에서 태어나 매사추세츠 농과대학에서 작물학 교수를 하고 있었다. 마침 그는 선교사이기도 했으므로 1876년 당시 일본 메이지(明治) 정부의 강력한 요청으로 신흥개척지였던 불모의 땅 홋카이도(北海道)에 부임하게 된다. 선교목적을 겸해서 새로 설립된 삿포로농학교(札幌農? 校, 지금 홋카이도대학의 전신)의 초대 교장으로 척식민들의 교육과 계몽에 힘썼다. 자신의 전공이 화학·식물학·동물학이기도 하여 불모의 땅 홋카이도에서 농업학교를 성장시켜 일본 근대교육의 태동과 계몽에 힘썼던 소박하고도 훌륭한 교육자였다. 비록 학자로서는 저명한 사람이 아니었지만 메이지 시대 일본으로서는 역사에 남을 만큼 고마운 사람이었다. 불과 1년 정도의 기간을 보내고 있는 그에게 미국 본국어부터 귀국 소환장을 받게 된다. 그는 1년 동안 자신의 정열을 바쳐 키워온 삿포로농학교를 떠나면서 교직원과 전교생을 모아놓고 마지막 고별 강연을 하게 되는 것이다. 애정과 희망을 다 해 학생들에게 당부하는 말, 그 최후의 한마디가 “젊은이여 야망을 가져라!”이다. 이 연설문의 마지막 구절은 그 후 일본의 영어 독해 예문으로 자주 인용되게 되었고, 어느 대입용 영어참고서에 실리게 된다. 이 글은 우연히 한국의 영어교재에도 실리게 되었고, 실리게 되었다기보다는 일본의 참고서가 거의 완역이 되다시피 해서 버젓이 ×××저 ××기본영어, ××종합영어로 출판되었고 지금도 대학입시를 보는 사람이면 반드시 한번은 거쳐 가게 된다. 해서 한국인들과는 전혀 인연이 없는 사람의 문장이 아이러니컬하게도 무슨 큰 위인의 명언처럼 한국 사람들의 머릿속을 세뇌시키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의 출판물 시험문제 논문 할 것 없이 이런 부류의 무분별한 번안, 표절 및 도용은 과거엔 만연했고 현재도 비일비재하다. ××수학, ××수학××, 그리고 현행의 거의 모든 영한사전 및 한영사전이 일본의 그것들과 완전히 1:1로 어울린다고 하는 사실을 알게 되면 모두가 놀랄 것이다.

 

 

송휘영 교수(영남대학교 독도연구소 연구교수)는

농업경제학박사(日本 京都大), 동아시아국제정치학회 부회장, 한국일본문화학회 부회장,  동북아역사재단, 국립중앙과학관, 독도재단 등 자문위원, 환경법률신문 논설위원, 전) 한국그린투어리즘연구소 소장, 전) 농식품신유통연구원 연구위원, 전) 일본 교토대학 객원연구원. 저서로는 '일본 향토사료 속의 독도(2014, 선인)' 외 20여 권이 있으며, 여러 매체에 독도에 관련된 칼럼을 게재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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