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명상에 관심 갖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스트레스 억제와 건강한 삶에 큰 효험이 있다는 연구결과가 소개되면서 그 필요성이 많이 느끼고 있는 것 같다. 명상이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것은 아니지만 물질적 풍요로 채워지지 않는 행복에 대한 추구가 절실함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런 까닭인지 필자에게 명상에 대해 묻는 분들이 많다. 특히 명상법을 물어보는데, 주로 ‘직접 가서 배우라’는 말로 답하는 편이다. 말과 글로 자세히 설명한다고 해서 쉬이 해결 될 문제가 아닐 것이다. 먹어보지 않은 음식의 맛을 알 수 없고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거늘 여러 말이 필요하겠는가?

명상을 하고 있다는 감각을 터득하는 것이 중요한데 말과 글로써 이해하는데 한계가 있다. 그림과 영상으로 설명을 풍부하게 한다 하여도 부족하다. 따라서 누군가로부터 가르침을 받음으로써 노하우를 전수받아야 한다. 작게나마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통해야 한다. 책과 영상을 통해 조리법을 배워서 음식을 만들 수 있지만, 음식의 맛을 내는 감각을 익히기 위해서는 누군가로부터 직접 전수를 받아야 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명상의 테크닉은 며느리에게도 가르쳐주지 않는 시어머니의 특급비결이 아니다. 반드시 어떤 위대한 스승을 찾아가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엉터리 선생은 피해야 하겠지만, 명상의 기본을 가르쳐 줄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아무렴 괜찮다. 주변 가까운 곳에 있는 절이나 요가원 또는 명상센터에 가서 배우기를 권한다.

 

사실 누구든지 지금 명상적 삶을 살고 있으며 

쉽게 행하고 있다. 

 

곳곳마다 명상적 요소가 깃들어있다. 삶 구석구석에 스며들어 있으며 핵심을 차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그것을 인식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을 뿐이다. 인식하고 있을 때 그 효과와 지속성은 크게 확장된다.

그렇다면 삶의 명상적 요소에 대해서 알아보자. 아침에 일어나서 기지개를 펴고 이리저리 몸을 푸는 것부터가 명상이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행동도 그렇다. 밥을 먹고 책을 읽을 때도 깨어서 집중하면 된다. 몸이 결리고 아플 때 그 부위를 알아차리는 것, 그 곳을 눌러주거나 풀어주는 것도 명상이다. 명상의 치유 기능인 것이다. 처음에는 통증이 클 때 아프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관심을 갖기 시작하지만 감각이 점차 더 깨어날수록 작은 아픔에도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게 된다. 몸에 큰 문제가 생기기 전에 일찍 알아차릴 수 있으므로 질병을 미리 예방할 수 있으며 자연히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된다.

명상을 할 때 평소 느낌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감각은 명상 상태에 들어갔다는 신호이며 새로운 흐름에 접어든 것이다. 그냥 습관적으로 하는 행동과 생각에서는 신선함이 없다. 비습관적이며 지금 이 순간 깨어있는 감각으로 살아갈 때 신비한 체험을 하게 된다. 처음에는 낯설고 신기할지도 모른다. 시간이 지나고 익숙해지면 삶이 생기와 활력으로 넘치며 자연스러워진다. 명상 상태에서 공급되는 초월적인 힘과 에너지는 활력을 일으키며 깨어있는 정신을 유지 시켜주기 때문이다.

명상을 처음 배울 때 몸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몸의 움직임을 알아차리면서 그 감각을 깨우는 방법부터 시작한다. 만일 복식호흡을 한다면 아랫배의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호흡에 집중해야 한다. 집중하는 가운데 생기는 갖가지 느낌, 감정, 에너지를 알아차리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집중이 원활히 이루어질 때 번뇌와 망상이 사라지고 새로운 지혜가 열린다. 마음은 텅 빈 충만감으로 무한한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명상은 힘들고 지치는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명상을 하면 피곤하고 졸리며 비생산적이라는 것이다. 처음에 그렇게 느낄 수도 있다. 아직 명상의 감각을 터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감각을 조금이라도 알게 된다면 더 이상 힘들고 어려운 것이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명상은 일반적인 공부와 같다는 관념을 버리자. 지식을 암기하고 머리를 쥐어짜는 것이 아니다. 이미 갖추고 있는 능력을 깨우는 것이며 불필요하게 가동되는 기능들은 끄고 필요한 것만 쓰는 것이다. 그러므로 에너지를 쓰지만 그 이상의 에너지가 충전되므로 방전되지 않는다. 명상을 하면서 기운이 빠지거나 졸리면 그건 제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시늉을 내고 있을 뿐이다.  아직 명상을 위한 준비과정이거나 잘못된 명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명상 상태에는 배터리를 충전하듯 전원이 공급되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제대로 명상을 하고 있을 때는 오히려 기운이 넘치게 되며 신나고 재밌는 놀이로 느낄 것이다.

 

명상의 감각을 체득하면 

삶의 많은 것들이 달리 느껴지기 시작한다. 

 

늘 쉬는 숨에서도 깊고 고요한 평화를 느끼고 ‘지금 바로 여기’에서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된다. 밥을 먹고 차를 마시는 순간에도 내 감각에 집중하면 이내 기쁨이 밀려온다. 다만 주의해야 할 점이 있는데, 급하게 서두르면 안 된다는 것이다. 평소 습관이 나온 다면 무조건 따르는 것은 금물이다. 일단 속도를 늦춰보자. 멈춰야 비로소 보이는 법이지 않은가?

방을 청소하고 짐을 정리하고 몸을 씻는 것도 하나의 명상이다. 컴퓨터나 스마트폰의 파일 또는 어플을 추가하거나 지우고 분류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몸을 씻고 방을 정돈하거나 내가 다루는 정보와 기기들을 깔끔하게 정리하면 마음도 한결 가벼워지고 맑아지기 때문이다. 내 주변에 보이는 것들을 정돈함으로써 내 마음이 편안해 지고 생각이 가지런해진다.

모든 사물은 고유의 에너지 파장을 갖고 있다. 요즘 사물인터넷(IoT, Internet of Things)을 활용한 전자제품들이 나오는데 그 원리를 통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사물 간을 서로 인터넷 망으로 연결해서 정보를 주고받는 기술이다. IoT기술에서는 센서를 부착해야 서로 통신할 수 있지만 세상의 모든 사물들은 이미 자연 센서를 갖고 있다. 본래 그 자체로 주파수를 갖고 있으며 그것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어떤 하나의 시스템을 갖춘다. 그런데 만일 각기 사물들이 질서 없이 어지럽게 뒤섞여 있다면 시스템은 복잡한 상태가 되어 어지러운 파장을 보내게 될 것이다. 그 영향이 우리에게 좋을 리가 없다. 잡생각이 많아지고 스트레스를 받게 될 것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로마의 시인 유베날리스(Juvenalis)가 ‘건전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고 말 한 것처럼 눈에 보이는 것부터 잘 정돈해서 우리의 마음도 편안해 질 수 있다.

 

더 나아가 인간관계에도 정리정돈이 필요하다. 

 

만나는 사람과 그로부터 받는 영향에 따라 내가 느끼는 삶의 기쁨과 고통이 극단적으로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 행복을 주는 관계를 늘리고 불행을 주는 관계를 줄이는 것이 삶의 지혜일 것이다. 도움이 되는 관계를 알아보는 보고 그 관계를 정리하는 지혜와 의지도 명상으로부터 길러진다. 개인의 삶에서 사람들과의 관계성에 이르기까지 명상은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삶과 명상을 둘이 아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명상적 요소를 발견하고 명상을 통해 기른 긍정적인 에너지를 삶에 적용하는 순환과정에서 조화롭고 행복한 삶을 누리게 될 것이다.

 

도연스님은

카이스트 스님으로 알려진 도연스님은 카이스트에 입학해 전자공학을 공부하다 돌연 출가의 뜻을 품고 스님이 되었다. 이후 카이스트와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등에서 에너지 명상과 참선을 지도했으며, 2015년에는 카이스트 기술경영학과를 10년만에 졸업 하고 오대산 월정사에서 원명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2016년 사미계를 수지하고, 현재 서울 강남 봉은사에서 어린이, 대학생, 청년부 지도법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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