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7년에 있었던 메이지유신(明治維新)에 의하여 1,100년간이나 교토(京都)에 있었던 일본의 수도가 에도(江戶, 동경)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하지만 교토 사람들은 아직도 일본의 수도는 여전히 교토이고 교토가 일본의 중심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처음 왔을 때 모대학에 간 한 일본인 선배(교토출신)가 유치한 질문을 던져오는 것이었다. “일본의 수도는 어디이지요?”라고. “그야 물론 동경이지요”라고 내가 대답하자, 그는 “아니에요, 지금도 일본의 수도는 교토지요”라고 하는 것이었다. 초등학생도 아닌데 나를 놀리나 하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시간이 차츰 지나면서 이곳 사람들의 강한 프라이드와 일본의 중심이라는 생각하는 그들의 인식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일본에서 구체적으로 역사적인 기록이 시작되는 것이 약 7세기경인 아스카시대(飛鳥時代)이고, 그 후 나라(奈良)로 도읍을 옮기면서 74년간의 나라시대(奈良時代)가 되는데 이 고대사의 부분은 주로 2세기 정도의 기간이다. 그 뒤 784년에 수도를 교토로 옮기고 나서 근세인 메이지시대에 돌입하기까지 교토는 일본의 역사적 무대였으므로 많은 문화재들이 이곳에 거의 집중이 되어있다. 초등학교에서 중학교, 고등학교의 수학여행지로 우리가 경주나 설악산으로 가듯이 이 지역 사람들을 재외하곤 전국에서 당연히 교토와 나라를 찾게 되고 해마다 수학여행 철이 되면 중고생들의 행렬로 무척 붐비게 된다. 반대로 이 쪽 사람들이 교토 자동차 표지판으로 외지를 가면 왕왕 대접을 받기도 하는데, 일본열도가 3,000km나 되기 때문에 먼 지역으로 가면 평생 교토의 땅을 밟아 보지도 못한 사람들에겐 무척 동경의 대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지역 사람들은 교토를 중심으로 한 긴키지방(近幾地方) 및 동경권 이외의 지역을 “지방(地方, 시골이란 의미)”이라고 부르고 있다. 분명히 지방이란 중앙에 반대되는 말이므로 적절한 표현은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관습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도 습성처럼 “지방에서는...” 혹은 “지방 대학은...”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는데, 종종 동경에서 온 지인으로부터 “지금 뭐라고 했지요?” 라고 지적을 받기도 한다. 또 한 가지는 이곳 사람들은 어디를 가든지 ‘간사이벤’(교토, 오사카, 고베지역의 사투리)을 표준어(동경말)로 수정하지 않고 당당하게 그대로(자랑스럽게?) 사용하고 있다. TV에서는 늘 간사벤을 접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곳 출신의 탤런트들이 화면상에서도 공공연히 간사이벤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해발 3,776m인 일본의 최고봉 후지산은 일본의 상징이자 그 장엄한 자태는 가히 일본의 영산이라고 할 만하다. 모든 일본인들은 신칸센을 타고 후지산 아래을 지나게 되면 꼭 후지산의 모습을 보려고 애를 쓴다. 화산분화로 홀연히 우뚝 솟아 있지만 어지간히 운이 좋지 않으면 후지산의 모습을 볼 수가 없다. 항상 구름에 휘어 싸여 산봉우리를 보기는 힘이 든다. 참고로 비온 날 다음의 오전이나 겨울철엔 후지산의 모습을 보게 될 확률이 높다. 어쩌다가 후지산의 봉우리를 보게 되면 그날의 운수는 대통이라고 일본인들은 믿고 있다. 그러나 이 간사이(關西) 사람들 특히 교토사람들은 신칸센을 타고 동경을 가면서도 후지산 쪽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되레 반대쪽 차창으로 고개를 돌리고 지나친다. 왜냐하면 이 사람들은 어떻게 후지산을 보게 되면 재수가 없다고 생각하고 그날의 운수를 망친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아마도 수도를 빼앗긴 교토 사람, 간사이 사람의 자존심과 열등감을 동시에 말해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실 당시의 메이지천황이 대정봉환(大政奉還)으로 동경으로 옮겨갈 때에 당시의 국내여론과 역사적 문화적 주무대였던 이곳 주민들이 반발할 것에 대비하여 잠시 행차를 간다고만 했었고 멀지 않아 돌아오기로 하고 길을 떠났다. 2년 뒤에 메이지황후가 이어 동경으로 갈 때도 이는 마찬가지였다. 국내적으로나 국제적으로나 동경 “천도”라는 말은 사용도 하지 않았고 지금의 황궁인 에도성(도쿠카와가 살던 성)으로 눌러앉은 것이 동경천도의 경유이다. 따라서, 이곳 사람들이 아직 교토가 일본의 수도라고 생각하는 것은 논리적으로는 정당한 것일지도 모른다. 140여년이 지난 지금도 천황은 에도(동경의 옛이름)에 잠시 다니러 가서 잠시 머물고 있는 상태라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송휘영 교수(영남대학교 독도연구소 연구교수)는

농업경제학박사(日本 京都大), 동아시아국제정치학회 부회장, 한국일본문화학회 부회장,  동북아역사재단, 국립중앙과학관, 독도재단 등 자문위원, 환경법률신문 논설위원, 전) 한국그린투어리즘연구소 소장, 전) 농식품신유통연구원 연구위원, 전) 일본 교토대학 객원연구원. 저서로는 '일본 향토사료 속의 독도(2014, 선인)' 외 20여 권이 있으며, 여러 매체에 독도에 관련된 칼럼을 게재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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