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백운산의 아름다운 능선을 바라보는 국사암.

진감혜소 국사가 절을 세우기 위해 지리산을 찾았다. 화개에 다다랐을 때 나무 기러기 세 마리를 만들어 하늘에 날려보냈다. 기러기 한 마리는 국사암 밑 목압木鴨마을에, 다른 한 마리는 쌍계사 터에, 또 한 마리는 현재의 국사암 터에 내려앉았다. 이후 진감 국사는 국사암을 중창하고 쌍계사를 창건하였다. 국사암은 쌍계사의 부속 암자이기도 하지만, 연대로 치자면 오히려 쌍계사보다 앞선다. 진감 국사가 이곳에 머물면서, 암자를 찾는 대중들이 늘어났고 더 넓은 도량이 필요하게 되면서 쌍계사 창건까지 이어졌다는 이야기다.

국사암 입구에 들어서면 천년 세월을 품은 사천왕수가 자리 잡고 있다. 아래 둥치에서부터 뻗어져 나온 굵은 네 가지가 네 방향으로 뻗으며 사천왕을 대신해 암자를 호위하고 있다. 이 나무는 진감 국사가 꽂은 지팡이가 살아났다고 하며, 국사암의 오랜 역사를 엿볼수 있는 상징이기도 하다.

ㄷ자 형태의 독특한 구조를 가진 법당.

주요 전각으로는 인법당과 문수전, 산신각 등이 있다. 그중에서도 인법당은 ‘ㄷ’ 자 형태의 구조로 국사암 · 명부전 · 칠성각 · 옹호문 · 염화실의 편액이 걸려있어 특징적이다.

국사암은 지난 2013년 쌍계사율학승가대학원으로 개원하며 교육도량으로서의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다. 쌍계사 율학승가대학원 율감 스님은 “세간의 상식이 법이라면, 출가자의 상식은 계율”이라며 “몰상식이 없는 승가를 구현하기 위해 청정한 계율을 지키고 계정혜 삼학을 성취하는 것이 율학승가대학원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또 “우리가 밥을 먹을 땐 어떻게 해야 하고, 옷을 입을 땐 어떻게 해야 하며, 잠을 잘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 모든 방법을 부처님께서 율장에 정해 두셨습니다. 승가에서 계율을 배우는 것은 이 모든 생활을 어긋남 없이 살아가는 데 있습니다.”라며 계율 공부의 필요성에 대해 설했다. 현재 10여 분의 스님들이 이곳에서 율장을 배우며 부처님의 올바른 율법을 계승하기 위해 정진하고 있다.

촉촉한 겨울비가 내린 국사암의 모습.

국사암이 율학승가대학원으로 스님들의 정진처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이곳을 찾는 신도들은 많다. 긴 역사동안 불자들의 의지처가 되어 준 기도도량이었기에, 참배할 수 있도록 공간을 열어 두고 있는 것이다. 특히 원래 모셔져 있던 아미타후불탱과 지장탱 · 신중탱· 칠성탱의 문화재적 가치를 보면 깊은 신심으로 공들여 조성한 도량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국사암의 상징인 사천왕수가 굵은 가지를 네 갈래로 뻗고 있다.

쌍계사는 율찰 대본산이다. 부처님으로부터 직접 서상수계瑞像受戒를 내려받아 끊어진 혜동 계맥을 이은 대은 율사가 주석하셨으며, 조계종 전계대화상이신 쌍계총림 방장 고산 대종사가 일구신 도량이기 때문이다. 특히 고산 대종사께서는 쌍계사의 근본 계맥을 이어야 한다는 원력으로 금강계단을 세우시고 계율의 정신을 선양하셨다.

국사암의 또 하나 특징적인 전각은 바로 문수전이다. 지리산은 지혜제일 문수사리보살의 상주처다. 삼법 화상이 정진처로 삼고, 진감 국사의 안목에 든 빼어난 터에 자리 잡은 국사암. 한국불교의 율맥을 이을 청정한 계율 교육도량, 바로 국사암 쌍계사율학승가대학원이다.

저작권자 © e붓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