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瞑想, Meditation)은 나에게 늘 큰 힘이 되어 준다. 평소에는 그 필요성을 잘 모르다가 힘이 들 때 더 찾게 되어서 일까. 이젠 나의 힘든 순간을 늘 함께 해주는 벗이 되었다. 스트레스 상황에서 마음은 우울하고 짜증이 나고 몸은 힘들고 지치게 된다. 이때 명상은 그 모든 문제를 사라지게 해준다. 명상을 배우기 전에 명상은 아주 어렵고 특정한 사람들이 하는 것으로 알았다. 그래서 아예 관심조차 없었다. 나름대로의 휴식법과 운동과 독서 등 여러 가지 여가생활로써 공부에 지치고 사람들에 치인 몸과 마음을 극복해 나갔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명상을 모르던 시절 했던 것들이 거의 명상과 다름없었다. 다만 명상인줄 알고 하느냐 모르고 하느냐에 따라 그 효과와 내용에서 조금 차이가 생길 뿐이다. 사실 명상은 배워서 아는 것이 아니다. 원래부터 우리들이 갖고 있고 할 수 있는 인간 고유의 능력이다. 단지 오랫동안 쓰지 않아서 퇴화되었을 뿐이다. 이제 잠자고 있는 명상 거인을 깨워서 같이 놀아 볼 때가 되었다. 자신에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명상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간단히 말해, 명상은 ‘나의 조화와 균형을 위해 집중하고 알아차리는 활동’이다. 즉, 현재 자신에게 생긴 문제를 해결하는 전반적인 과정 일체다. 단, 해결되기 전 까지 문제를 나로부터 ‘객관화’ 시키고 ‘맑은 정신’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즉, 정신을 차리고 깨어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집중과 관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들의 삶에서 명상적 요소를 찾아보자. 하루에도 몇 번씩 극락과 지옥을 왔다하는 것이 우리들의 일상일 것이다. 공부를 하는 학생이건 일을 하는 직장인과 사업가건 살림을 하는 주부이건 할 일없이 바쁜 백수이건, 누구나 무언가 활동을 한다. 그로인한 긍정적인 에너지와 생산적인 결과물이 있는가 하면, 부정적인 감정과 피로로 인해 힘들기 마련이다. 그것들을 그때그때 처리하지 않으면 쌓이고 쌓여 나중에 크게 힘들어 지거나 병이 난다. 이때 나의 건강하지 못한 상태에 관심을 갖고 그 문제를 알아차리는 것이 명상이 된다. 해결책도 찾아야 한다. 그 해결책 또한 명상이다.

가장 쉽고 효과가 빠른 명상이 있다면 다름 아닌 ‘휴식(休息, Rest/Relaxation)’일 것이다. 힘들고 지칠 때에는 쉬는 것이 가장 좋다. 쉴 때 쉬지 않으면 피로가 누적되고 몸에 고장이 난다. 참다보면 나중에 병이 난다. 다행히도 쉼은 몸과 마음의 질병을 예방한다. 질병은 몸의 균형이 깨진 상태에서 생기고, 마음의 불안감도 감정의 불균형으로 인해 발생한다. 쉼은 몸의 밸런스(Balance)를 유지시켜주고 체력을 회복해 주며 뇌도 쉬게 한다. 쉬는 것만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병의 원인은 병의 인자로 인함이고 마음의 고통은 자신의 무의식 가운데의 업에 있기 때문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당장 해결하기 힘들다. 큰 문제는 당장 어렵지만 바로 해결 할 수 있는 문제는 바로 처리하거나 경감시켜 주어야 한다. 쉼이 여기에 특효약이 되어준다.

명상은 에너지의 균형을 맞춰준다.

어깨가 뭉쳤을 때 결림을 푸는 행동을 하고 있다면, 우리는 지금 명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몸 상태의 균형을 만들어 주고 있기 때문이다. 몸을 풀어주는 행위에 쓰이는 에너지는 어딘가 저장되어 있었고 몸의 균형을 위해 쓰여 진다. 넘쳐나는 한 곳의 에너지가 부족한 다른 곳으로 흘러가는 것은 자동화 시스템과 다름없다. 어깨가 뭉쳐서 결리고 아픈 것은 살려달라고 요청하는 신호이다. 그 신호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1차 의미는 지금 그 곳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2차 의미는 나의 생활습관에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원인까지 찾아서 바꾸어 주라는 것이다. 결국, 현재 나에게 일어나는 고통과 스트레스를 알아차리는 명상은 현재 느끼는 불편함을 해결해주고 나아가 그것을 일으키는 원인을 찾도록 해준다.

몸 뿐 아니라 마음의 불편함도 마찬가지이다. 계속해서 잡념이 생기고 그것이 불편한 감정을 가져온다면 일단 그것을 알아 차려야 한다.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긍정적인 에너지가 투입된다. 곧 치유와 회복이 시작된다. 그런데, 만일 계속해서 비슷한 생각이 나를 불편하게 한다면 그것의 근본 원인을 생각해 봐야 한다. 내가 갖고 있는 고정관념에 문제가 있을 수가 있다. 나를 불편하게 하는 그 생각의 원인이 무엇인지 성찰해 봐야 할 것이다. 결국, 몸의 불편함과 질병, 마음의 걸림과 불안함은 나의 삶의 문제를 찾게 해주는 긍정적인 신호이다. 매 순간 나타나는 부정적인 느낌과 생각을 알아차리다 보면 지금의 고통도 없애주고 원천적인 근본 번뇌도 없애줄 것이다.

명상의 기능을 과학의 언어로 엔트로피(Entropy)로 대응해 볼 수 있다.

물체가 열을 받아 변화했을 때의 변화량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그리스어 '전환(trepein)'이라는 단어와 '알맹이(en)'의 합성어다. 처음에는 엔트로피(Entropy)를 특정한 공간의 무질서한 정도라고 보았다. 그래서, 엔트로피는 보통 무질서도(Disordering)를 설명할 때 쓰이는 용어로 많이 쓰여 왔다. 예를 들어, 물은 고체, 액체, 기체의 상태로 존재하는데 그 상태가 변할 때 마다 에너지가 쓰인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쓸모없는 무언가를 엔트로피(Entropy)라고 부른다. 하지만, 실제로 쓸모없는 것은 아니다. 전환을 위해 필요한 에너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엔트로피의 본래 속성은 에너지의 평형을 이루기 위함이다. 변화가 불가피할 경우 엔트로피가 증가하는데 무질서로의 이동이라기보다 평형으로의 이동이다. 더운 여름에 에어컨을 틀어 놓으면 실내는 차가워지지만 실외기를 통해서 나가는 공기는 따뜻하다. 한쪽은 차갑고 한쪽은 따뜻한 열평형의 상태를 이루기 위해 엔트로피의 양이 증가하게 되는 것이다. 조화와 균형 그리고 평형을 위해서 필요한 불가피한 에너지인 것이다. 곧, 명상의 역할과 같다. 우리가 명상 없이도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우리의 삶은 불완전하고 불균형하다. 더 완전하고 균형 잡힌 삶을 추구하는 것이 우리의 본능이고 그것을 위해 에너지가 쓰이게 되는 것이다.

엔트로피는 에너지의 흐름을 만들어서 무질서도가 증가하는 것 같지만, 결국 평형상태를 만들기 위한 과정과 전환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에너지이다. 방을 청소할 때 일단 깨끗하게 만들려면 이것저것 다시 엎어야 한다. 새로운 생각과 에너지가 투입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소모되는 에너지 같지만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새로운 계획대로 이리저리 바꾸고 버리며 정리하다 보면 어느새 깨끗해지고 정돈된 방을 찾을 수 있다. 달라진 자기 자신을 만나게 될 것이다. 만일 자신의 방을 계속 어지럽히기만 하고 정리를 차일피일 미루면 어떻게 될까? 가만히 내버려 두면 바뀌지 않고 결국 그 상태로 고착화 되고 무너져 버릴 것이다. 나중에 걷잡을 수 없이 복잡하고 더러워진다. 무질서가 무질서를 낳고 어느 순간 정신차려보니 회복불능의 상태가 되어 있을 것이다.

우주는 전체적으로는 엔트로피가 증가한다고 한다. 하지만, 부분적으로 엔트로피가 감소하거나 증가한다. 우리의 삶을 생로병사(生老病死)라는 과정으로 정리해 본다면, 태어난 이후부터는 엔트로피가 증가하게 된다. 늙고 병들어 죽는 과정도 엔트로피의 증가이며 결국 최종지점에 가서는 스스로가 감당할 수 없는 에너지의 상태가 된다. 곧 죽음인 것이다.

엔트로피의 증가는 내가 살아가기 위해 피할 수 없다. 숨을 쉬는 것도 밥을 먹는 것도 잠을 자는 것도 엔트로피의 증가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같은 활동을 하더라도 엔트로피를 감소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그것이 바로 명상이다. 명상은 무질서(Disorder)를 질서(Order)로 전환시키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명상을 생활화 한다면 우리의 삶은 늘 균형이 잡혀 있을 것이며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도연스님은

카이스트 스님으로 알려진 도연스님은 카이스트에 입학해 전자공학을 공부하다 돌연 출가의 뜻을 품고 스님이 되었다. 이후 카이스트와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등에서 에너지 명상과 참선을 지도했으며, 2015년에는 카이스트 기술경영학과를 10년만에 졸업 하고 오대산 월정사에서 원명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2016년 사미계를 수지하고, 현재 서울 강남 봉은사에서 어린이, 대학생, 청년부 지도법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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