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근본 공부를 시작하고자 한다. 사염처경 중의 출입식관만을 골자로 해서 성립해 놓은 아나빠나사띠 바와나는 호흡수행을 근간으로 하지만 우리 반야심경의 관자재보살 행심반야 바라밀다시조견 오온 개공도 일체고액 속에 다 포함되어 있다. 이 점을 잘 감안하고 위빠사나 수행을 해야 대 · 소승을 아우르는 수행자라고 할 수 있다. 경향에 휩쓸려서 이것만이 최고라고 하는 주의는 존재감은 드러낼 수는 있겠지만 참신한 마음의 평화를 얻는데 갈등 요인이 된다.

반야심경에서 ‘나’라고 하는 건 오온이다. 오온은 색수상행식이다. 즉 몸과 마음이다. 빨리어로는 나마루빠라고 하는데, 명색(名色)이라고도 한다. 우리가 흔히 “명색이 사람이라고 하면서 그따위 짓을 해”라고 할 때 명색이다. 불교에서 ‘나’는 ‘오온’이다. 이것을 더 자세히 이야기하면 ‘색’은 몸이고, 몸은 지, 수, 화, 풍으로 이뤄져 있으므로 합치면 팔온이 된다. 하지만 이렇게 나가면 복잡해지기 때문에 몸은 색, 정신은 인식작용 면에서 수, 상, 행, 식이라 해서 오온이라 한다.

수상행식에 대해 더 얘기해보자. 우리가 어떤 사물과 갑자기 딱 마주했을 때 그 순간에는 갑작스러워서 무엇인지 모른다. 그런데 눈으로 일단 본 상태다. 여기서 인식하는 과정에 들어간다. 컴퓨터에 이것이 뭔가 하고 입력해서 엔터를 치면[수], 모니터에 뜨기를 기다리면서 무엇인지 상상하는데, 이때는 아직 인식이 확실히 되지 않은 상태다[상]. 그리고 인식이 진행되는데[행], 행에는 이미 과거에 입력된 기억도 함께 갖고 있어서 마치 창고와 같다. 그래서 새로운 물건을 보관하기도 하고 기존의 보관된 물건을 찾을 수도 있다. 인식론적으로 볼 때 그렇다는 뜻이다. 그 다음에 모니터에 내가 찾던 검색 결과가 떴다. 그러면 ‘무엇이다!’라고 알게 된다[식].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우리는 늘 알아차리며 살고 있다. 그 정신작용을 가지고 수상행식이라 하는 것이다.

위빠사나를 공부하려면 일단은 붓다께서 우리에게 무슨 말씀을 골자로 하셨는지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초기의 숫타나파타나 법구경은 필수이며, 초전법륜경 사제팔정도로부터 불교 교리를 잘 알아야 한다. 교리도 모르고 수행한다는 것은 기초공사도 하지 않고 집을 짓는 것과 마찬가지다. 사띠(알아차림)은 교리를 충분히 익힌 다음에 해야 한다. 간화선을 공부하는 분들도 사교입선이라 하여, 교의 중요성을 놓치지 않는다. 그래서 교는 한쪽에 두고 화두 하나에 모든 의심을 뭉쳐서 목숨 걸고 화두를 참구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 전통선이 화두를 가지고 하듯 위빠사나를 하는 사람은 사띠(알아차림)를 가지고 한다. 사띠는 알아차림, 기억하다, 마음챙김의 뜻이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나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이제부터는 그때그때 알아차리며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염두에 둬서 심신의 현상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미리 알아차려야 어떤 문제든지 사전에 대처할 수가 있다. 간화선에서 화두를 열심히 하면 나중에 선사의 의지를 간파할 수 있듯이 사띠로 현상 관찰을 열심히 하다보면 나중에 문제의 본질인 실상무상을 보게 된다. 그러면 반야심경의 조견 오온개공(무상, 고, 무아)가 되는 것이다. 문제의 근원을 알았으니까 도일체고액이 돼서 근심 걱정 없는 열반을 수용할 수 있게 된다.

근본 불교에서는 이것을 찰라 열반이라고도 한다. 수행이란 하루 중에 찰라 열반(근심걱정이 없는 상태)에 드는 순간을 조금씩 늘려가는 것이다. 그래서 인격적으로 발전하는 단계를 금강경에서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이라고 한다. 아라한이 되면 석가모니 붓다가 사바세계 교주 임기가 끝날 때 다음 사바교주로 출마할 자격이 있는 분이다. 물론 이미 미륵불이 다음 사바교주로 지명되어 있지만 말이다. 붓다란 이렇게 아라한이 되는 길을 최초로 제시하신 분이라 석가모니 부처님께만 사용할 수 있는 고유명사다. 우리 대승 불교에서는 보통 명사로 쓰기 때문에 사람이 부처라고도 합니다만 근본 불교에는 그런 말이 없으니 이 점은 참고 바란다.

 

* 이 내용은 3월 12일 도현스님께서 연암토굴에서 불자들에게 설하신 법문을 정리한 것입니다. 법문은 다음에 계속 이어집니다

                                                          

도현 스님은
범어사 덕명 스님을 은사로 1963년 부산 범어사에서 입산 출가했다. 1965년 동산 스님에게 사미계를, 1972년 범어사에서 석암 스님에게 비구계를 받았다. 제방선원에서 30여년간 정진했으며 태국에서 5년 동안 위빠사나 수행을 체득한 스님은 현재 지리산 연암 토굴에서 홀로 수행자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저서로는 ‘조용한 행복’, ‘나라고 불리어지는 것에 대한 알아차림’ 등이 있다.

저작권자 © e붓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