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스님 지음 / 반산스님 역주 / 담앤북스

쌍계사 강주를 역임한 양산 원각사 주지 반산 스님이 화엄경 해석의 진수로 꼽히는 ‘화엄경수소연의초’ 번역 불사를 마치고 올해 7월 34권 전권을 완간했다.

중국 당나라 청량징관 국사가 해석하고 주석을 단 ‘화엄경청량소’는 대승과 소승, 경과 논을 넘나드는 내용으로 화엄경의 진면목을 고스란히 드러내 화엄경의 본의를 가장 정확하게 풀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조선 후기 이래 한국불교에 큰 영향을 미쳤던 화엄경 해설서로 손꼽힌다.

화엄경청량소는 신라 799년 국내에 처음 소개된 이후 우리나라 강원에서 화엄경 교재로 써 오던 필독서였으나, 2011년 동국역경원의 한글대장경 완간에도 불구하고 번역되지 못해 화엄경을 공부하는 이들에게 큰 아쉬움으로 남았다.

반산 스님과 화엄경청량소의 인연은 1989년부터 시작됐다. 스님은 종범, 덕민, 무비 스님 등 어른 스님들께 배운 것을 바탕으로 이번 생에 제대로 된 우리말 화엄경청량소초를 번역하겠다는 큰 원력을 세우고 1998년 번역 작업을 시작했다.

스님은 봉은사 소장 목판 80권 화엄소초회본을 원본으로 삼아 직접 원문을 전산으로 입력하고 소(䟽)와 초(鈔)를 번역해 스님의 견해를 덧붙였으며, 직역을 원칙으로 원본의 진면목을 그대로 보여 주고자 노력했다. 스님은 20여 년간 7처 9회 39품의 모든 번역을 마치고 2018년 11월 제1회 적멸도량법회를 세상에 내놨다. 이후 제2회 보광명전법회, 제3회 수미산정법회, 제4회 야마천궁법회, 제5회 도솔천궁법회, 제6회 타화자재천궁법회, 제7회 재회보광명전법회, 제8회 삼회보광명전법회, 제9회 서다원림법회 등 3년 동안 총 4차에 걸쳐 책을 출간했다.

반산 스님의 역주로 엮은 '화엄경청량소' 34권
반산 스님의 역주로 엮은 '화엄경청량소' 34권 (출판 담앤북스)

이번 번역 불사는 스님의 화엄경에 대한 남다른 애착에서 시작된 것이지만 그 길에는 어려움도 적지 않았다. 소 60권, 초 90권에 달하는 화엄경청량소의 방대한 양과 최초의 한글 번역이라 참고할 자료가 부족하다는 점은 스님에게 가장 큰 어려움으로 다가왔다. 또 스님은 우리말로 옮긴 내용을 한 자, 한 자 컴퓨터에 입력하기 위해 하루 8시간씩 모니터만 들여다보다 눈병에 걸리기도 했다.

이러한 수많은 고비에도 불구하고 스님은 부처님 최고의 경전인 화엄경을 제대로, 깊이 있게 전하기 위해 이 또한 수행의 과정으로 삼고 우리나라 최초로 청량징관 스님의 ‘화엄경수소연의초’ 한글 번역의 대장정을 갈무리하게 됐다.

반산 스님은 “지금도 학인시절 번역하던 생각을 하면서 ‘처음 발심하면 곧 아뇩보리를 이루게 된다(初發心時 卽得阿耨菩提)’는 범행품의 구절이 마치 ‘청량 스님의 수소연의초를 번역하여 완성하면 바로 깨달음에 이르게 되리라’는 확신으로 바뀌어 내 마음을 지배하게 됐고, 이번 생에 이것 하나 완성하면 후회는 없으리라는 것이 원력이 됐다”고 청량소 번역의 계기를 밝혔다.

또한, “중생의 궁금증을 시원하게 해소해 주니 그 인연으로 청량(淸涼)이란 법호를 얻은 것처럼, 중생의 어두운 번뇌를 시원하게 해소 하는 데 이보다 더 좋은 화엄의 주석서는 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더구나 화엄경을 알면 대소승의 경전 구절은 물론 십현문 사사무애 도리와 선어록까지 그 어떤 것도 어렵지 않게 풀어갈 수 있다는 것이 바로 화엄종지가 아닐까 한다. 이번 번역이 화엄학자들의 공부에 참고자료가 되면 그보다 큰 보람은 없을 듯하다.”고 전했다.

스님은 “이후에는 경문을 위주로 주석을 쉽게 달아서 3권으로 누구나 읽을 수 있는 화엄경을 만들고 싶다”는 다음 목표를 밝혔으며, “코로나19와 최근 수해 피해로 힘든 시기에 이번 화엄경청량소 완간 소식이 불교계에 한 줄기 빛처럼 밝은 에너지를 가져다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아울러 영축총림 통도사 주지 현문 스님도 이번 화엄경청량소 완간 소식에 격려사를 전했다. 현문 스님은 “이번 ‘화엄소청량소’ 전 34권 번역은 반산 스님 개인의 쾌거인 동시에 해마다 화엄산림을 봉행하는 영축총림의 경사기도 하다”며 “반산 스님은 월운 강백 스님의 전강제자로 한글 대장경의 산파역을 담당했던 운허 큰스님의 강맥을 이은 제자가 됐고, 2002년 본인이 처음 본사에 주지할 무렵 처음 화엄 산림에 등단한 후 해마다 그 실력이 늘어감을 엿볼 수 있었는데 그 능력의 대부분이 바로 이런 부단한 화엄 연구의 저력이라는 것을 이번에 알 수 있었다”고 치하했다. 이어 “앞으로도 더욱 건강하고 수행에 매진해 화엄의 큰 선지식이 되어 주길 바란다”고 격려했다.

반산 스님이 이번 번역 작업에서 원본으로 삼은 ‘봉은사 소장 목판본’은 1689년(숙종 15) 임자도에서 발견됐던 성총 스님의 징광사(澄光寺) 판본이 그 원본이었으나 1770년 화재로 소실됐다. 이후 1774년(영조 50)에 설파상언(雪坡尙彦)이 판각한 영각사 판본이 유통되었는데 이 판본도 역시 1950년 전란으로 유실됐지만 그 경본만은 남아 있어 이를 바탕으로 철종대(1855-1856)에 영기(永奇) 스님이 각인(刻印)한 봉은사판이 현존하게 됐다. 이는 강원 대교과(大敎科)의 교재로 쓰여 온 유일한 현존판으로 남아있다.

반산 스님의 역주로 엮은 '화엄경청량소' 출판기념법회는 오는 9월 6일 오전 11시 통도사 극락암에서 봉정식과 함께 봉행될 계획이다.

한편, 반산 스님은 통도사 극락암에서 명정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1980년 통도사에서 월하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1982년 범어사에서 자운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했다. 1984년 해인사 강원, 1999년 중앙승가대학, 조계종립 은해사승가대학원을 졸업하고 2002년 봉선사 조실 월운 스님으로부터 전강(傳講)했다. 스님은 쌍계사승가대학 강주를 비롯해 쌍계사, 통도사, 해인사 강사, 봉선사 능엄학림 학감, 조계종 행자교육원 교수사 등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화엄경청량소>, <재미있는 금강경 강의>, <재미있는 화엄경>, <재미있는 법화경>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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