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칼을 찾는 집을 심검당(尋劍堂)이라 한다. 검은 무명을 가리키는 머리카락을 잘라내어 부처의 혜명을 증득케 하는 취모리검을 상징한다. 보편적으로 사찰 내에서 심검당은 강원으로 이용되는 경우가 많으며 신성한 수행처를 뜻한다. 백룡암을 품고 있는 산명은 신어산이지만 암자가 속한 자락은 초기에 심검산(尋劍山)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번뇌와 망상을 단칼에 끊어 버리고 오로지 일념으로 수행에 들어서는 산이다. 강경한 뜻을 품고 있는 산명에 걸맞게 사찰 또한 산자락에 둥지를 튼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김해 백룡암 전경.

 

  • 꺼지지 않는 신심의 불씨

백중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법당에는 기도를 올리는 불자들의 모습을 보기 힘들다. 일반 사찰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풍경이 백룡암에서는 귀하디 귀한 작품 이라 한다. 김해 마을에서 도량까지는 급경사와 비탈길이 이어져 신도들조차 법회에 참석하려면 절에서 스님이 내려오시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걸어서 오르내리면 인대가 늘어날 정도라고 하니 그조차 엄두를 내기가 힘들다. 부처님 전에 다다르기까지 지나야 할 길이 여간 험난한 것이 아니다. 주법당과 대웅전 뒤편의 산신각, 요사채가 전부인 소담한 도량은 장마철이면 지붕 사이로 비가 새어 흐른다. 비바람을 견뎌 내기엔 진즉 소임을 다한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월 초하루만큼은 10여 명 남짓한 신도들이 대웅전을 지킨다.

“김해에 뿌리 내리고 사는 마을 사람들에게는 옛날 자식 손을 잡고 절에 올랐던 추억이 있지요. 그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져 옵니다. 그래서인지 백룡암에는 주로 젊은 신도가 많고 아이들이 많습니다. 요즘은 전국 어느 사찰이든 불자 수가 감소하여 예전만 못하지만, 그런 현실 속에서도 백룡암에 가야 한다고 할머니 손을 꼭 붙들고 올라오는 어린 아이들을 보면 어린이 포교가 다른 곳에 있지 않음을 느낍니다.”

백룡암 대웅전.

보운스님은 백룡암 주지로 6년째 주석 중이다. 법회는 한 달에 한 번 초하루법회를 봉행하며, 오랜 기간 종단 소임과 본사 총무국장 소임을 맡고 있는 주지스님을 대신해 산중 살림살이는 주로 총무스님께서 맡고 있다. 평소에 사람 하나 없는 산중 암자에서 자급자족의 삶을 살기란 보통 일이 아닐 것이다. 게다가 자기 공부와 수행을 이루기 위해서는 더더욱 외롭고 치열한 자기와의 싸움을 벌여야 할 터. 주지스님은 총무스님을 일컬어 “선방 수좌가 아니면 살아 내기 힘든 환경이다. 공부한 득력이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절을 돌보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스님이 보는 백룡암의 가장 큰 가치는 바로 신심이다. 스님과 불자들의 신심이 없었다면 산중의 암자는 금방 토굴이 되고 폐사가 되었을 것이라는 게 스님의 설명이다. “가끔은 옛 생각에 마을에서 사찰까지 걸어서 올라오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이 안 계셨다면, 산중 암자를 제 집보다 더 갈고 닦으며 가꾸는 스님들이 안 계셨다면 백룡암은 아마 길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산중에 갇혔을 것입니다. 백룡암이 버티는 힘은 오로지 대중의 신심입니다.”

 

  • 잃어버린 10년, 득력으로 되찾는다
  •  
백룡암의 창건 설화가 전해지는 사적비.

백룡암의 창건 유사는 다소 부족한데 사적지를 근거로 하면 가락국 수로왕 때 장유 화상이 창건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백룡암의 소재지인 덕산은 옛 덕산역이 있던 마을의 수호산이라 일컬어지고 있기도 하다. 특히 덕산역은 창원 자여도와 양산 황산도를 연결하며 각 지역의 교통과 체신을 담당하던 주요 거점 역이었다. 앞으로 빼어난 풍광과 뒤로 계곡을 가득 채운 너덜지대를 품고 있어 득남을 희망하는 기도처로도 유명했다. 특히 경남 지역의 불상 조성 양식을 알 수 있는 중요한 불상인 조선후기의 석조불상을 주불로 모셔 왔는데 지난 2007년 도난당하며 지난한 세월을 보냈다.

“불상을 도난당한 이후 사찰 측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조치는 신고뿐이었지요. 종단문화부에 신고해 놓고 기다린 지 꼬박 10년이 흘렀습니다. 본존불을 도난당한 이후 10년간 여법하지 못한 모습으로 신도님들을 맞이했지요. 지난한 세월 동안의 송구한 마음을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대웅전에 임시로 모셔 놓고 있는 삼존불.

사찰 지형의 특성상 백룡암은 현실적으로 중창불사 또한 꿈꾸기 어려운 실정이다. 불사를 진행하기에는 접근성이 매우 떨어지고 보통 사찰의 불사 비용보다 세 배가량 들어간다고 하니 마음만으로 바랄 수밖에 없다.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보운스님은 백룡암을 찾는 신도님들을 위해 본존불만큼은 여법하게 조성하려 원력을 세우고 있다.

백룡암 주지 보운스님.

“대웅전에 본존불로 관음보살을 모시려고 합니다. 불모한테 이 세상에 작품 하나 남기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만들어 주기 바란다고 당부했습니다. 그러니 불모 스스로도 발심 내지 않으면 하지 못할 일이지요. 우리나라 불교문화재가 훌륭한 예술성을 갖출 수 있었던 데는 돈으로 따지지 않고 오직 순수한 신심으로 조성했기 때문입니다. 본존불 조성 기간은 지금부터 1년 정도 걸릴 예정이며 청동으로 조성하여 여법하게 모시려 합니다.”

 

  • 김해 산자락을 뒤덮는 대중의 신심

무엇이든 원하는 게 있으면 어렵지 않게 손에 쥐고 살아갈 수 있는 요즘 시대에, 아무런 소득이 없는 상황에서도 절의 생명을 이어나가는 가치에 대해 스님께 물었다.
“열 번을 물어도 답은 하나입니다. 절은 불자들을 위해 지어진 곳이고 불자들을 위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세속과 소통하기 어려운 지리적 환경 속에서도 백룡암이 여전히 신어산 자락에 뿌리 내리고 있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신도님들의 존재 덕분이지요. 고성염불 십중공덕이라, 조계종단의 총본산인 조계사의 사시예불 예참 소리보다 백룡암 신도들의 예참 소리가 더욱 우렁찹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탓을 하지 않고 다같이 마음 내어 불자의 근본을 지키는 것, 그것이 백룡암을 지탱하는 최고의 가치이자 미래의 자산이라고 봅니다.”

백룡암은 대웅전에 모실 본존불 점안식을 내년에 봉행할 예정이다. 백룡암의 잃어버린 10년을 스님과 불자들의 원력으로 다시금 되찾는 뜻깊은 날이 될 것이다. 지난한 세월의 아픔과 회한을 묻고 그 위에 여법한 부처님을 모신다. 어느 법당의 부처님보다 더없이 찬란하게 빛날 관음의 미소가 심검산(尋劍山) 자락에 도래하길 기다린다.

저작권자 © e붓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