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한 성품 가운데 부처와 내가 다를 바 없다.’ 인터뷰 내내 줄곧 대성 스님이 강조한 가르침이었다. 불교는 모든 사람이 평등한 성품을 지니고 있으므로 일체의 차별을 금하는 종교다. 그러니 임금과 백성이, 대통령과 국민이 따로 있을 수 없으며 모두가 주인이다. 민주주의는 불교의 평등과 자비 에서 나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 각자 맡은 바 책임 속에서 움직이는 것은 그 국가의 국민으로서 해야 할 의무이니 차별이랄 게 없고 부처와 내가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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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비, 불교가 지니는 인격의 품위

불교는 ‘사랑 자慈’, ‘슬플 비悲’ 자를 써서 ‘자비’의 종교라고 말한다. 이는 참된 어머니의 모성을 닮았다. 관세음 보살이 중생의 어머니로서 굽어살피는 것처럼,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제 자식이 어디에 있더라도 밥은 제대로 챙겨 먹는지 남에게 제대로 대접은 받는지 사랑을 받는지 항상 걱정한다. 어머니는 자식이 백 살이 되어도 평생토록 연민하여 마음에서 놓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어머니의 모성을 곧 자비라고 말한다. 그래서 불교는 가장 이성적인 인격의 품위를 지닌다.

김해 은하사 회주 대성스님.

어릴 적 가까운 지인으로 인해 스님의 생활을 동경하며 불교에 관심을 갖게 된 대성 스님은 한 스님의 권유에 고민 없이 삭발 출가했다. 범어사에서 은사이신 동산 큰스님을 시봉하며 불교의 자비사상을 몸소 체득했다. 동산 스님은 당신의 상좌들에게는 한없이 엄한 큰 스승이었으나 절을 오가는 불자들에게만큼은 더없이 자비로운 스님이었다. 당시를 회상하는 범어사의 모습은 큰스님의 자비가 곳곳에 깃들어 청정한 가풍과 인격의 품위가 숨 쉬 던 때였다. “금정산에서 내려오는 유일한 혈맥이 청풍당을 관통하는 모습에 수행 분위기도 더할 나위 없었지. 노스님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청풍당 뒤에서 바라본 원효봉은 그리 높지 않아 걸망 지고 해질녘 산을 올라가는 모 양이었어. 그 모습 또한 어머니가 자식을 굽어살피는 자비로운 품과 다를 바 없었지.” 그때 절이란 스님들에게 향 수를 지니고 수행을 이끄는 아름다운 곳이라 정의하게 되었다고 한다.

 

  • 대중을 편안하게 하는 것, 불가의 소임

출가 이후 범어사에서 줄곧 소임을 봐 왔던 스님은 생각지 못한 병마와 싸우게 된다. 폐결핵을 발견하고서는 죽음보다 행여 대중에게 옮기게 될까 가장 두려웠다. 1970년에 김해의 은하사로 거처를 옮긴 스님은 그 당시 은하사는 깊은 산중에 자리한 도량으로 요사채 14동이 모두 비가 샐 정도로 열악한 모습이었다고 회상한다. 당시 대중 10명과 함께 밥을 지어 먹으며 아침저녁으로 예불하면서 병마에 맞섰다. ‘나를 지금 데려가면 다음 생에 큰 도인이 되겠다. 그러나 금생에 병을 낫게 해 주면 평생 이 도량을 복원하는 데 마음을 다 쏟겠다.’는 원력으로 기도를 올렸다. 스님은 죽음이 두렵지 않았고 다만 불가의 소임을 다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선방에 있으면서 오로지 기도하라는 경책이 들릴 정도였다. 그때부터 부처님께 매달리며 기도를 이어갔다. 하루 10시간씩 기도를 해도 생사를 걸고 공부했다 생각하니 힘들지 않았다고. 그렇게 행정적인 업무에서 시작하여 어수선하던 도량을 정돈한 이후부터는 전국 각지의 기도 정진하는 신도들로 북새통을 이루기 시작했다.

은하사 전경.

범어사 주지 소임을 맡은 후에도 스님은 불사의 원력을 놓지 않았다. 가장 먼저 부산시민에게 범어사의 이름을 널리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역민들에게 불교의 힘을 널리 전파하는 것이 불가가 맡은 당연한 소임이라고. 그래서 주지 소임을 맡고 고승대법회, 개산대재를 비롯해 많은 행사를 열어 부산시민에게 알림통의 역할을 하는 데 앞장섰다. 그뿐만 아니라 당시 일주문 인근의 노점상 거리를 개선했다. 절의 입구가 반듯해야 수행의 근본이 들어선다고 봤기 때문이다. 수행의 표본을 만들어 미래를 위한 포석을 다져야겠다는 생각에 축대를 바로 세우고 도량을 닦았다. 스님은 옛날 선지식들의 지혜로운 가르침을 따라 도량을 일굴 수 있었던 것이라고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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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교는 수행의 종교

“모든 종교는 믿음의 종교, 그중에서도 불교는 수행의 종교야. 사찰을 절이라고 일컫는 것은 절을 많이 하라고 하여 붙인 이름이지. 그렇기 때문에 찾아오는 신도들에게는 24시간 안에 만 배를 하라고 시켰어. 절을 마치고 나면 금강경을 소리 내어 독경하라고 일렀지. 이 두 가지를 하지 않으면 불자라고 하지 말라고 했어. 믿음이 도의 근원이고 공덕의 어머니인데, 믿으려고 하면 적어도 자기 능력, 근기의 한계를 넘어봐야, 생사를 건 의지로 밀어붙여봐야 함을 일깨우려 했지.”

인간은 영과 육으로 이루어진 이원의 합일체라고 한다. 영은 다겁 생에서 건너와 어머니 배 속에 난 것이다. 육체는 백 살 미만에 죽는 것이나 육체를 빌린 영은 또 다른 몸을 빌려 들어간다. 또 다른 몸을 빌려 들어갈 때에 사람의 몸을 빌리기가 가장 어렵다. 입으로 구업을 많이 짓기 때문이다.

“인신난득 불법난봉人身難得 佛法難逢이라, 인간으로 나기 어렵고 불법을 만나기 어렵다고 했어. 참된 불법을 가르치기가 그렇게 어려운 거야. 이미 지식으로는 스님들을 능가하는 이들이 많아. 스님보다 불교 지식을 많이 알지만 실천하기가 어려운 것이지. 그러니 현 시대에 스님들의 역할을 꼬집는다면 스님은 선지식이 아니라 스승으로서 불자들을 수행하도록 가르쳐야 해. 그것이 곧 법문이고 불법의 묘라 할 수 있어. 스승의 자격이라 할 수 있지. 그대와 내가 다를 바가 무엇인가? 부처님도 중생과 내가 다를 바가 없다고 하셨어. 오직 믿음을 가지고 악전고투해서 내가 해야 할 것을 해 보면 돼. 자아 완성을 하라는 것은 나의 영을 내가 바로 보고 다른 영이 나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하라는 것이야. 그러니 선방에서 모든 수행의 철칙으로 ‘나의 영을 놓지 말라.’는 화두를 들고 있는 것이지.”

현대 사회는 지식이 풍요로워 갖가지 꽃을 피우고 있지만 실제 믿음이 없어서 지식과 반대로 가고 있다는 것이 스님의 설명이다. “불자가 감소한다는 것은 이미 사회인들이 스님의 인격을 바로 봤다는 말이기도 해. 그대들에게 불가의 자유로운 분위기를 보여 주는 것도 좋지만 불교의 본질을 흐리게 해서는 안 돼. 가장 경계하고 조심해야 할 부분이지.”

지식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이 시대의 불교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불교에 대한 올바른 사고방식을 심어 주는 것이다. 생사를 걸고 수행하는 것은 스님의 당연한 몫. 그리고 자신이 자리한 위치에서 마음속 굳건한 믿음을 바탕으로 본인의 역할을 곧게 행하는 그것이 성인도 있고 범부도 있고 부처님도 있고 중생도 있는 사회가 추구해야 할 수행 철칙이라고. 스스로를 바로 보는 것, 불교가 안으로 던져야 할 가장 근본적인 물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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