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축총림 통도사의 차밭이 싱그러운 초록빛으로 물들었다. 소록소록 돋아난 녹차의 새순은 보기만 해도 그 향기가 코끝까지 전해오는 듯한 느낌이다.

경남 양산에 위치한 영축산 통도사를 찾았다. 통도사 큰절로 가기 위해서는 매표소에서 일주문 사이 소나무가 길 양옆으로 늘어서 있는 무풍한송길을 지나야 한다. 2018년 아름다운 숲길로 선정된 무풍한송길은 춤을 추는 듯 구불거리는 소나무의 절경과 향긋한 솔향, 흐르는 물소리까지 오감을 만족시켜주는 길이다.

봄의 중간과 여름의 시작점 그 어딘가에 위치한 계절 덕분에 걷는 것이 즐겁다. 따가운 햇볕 때문에 더워질라치면 어디선가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금세 땀을 식혀준다. 각 계절이 주는 즐거움이 따로 있지만 개인적인 욕심으로는 지금 계절 그대로 멈춰줬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다.

통도사 차밭은 큰 절을 지나 암자로 가는 길 오른편에 새로 짓고 있는 국제템플스테이관 밑에 위치하고 있다. 차밭에 도착하니 차를 수확하는 통도사 선다회의 손길이 분주했다. 통도사 다원은 작년 영축총림 방장 성파 스님이 수로를 연결하고 재정비한 끝에 지금의 정돈된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다고 한다. 덕분에 올해 첫 찻잎도 수확할 수 있게 됐다.

일정한 높이로 자란 차나무와 그 사이사이로 풀이 무성하게 자란 길이 길게 뻗어있다. 짙은 녹색과 연두색이 조화를 이루며 마치 한 폭의 맑은 수채화 같은 느낌이다. 차나무 사이사이로 찻잎을 수확하는 선다회의 얼굴이 드문드문 보였다. 

녹차는 수확 시기에 따라 첫물차, 두물차, 세물차, 네물차로 나뉘는데 4월 중순부터 5월 중순 사이에 수확하는 첫물차 때 만들어진 녹차가 가장 맛이 부드럽고 감칠맛이 뛰어나다고 한다. 차를 수확할 때는 한 가지만 기억하면 된다. 바로 ‘일창이기(一槍二旗)’이다. 돋아난 새싹 중 어린 싹 하나에 어린잎 한 장과 성숙한 잎 한 장이 되도록 따 주면 된다. 이를 모르고 어린잎만 골라 쏙쏙 따 버린다면 나중에 차를 덖기 전 골라내는 작업이 더 큰 일이 된다.

선다회를 따라 한 잎, 두 잎 찻잎을 따 보니 그 느낌이 신기하고도 새롭다. 연둣빛의 여린 새싹이라 그런지 큰 힘을 주지 않아도 톡 하고 쉽게 수확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도 처음에만 재미있지 계속하다보니 힘든 건 매한가지였다. 이렇게 수확된 찻잎은 선별과정 후 수분을 제거하고 맛을 풍부하게하기 위해 220도에서 덖는 과정과 찻잎을 비비는 유념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 또한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수분이 없어질 때까지 여러 번 반복하고 다시 건조 과정을 거쳐야 우리가 마시는 녹차가 완성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들을 알고 나니 차 한 잔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우리가 먹고 마시고 입는 것 등 무엇 하나 허투루 만들어지는 것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매 순간 고마운 마음을 잊지 않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넓게 펼쳐진 차밭에 통도사의 풍경이 더해져 절경을 이루고 있다. 그간 코로나19의 두려움으로 막혀 있던 눈과 코가 모처럼만에 호강하는 순간이었다. 녹색이 주는 편안함 속에서 자연의 소중함과 생명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되새볼 수 있었다. 카페, 쇼핑몰, 음식점 등 복작거리는 일상이 절실한 요즘이지만, 자연이 주는 행복은 결코 우리를 배신하지 않는다. 

초록빛 물결로 넘실대는 차밭 한 가운데에 있으니 싱그러운 차 향기가 온몸을 휘감는다. 생활 속 거리두기를 실천해야하는 이때 복잡한 일상의 집착에서 벗어나 자연이 주는 행복을 누려보는 것은 어떨까. 이것이야말로 대대하고도 확실한 행복 ‘대확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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