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 백양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사진=문화재청)
장성 백양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사진=문화재청)

17세기 불교조각 조성에 큰 자취를 남긴 조각승 현진 스님의 작품이 보물로 지정 예고됐다.

문화재청(청장 정재숙)은 현진 스님의 가장 이른 작품인 ‘장성 백양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을 비롯해 15세기 ‘상주 남장사 관음선원 목조관음보살좌상’을 29일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장성 백양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높이가 약 208cm에 달하는 대형 불상으로, 1607년(선조 40년) 조각승 현진 스님이 주도하고 휴일 스님, 문습 스님이 함께 참여해 완성했다. 현진 스님은 17세기 가장 비중있게 활동한 조각승으로 이 불상은 스님이 제작한 불상조각 중 지금까지 연대가 가장 앞서는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불상의 대좌 밑 묵서에 의하면, 백양사 불상은 왕실의 선조들인 선왕과 선후의 명복을 빌고 성불을 기원하며 만든 것으로, 1607년이라는 제작시기로 미뤄보아 1592년 발발한 임진왜란 등 전쟁이 끝나고 몇 해가 지나지 않은 1610년 전후로 이루어진 불교 복구 과정 중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불상은 장대한 규모에 긴 허리, 원만한 얼굴과 당당한 어깨, 신체의 굴곡에 따라 자연스럽게 처리된 옷 주름, 안정된 자태 등에서 초창기 작품임에도 현진 스님의 뛰어난 조각 실력과 17세기 불교조각의 새로운 경향을 선도한 시대적 변화를 읽을 수 있다. 이렇듯 자연스런 신체표현이 가능한 이유 중 하나는 목조와 소조 기법을 조합해 만든 제작 방식이다. 일반적으로 목조 불상을 만들 때는 나무를 쪼아 전체적인 형체를 만든 후 좀 더 입체적이거나 현실적인 인상을 주기 우해 부분적으로 진흙 등에 사용한 소조 기법으로 표현하기도 하는데, 백양사 불상 역시 주된 재질은 목조지만 진흙으로 보강한 사실이 과학조사를 통해 밝혀졌다.

문화재청은 “백양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조선 후기 대표적 조각승 현진의 작품 중 시기적으로 가장 오래된 불사이자, 그의 활동 지역과 작품 세계, 제작 기법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학술‧예술 가치가 뛰어나다”며 “또한 1741년(영조 17년)과 1755년(영조 31년)에 작성된 중수발원문을 통해 개금과 중수한 내력, 참여 화승들의 명단과 역할을 알 수 있어 학술적 의미 역시 크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러한 이유로 불상과 같은 시기에 조성된 대좌와 함께 보물로 지정해 보존하고 연구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밝혔다.

상주 남장사 관음선원 목조관음보살좌상
상주 남장사 관음선원 목조관음보살좌상 (사진=문화재청)

이번에 같이 보물로 지정 예고된 ‘상주 남장사 관음선원 목조관음보살좌상’은 조선 전기 15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불상으로 남장사 내 부속사찰인 관음선원에 봉안돼 있다. 이 관음보살좌상 뒤에는 보물 제923호 ‘상주 남장사 관음선원 목조아미타여래설법상’이 놓여 있어 그 가치와 화려함을 더한다.

이 불상의 경우 조성발원문 등 관련 기록이 부족해 정확한 제작 시기는 확정할 수 없으나, 귀족풍의 단정한 얼굴과 어깨와 배에 멋스럽게 잡힌 옷 주름, 팔꿈치에 표현된 ‘ῼ’형 주름, 무릎 앞에 펼쳐진 부채꼴 주름 등 15세기 불상의 양식적 특징을 잘 보여준다.

15세기 불상이 지극히 드문 현실을 고려하면 남장사 관음보살좌상은 이 시기 불교조각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울러 관련 기록을 통해 1819년 인근 천주산 상련암에서 남장사 관음선원으로 이전돼 오늘에 이르기까지 경위와 개금, 중수 증 보수 사실을 정확하게 알 수 있다는 점에서 불상의 역사성 또한 인정받고 있다.

문화재청은 “살펴본 바와 같이 상주 남장사 관음선원 목조관음보살좌상은 조선 전기 불상이라는 점에서 희소성이 있고 제각 수준이 뛰어나 우리나라 불교조각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높은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화재청은 보물로 지정 예고한 ‘장성 백양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과 ‘상주 남장사 관음선원 목조관음보살좌상’에 대해 30일간의 예고 기간 중 각계의 의견을 수렴‧검토하고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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